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군대 사법체제 개혁 방안

최근 군대 내 폭력, 고문, 집단따돌림 등의 사건·사고가 연이어 보도되면서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더욱 큰 문제는 군 당국이 군대 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은폐해왔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특수한 군 사법제도가 있다. 지난 16일 미디어협동조합인 국민 TV는 ‘사람 중심의 군대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특집 공개방송을 열었다. 2명의 사회자와 3명의 초청게스트(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디펜스21 김종대 편집장,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 출신 최강욱 변호사)가 현행 군 사법제도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짚었다.

▲ 국민 TV 지하카페에서 지난 16일 '사람 중심의 군대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공개방송이 열렸다. 왼쪽부터 토론자 정욱식, 임태훈, 이재승, 최강욱, 김종대 
사진: 장은비 기자 jeb1111@snu.kr

지휘관, 모든 사법 단계에 개입

현행 군 사법체제에서 군인신분인 사람의 형사사건은 1심과 2심의 경우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 1심은 국방부 또는 각 부대에 설치돼 있는 보통군사법원이 맡는다. 2심은 국방부에 설치돼 있는 고등군사법원이 맡는다. 3심은 민간법원인 대법원이 맡는다.

어떤 군 부대에 형사사건이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현행 군 사법체제에서 각 사단장급 부대의 지휘관은 수사를 시작하는 단계부터 재판 결과가 확정된 후 형을 줄이는 단계까지 전부 개입할 수 있다. 군사법원법에 따라 ‘관할관’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할관이 된 지휘관은 군 검찰과 군사법원 행정을 총괄하게 된다. 국방부는 관할관 제도가 지휘관의 지휘권을 보장하고 소속 장병들의 충성도 고취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관할관 제도가 군 재판과정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지적한다. 관할관은 검찰의 수사를 지휘·감독할 권한부터 재판관 지정권, 판결 확인조치권까지 가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수사와 재판에 모두 관여하는 막강한 권한을 누린다.

그렇다 보니 군 검찰의 수사·기소 단계에서부터 군대 내 형사사건이 은폐될 수 있다. 각 부대의 지휘관은 군 검찰로부터 수사 내용을 보고받은 후 이를 변경할 권한을 가진다. 문제는 자신이 통솔하는 부대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진급이나 업무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사건 은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때문에 지휘관은 수사 내용을 축소·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재판부를 구성하는 단계에도 문제가 있다. 군사재판 1심에서는 군 판사 2명과 심판관 1명이 재판을 담당하는데, 이 때 관할관은 법조인이 아닌 일반장교들 중에서 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 또 군 판사 3인이 재판을 담당하는 2심에서는 관할관이 원한다면 심판관 2인을 재판관으로 추가 임명할 수 있다. 심판관은 법조인이 아닌 일반장교들 중에서 임명되기 때문에 부대 상관인 지휘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심판관은 단순히 재판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재판장까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급을 중시하는 현행 군사법원법상 재판장은 군 판사와 심판관 중 선임인 사람이 맡게 되는데, 심판관은 군 판사에 비해 선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군 행정부에 소속된 심판관이 법관들의 합의 내용을 무시하고 자기 입맛대로 판결을 내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훈련 도중 지나친 체벌로 불구속 기소된 박모 대위에 대해 재판부는 유죄 결론을 내리고 판결문까지 작성했으나 심판관이 재판장 자격으로 일방적으로 무죄를 선고하고 퇴장해버린 사례가 있다. 심판관 한 명의 의견으로 재판부의 합의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재판을 하는 최소한의 의미도 상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판장의 판결이 끝나도 관할관의 영향력은 끝나지 않는다. 관할관은 1심이나 2심에서 재판장의 판결 이후에 형을 감경하는 권한인 확인조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관할관의 권한 행사가 사법권의 행사보다 상위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확인조치권이 전시상황에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시상황에서 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힌 군인들은 전투원으로 활용할 수 없다. 그래서 흉악범이 아닌 군인들을 확인조치권을 이용해 형을 감경함으로써 군 병력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시에는 확인조치권이 원래 취지와 달리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확인조치권은 군형법의 형량이 일반 형법보다 높기 때문에 법적 형평성을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지난 2012년 확인조치권에 의해 감형된 사례를 보면 296건 중 181건은 도로교통법 위반사건으로 군형법이 아닌 일반 범죄를 봐주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군 사법체제, 개혁은 어떻게?

국방부는 최근 군사법원을 유지하는 틀에서 사법부에 대한 지휘관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방향의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사단급 이상 부대에 설치돼 있는 군사법원 대신에 대한민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에 군사법원을 설치하고, 군 판사의 소속도 국방부로 일원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럼으로써 군 판사가 소속 부대의 지휘관의 영향에서 벗어나 보다 독립적인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국방부는 관할관 제도와 심판관 제도의 대대적인 개혁에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으로 현행 군 사법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특히 지휘관이 무소불위의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관할관, 심판관 제도에 대해서다. 임 소장은 “군사법원을 유지하는 미군에서도 지휘관이 재판에 약간이라도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엄격한 처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의원은 지난달 13일 부대 지휘관의 군 검찰, 군 판사에 대한 인사권을 폐지하는 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방부의 ‘셀프 개혁’을 기대할 수 없는 지금 국회 차원에서 군 사법체제를 개혁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관할관의 확인조치권 역시 개혁대상이다. 확인조치권을 지휘관에게 부여하지 않고 국방부 장관과 각 군 총장에게만 부여하는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국방부 장관과 각 군 총장이 담당하는 특수한 소수 사건에 대해서만 형 감경이 가능하게 돼 확인조치권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군사법원, 폐지는 가능할까?

애초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군사법원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최강욱 변호사는 제국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군사법원의 효시를 설명했다. 그는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에 장교를 파견해 식민지 국가를 장악했다”며 “파견된 군인들이 해당 식민지 법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 만들어진 것이 군사법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는 점차 민간검찰과 민간법원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군사법원을 폐지하거나 대부분의 권한을 민간에 넘겨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평시에는 군사법원을 폐지하고 전시에만 운영하자고 논의가 있다. 최 변호사는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군사법원을 운영하지 않는 독일과 대만의 예를 들었다. 그는 “북한보다 훨씬 강한 동독과 소련을 이웃으로 두고 있던 서독도 군사법원이 없었다”며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중국 옆에 있는 대만도 지난 해 군사법원을 폐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군사법원을 유지해야 할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방부는 군사법원 폐지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안보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다.

시민사회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절충안은 군사범죄만 군 당국에 맡기고, 비군사범죄는 일반 경찰, 검찰, 법원이 다룰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현재 우리나라 군 범죄 발생 현황을 보면 3만 건이 넘는 범죄 중 비군사범죄가 85%를 차지한다. 불법전투개시죄, 항명죄 등 일반사회에서 다뤄지지 않는 성질의 군사범죄와 달리 비군사범죄는 군대의 특수성이 부각되지 않아 일반 형사법원에서 담당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군대개혁, 지금이 적기다

지금이라도 군대가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 징병 대상자는 36만 명이지만 10년 뒤에는 18만 명 이하로 반토막 날 예정이기 때문에 군대의 체질 자체가 변해야 해서다. 또 지금은 군 사법체제, 군 옴부즈만 제도 등 군 개혁 방안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거센 시점이기도 하다. 토론회 말미에 디펜스 21 김종대 편집장은 "현행 군사 제도는 10년만 지나도 유지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제도로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군대 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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