[취재] 단통법의 의의와 가계통신비 절감 과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오는 10월 1일부터 시행된다. 시행을 앞두고 대다수의 소비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역시 ‘휴대폰을 바꾼다면 10월 1일 이후에 바꿔야 하는지’ 또는 ‘도대체 단통법이 시행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이다. 혼탁한 단말기 유통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마련된 단통법.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고, 시행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가계통신비는 정말 절감되는 것인지 짚어보자.

단통법이 무엇인가?

단통법 제정의 필요성은 작년 말부터 제기됐다. 작년 말과 올해 초 단말기 유통시장에서는 ‘대란’이라 불린 보조금 폭탄이 쏟아졌다. 사실 이동통신사(이통사) 간 경쟁이 붙어 보조금이 늘어나면 소비자는 유리하다. 하지만 보조금이 소비자에게 차별적으로 지급되는 것이 문제였다. 같은 단말기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누구는 0원에 사고, 누구는 80만 원을 다 주고 샀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이통사에 과징금과 영업정지 처분으로 제재를 가했지만 이통 3사의 약탈적 경쟁은 멈출 줄 몰랐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 단말기 교체율 세계 1위(77.1%), 가계소비지출 중 통신비 비중 OECD 국가 중 1위(4.3%)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해지자 정치권에서는 지난 5월 서둘러 단통법을 제정해 정부에 공을 넘겼고, 정부는 세부 시행령을 확정해 10월 1일부터 법을 시행하기로 입법예고 했다. 이에 따라 관련 부처인 방통위는 10월 1일 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세부 사항을 담은 단통법 하부 고시를 의결해야 한다. 발표된 단통법의 주요 내용에는 △가입유형, 요금제, 거주 지역 등의 사유로 인한 부당한 보조금 차별 금지 △보조금 지급 구조의 투명화와 공시 △보조금 상한제를 통한 과다 지급 경쟁 제한 △보조금과 요금 할인 중 선택 지원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단말기 유통시장이 건전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분리공시 제외, 삼성전자의 힘

단통법 하부 고시 하루 전날인 지난 23일, 국회에서는 ‘단말기유통법의 의의와 가계통신비 절감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국회 미래창조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관계자, 방통위 관계자, 이해집단, 시민단체 등이 참가해 단통법의 취지를 재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다음날 뚜껑을 열자 뜻밖의 결과가 발표됐다. 보조금 지급 구조를 투명화하기 위해 제조사와 이통사가 제공하는 보조금을 각각 분리해 명시하도록 하는 ‘분리공시’ 제도가 하부 고시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분리공시는 단통법이 마련되는 동안 삼성전자가 줄곧 혼자서 반대해온 사안이다. 소비자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이통 3사와 방통위도 분리공시 제도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삼성전자의 힘은 강력했다.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 지원 규모는 영업 비밀이며, 국내와 해외의 장려금 차이가 공개되면 해외시장에서 심각한 손실이 예상된다’는 것이 삼성전자가 분리공시를 반대하는 논지였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박지호 간사는 “국내 소비자의 문제는 외면하고 해외사업만 고민하는 삼성전자에게 국내 소비자는 과연 무엇이냐”며 반문했다.

하지만 결국 규제개혁위원회는 단통법의 취지와 분리공시 제도가 상충하는 면이 있다며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고, 방통위는 하릴없이 이를 의결했다. 단통법은 반쪽짜리 법이 되고 만 것이다.

가계통신비 과연 낮아질까?


가장 중요한 가계통신비 절감 효과를 따져보자. 과연 전보다 휴대폰을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왜일까? 단통법 하부 고시를 통해 보조금 상한선은 과거 27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제조사의 단말기 판매 가격이나 출고가(이통사에서 대리점에 단말기를 판매하는 가격)를 낮출 방안은 없기 때문이다.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는 누구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대리점에서 15%까지 추가로 지급할 수 있는 보조금을 모두 받는다면 34만 5천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앞으로는 인터넷에서 확인 가능한 각 이통사의 단말기, 요금제별 보조금 규모를 미리 알고 가면, 과거처럼 80만 원짜리 스마트폰을 0원에 살 기회는 없겠지만, ‘호갱님’(호구+고객님)이 되는 것만은 면할 수 있게 됐다.

 

▲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34만 5천 원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통법 하부 고시에는 통신비의 월 실납부액이 7만 원 이상이며 2년 약정 이상인 경우에만 보조금을 최대 수준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때문에 7만 원 이하 요금제는 그 요금에 비례해 보조금을 지급받게 된다. 사용하는 요금제에 따라 27만 원도 채 받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 류제명 과장은 “단통법의 핵심은 그동안 보조금 혜택을 아예 받지 못했던 2~3만 원 대 요금제 소비자도 동일하게 비례해서 혜택을 받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단통법은 가계통신비 절감보다는 부당한 소비자 차별을 막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단말기 유통 현장의 반응은 어떨까? 관악구 봉천동의 한 휴대폰 대리점을 방문했다. “단통법 시행이 돼봐야 알겠지만 단말기 할인 폭은 큰 차이 없을 걸요.” 더 싸지진 않는지 재차 물었지만 “그렇진 않을 것”이라고 한다.

휴대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가계통신비 절감 방안으로 공기계 혹은 중고폰을 직접 구매해 통신 서비스만 가입하는 단말기 자급제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동안은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했던 단말기를 자급하는 소비자가 이번 단통법 시행으로 인해 통신 서비스 가입 시에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해외 시장과 달리(유럽은 40~50%의 단말기 거래가 일반 유통이다) 단말기만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경로가 많지 않아 발품을 팔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보조금 상한선, 꼭 규제해야 하나?

30만 원의 보조금 상한은 꼭 필요할까? 방통위는 보조금이 소비자에게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통신 요금으로 부담이 전가된다고 밝혔다. 때문에 제조사와 이통사의 영업 이익, 물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서 조삼모사가 되지 않도록 결정한 금액이 30만 원이라고 한다.

이통사는 방통위의 결정에 안도하고 있다. 보조금 상한이 약간 올랐지만 과도한 보조금 경쟁이 사라지면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이 절감돼 영업 이익이 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2013년에 발간한 보고서 「이동통신 3사 영업정지 조치의 의미와 문제점」에는 보조금 상한제를 반대하는 주장이 실려 있다. “이통 3사가 단말기 보조금 기준을 준수하더라도 그 보조금 재원이 요금할인 등에 활용돼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을 덜어줄지 확신할 수 없다. 결국 단말기 출고가가 부풀려지고 요금경쟁은 부재한 상황에서 보조금 지급마저 제한된다면 신규 단말기로 전환하려는 소비자들의 부담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또 지난 2013 국정감사 자료집에도 “단통법은 방통위가 단말기 보조금의 상한선을 고시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이용자 간 보조금 차별을 해소하는 문제와는 크게 관련성이 없”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즉, 소비자 차별의 문제는 보조금 지급 구조의 투명성과 관련이 있지 보조금 상한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해외 대부분의 국가가 보조금의 투명한 공개만을 규제하고 지급 액수는 통신사의 경쟁에 맡기는 이유도 이런 논지를 따른다.

앞으로 3년, 단말기 유통시장 건전해질까?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앞으로 3년간 단통법의 시행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이통사는 숨고르기를 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사실 단통법을 취재한 기자는 지난달 대리점에서 아이폰5S를 58만 원에 3년 약정으로 구입했다. 3년 뒤 휴대폰을 바꿀 때는 단말기 유통시장이 건전해져서 호갱님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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