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공간: 과거와의 대화
기념공간: 과거와의 대화
  • 이석현 기자
  • 승인 2014.09.28 0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고나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사태처럼 사람들이 기억하고, 반성하고, 회상하고자 하는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사람들은 기념관이나 기념비를 세운다. 이와 같은 건축물이나 상징물을 통틀어 ‘기념 공간(memorial)’이라고 한다. 기념공간은 우리가 과거에 일어난 어떤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유의미한 질문들을 던져준다. 그 사건 혹은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는 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해볼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법 중 하나는 예전에 쓰던 물건을 꺼내보거나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에 찾아가는 것이다. 어렸을 때 썼던 일기장, 옛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매개가 되어 사람들은 각자의 과거 사건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사건처럼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기억’은 무엇을 매개로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일까?

과거의 기억을 담은 공간

◇기념공간의 의의=어떤 사건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 사건과 관련된 ‘증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증언은 타자와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소환되는 말로, 증언을 만들어내는 기념공간은 동일한 공간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타자와 함께 나눈다는 목적을 가진다. 문은미 교수(덕성여대 실내디자인학과)는 “기념공간은 관람자들의 개입과 참여를 통해서 과거의 사건과 소통하는 공간이다”고 말했다.

기념공간은 9.11 테러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그라운드 제로’에서부터 1995년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사고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다. 시대에 따라 기념공간이 지니는 의미는 변화해 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처럼 과거의 기념공간들은 거대한 외관을 갖고 있었고, 왕의 위엄이나 국가의 기상, 전쟁의 영웅을 표현한 건축물들이 대다수였다. 이런 기념공간을 ‘모뉴먼트(monument)’라고 한다. 현대의 기념공간은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슬픔을 위로하는 기능을 주로 갖는 식으로 변화했다.

사진① 베트남 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희생자를 애도하는 것으로서의 기념공간 개념은 특히 마야 린(Maya Lin)이 설계한 미국 워싱턴 몰의 ‘1980년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서 그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사진①) 마야 린은 전쟁을 미화하거나 전쟁의 목적을 합리화하지 않기 위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며 방문객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일어난 참혹한 학살 현장 등에 대해 그들 각자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마치 상흔처럼 지면을 아래로 깎아내어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알파벳 V자 모양의 검은 벽에는 이전의 웅장한 기념물과는 달리 망자를 위한 슬픔과 위로의 메시지가 담겼다.(사진②)

사진② 위에서 내려다본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사진③ 서울대 미술관 앞에 조성됐던 세월호 추모공간

◇기념공간의 기능=기념공간은 사건의 참상과 희생자들의 고통을 말해주는 증인이 되어 관람객들에게 사건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난 6월, 서울대 미술관 앞마당을 가로질러 20개의 노란 등불이 매달렸다.(사진③) 미술관 앞마당은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앞바다도 아니고, 희생자들의 영정이 모셔진 합동분향소가 있는 곳도 아니지만 노란색 등불이 설치된 것만으로 일상적 공간이었던 장소가 ‘기념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이것은 기념공간에서 세월호에 대한 증거, 기록, 기억과 조우함으로써 그 사건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관람객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억을 재생산해내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갔다. 당시 노란색 등불 아래쪽에는 작은 탁자와 필기도구가 설치됐으며, 여기에 관람객들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추모의 메시지를 적음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소환했다. 뉴스나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 사건을 경험했던 관람객들은 당시 자신들이 느꼈던 고통을 희생자들의 기억과 접합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는 기념공간이 물리적인 형태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및 관람객들의 참여와 더불어 설치가 진행돼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기념공간은 타자의 고통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고통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사건’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타인의 고통』에서 수잔 손탁이 지적했듯 고통이라는 것은 언어화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오로지 비유적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고통스러운 사건에 대해 언어로서 증언하는 기록물들이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때 기념공간은 무질서하고 단편적이며 언어화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공간화하는 역할을 한다. 기념공간에 들어선 관람객들이 사건을 그대로 체험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건의 기억들을 자신의 것으로 공유하며 희생자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타자의 기억을 ‘우리’의 기억으로

◇나는 고발한다=기념공간은 전쟁의 고통, 국가폭력, 불의의 사고 혹은 자연재해로 인한 희생처럼 개개인의 기억을 넘어 ‘우리’의 기억으로 남아야 할 사건들을 대상으로 한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나치 분서 메모리얼은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자행되었던 분서(焚書)사건을 다룸으로써 나치의 만행을 고발한다. 이 기념공간은 광장 바닥에 작은 투명 유리판을 만들고 그 아래로 빈 서가들로 가득 찬 거대한 방이 내려다 보이도록 했다. 넓고개방된 광장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방문객들이 그곳을 발견하고 몸을 구부리거나 앉아서 빈 서가를 내려다 보면 비로소 2만 권의 장서가 나치의 만행으로 태워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유리판 옆쪽에 위치한, “책이 불탄 곳에서 결국 사람들이 탈 것이다”라는 하이네의 글이 새겨진 철재 명판은 이곳이 책이 태워졌던 곳임을 암시한다.

국가권력이 공동체에 휘두른 폭력에 대한 기억을 재현한 이 공간은 공동체의 정체성이 새롭게 구축될 수 있게 한다. 이때 관람객들은 독일인들로부터 박해를 당한 유대인과 공동체감을 느끼며, 기념공간을 통해 고발된 폭력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일방적으로 강요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타자를 ‘우리’로 포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관람객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부당한 사건에 분노하며 그 사건에 함께 분노한 타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념공간은 서로 연결점이 없었던 타자들을 공동의 기억으로 묶어내며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재현되지 않도록 공동체의 성원들에게 유대감을 형성시켜줄 수 있다.

◇기억을 통해 고통을 나누다=『기억서사』의 저자 오카 마리는 「타자의 언어」라는 논문에서 “기억을 말한다는 것은 고통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처럼 기념공간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의 고통을 재현한다. 비록 사건의 희생자들이 겪었던 아픔이 온전히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관람객들은 기념공간이 전달하는 사건의 기억을 전달받아 현 세대의 관점에서 사건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기념공간들은 이같은 효과를 위해 실제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에 설치되기도 하며, 빛이나 물과 같은 요소를 조형적으로 활용해 기념 공간에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토차역 추모관에서는 ‘공허함’과 ‘빛’이 주요 모티브가 된다. 2004년 3월 11일, 열차 폭파 테러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1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토차역 추모관이다. 이곳의 테마는 ‘텅 빈 충만’이다. 어떠한 장식적 요소나 사건을 설명하는 사진 없이 추모관 안에는 오직 빛이 들어오는 원형 천장과 어두운 공간만이 있다. 빛이 들어오는 천장 근처에는 여러 나라의말로 그 날의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관람객들은 글귀를 읽으며 사건이 있었던 날의 슬픔을 느끼면서도 계속 밝은 빛을 마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아토차 추모관의 빛에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표현과 동시에 희망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을 기념공간을 통해 애도해야만 하는 이유는 트라우마로 인한 상실감이 극복되지 않았을 경우 우울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에서 상실에 대한 두 가지 반응 태도로서 애도와 우울증을 구분했다. 애도와 우울증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이나 살아있는 사람의 자리에 들어선 어떤 것을 상실했을 때의 반응이다. 애도의 경우 사랑하던 대상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사실을 인정하고 상실의 충격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우울증은 상실한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상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상실감은 급격한 자기애의 상실 곧 자기 비하로 이어지기 쉬운데, 집단적으로 공유된 트라우마가 애도되지 못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우울증의 확산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반파시즘 기념비

독일 하르부르크에 있는 반파시즘 기념비는 관람객의 직접적 참여가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기념공간이다. (그림①)반파시즘 기념비는 파시즘, 전쟁과 폭력에 대항해 평화와 인권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12미터 높이의 이 기념비는 사방에 글씨를 새겨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관람객들은 기념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고 기념비의 아랫부분이 글씨로 가득 차게 되면 그 부분이 지하로 가라앉는방식이다. 이 기념비는 방문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사건의 기억을 강요하기보다는 방문자 스스로 사건을 기억하게끔 만든다. 관람객들은 기념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과정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기념의 함정에 빠지다=이런 외국의 기념공간에 비춰보면, 우리나라의 기념공간에는 적잖은 문제점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문제로 아직까지 많은 기념비들이 관람객과의 상호소통 작용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승환 교수(동양대 시각문화디자인학과)는 “우리나라의 기념공간들이 아직까지 기념대상의 미화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관람객이 스스로 기념대상을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한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승환 교수는 그 예로 4.19기념묘지에 설치된 ‘민주의 뿌리’ 기념탑을 들었다.(사진) 출입로 앞에 세워진 ‘민주의 뿌리’ 기념탑은 화강암으로 된 9개의 기둥과 그 중앙에 놓여진 청동의 자유투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묘역의 다른 기념물들과 마찬가지로 화강암과 청동을 주로 사용했다. 이승환 교수는 “높이 치솟은 화강암의 육중함과 힘, 청동재질의 강인함을 통해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던 당시 정부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며 “관람객들은 이 기념물들 앞에서 숭고함에 압도돼야 하고, 선열의 정신을 숭배하는 객체로서, 이 풍경의 배경이 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기념공간이 가진 메시지의 일방적인 이식에 대해 비판했다.

 

 

 

사진④ 4.19 기념묘지에 설치된 '민주주의의 뿌리' 기념탑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에 대해선 천안에 위치한 독립기념관도 ‘민족주의 적으로 편향된 성향이 있다’라는 비판이 있다. 이는 기념 공간의 교육적 측면과 관련된 것인데, 태지호 교수(호서대 문화기획학과)는 “일본인 전체에 대해 일제라는 의식을 심어주거나 외세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을 심어주는 기념방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기념공간의 장소성과 표현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의미가 퇴색된 기념공간이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삼풍백화점 희생자 추모 기념비이다. 1995년 건물 전체가 20초만에 붕괴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다. 1,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고는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밝혀졌고, 소방구조체계에도 문제가 발견돼 이후 세대에 사고의 중요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고로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의 의의를 알려야 하는 이 추모비는 정작 삼풍백화점 사고가 난 장소와 전혀 다른 양재 시민의 숲에 있다. 이미 사고 장소에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상태다. 장소성이 결여된 데다가 관람객들이 기념비를 방문해도 설명판을 읽지 않는 한 이 사건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주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삼풍백화점 사고와 지금의 우리 세대의 기억의 소통은 기념비를 통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념되지 못한 기억들=현재 기념공간들이 가진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과거 사건의 의미를 오랜 시간 동안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문은미 교수는 여기서 기념공간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기념공간은 관람자들의 개입과 참여를 통해서 구성되고 재창조되는 지속적인 기억의 과정과 같다”며 “기념공간은 관람자들에게 기념대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관람자들이 스스로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유형의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의 기념공간은 강한 것에서 약한 것으로, 영웅보다는 희생자, 전체보다는 개개인, 집단적 체험보다는 개별적체험을 더 중요시하게 된 만큼 자기완결적 형태로 단호하게 존재와 의미를 주장하던 방식에서 방문자 스스로 기념공간이 지닌 기억과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수한 사건들 중 어떤 사건을 선정해 기념공간을 만들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미국 9.11 테러는 앞에서 설명했던 ‘그라운드 제로’를 비롯한 많은 기념물들이 사건의 참상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주민 4천 명이 레바논 우파에게 살해당한 텔알자아타르 사건에 대해선 기념공간은 커녕 아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똑같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인데도 하나는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남고, 다른 하나는 제대로 기억되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의’ 시선으로 사건을 기념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던져준다. 어떤 사건이 어디까지나 ‘그들의’ 사건으로 남아 ‘우리의’ 것으로 기억되지 못할 때, 그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기념공간이 나아갈 길=이승환 교수는 앞으로 한국의 기념공간이 발전하기 위한 모델로 독일의 ‘반기념물’을 들었다. 유대인 학살과 나치의 잔인한 행위를 비판한 이 공간은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공간이다. 그는 “기념이라는 행위를 둘러싼 기념위원회와 디자이너, 시민들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하고 조직할 것인가라는 상호커뮤니케이션구조의 문제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승환 교수는 “앞으로 세워질 한국의 기념공간들은 일방적이고 지나친 이미지 강조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고 말하며 기념대상에 대한 일방적인 경험의 강요가 기념공간과 관람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억압하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기념공간도 공공 공간의 한 종류인 만큼 공공 인터페이스의 의미와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기념공간의 개선점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의 사건들이 지닌 가치를 보존하고, 이어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건은 사람들에 의해 마음대로 편집될 수도 있고, 결국 사건이 지닌 의미가 훼손돼 우리 기억 속에 더 는 남아 있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기념공간은 과거의 사건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현 세대의 생각을 반영하는, 과거와 현재 사이 소통의 매개체다. 기념공간이 앞으로도 매개체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사건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과 더불어 어떻게 후대와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