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고전이 말하는 평등

영국에서 명예혁명이라 불리는 시민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689년,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통치론』을 출간한다. 이 책에서 로크는 절대군주정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통한 정부 구성을 옹호하는 논설을 펼친다. 이를 위해 로크는 ‘천부인권’, ‘자유’, ‘평등’, ‘소유권’, ‘권력분립’, ‘의회의 독립성’, ‘저항권’ 등 ‘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이념의 핵심 개념들을 정의하고 그로부터 일관된 정치이론을 이끌어낸다.

자유주의는 이후 수백 년간 다양한 형태로 분화돼 현재 수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제도를 뒷받침하는 이념으로 등극했다. 이런 자유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분화되는데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로 큰 역할을 할 때는 봉건적 억압을 철폐시켜 자유로운 개인 간의 ‘평등’을 불러오지만, 경제적 자유주의가 극단적으로 확장될 때에는 ‘분배의 평등’이 저해된다는 양면적인 모습을 가진다. 이에 로크의 『통치론』을 ‘평등’과 관련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해 『통치론』의 번역자인 강정인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의 연구실을 찾았다.

▲ 존 로크의 소유권 개념에 담긴 평등 사상과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 설명하는 강정인 교수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자연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소유권에 한계는 있는가?

로크의 이론이 ‘평등’에 대해 양면적인 모습을 취하는 이유는 그가 ‘소유권’을 바탕으로 시민을 정의하며 그로부터 정부의 구성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로크에게 있어 ‘소유권’은 단지 자산(estate)뿐 아니라 생명과 자유를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신이 주신 침해당할 수 없는 권리다. 로크는 이를 침해하는 전제적 왕정의 정당성을 부정함으로써 정치적 ‘평등’을 실현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 소유권이 극단적으로 옹호될 때는 부의 축적이 제어되지 못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정치적 평등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막으려면 소유권에 한계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과연 로크가 그런 한계를 인정할까?

이에 대해 로크는 ‘자연상태’의 사람들은 하느님이 주신 자연을 공동 소유한다고 한다. 다만 모든 사람은 각자의 신체에 대해서는 양도할 수 없는 소유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누군가 자연물에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노동을 섞는다면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 이로 인해 발생한 사유재산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데 이를 로크는 자연권이라 규정한다.

정부가 구성되기 전을 의미하는 ‘자연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상호 자연권 보장에서 연유한 자연법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이는 신의 피조물로서 역시 같은 피조물인 서로를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연법의 집행자가 된다. 즉 누구에게나 자연법을 어기는 사람을 처벌할 권리가 있는데, 이는 범법자들이 자연법에 의해 형성된 평화를 무시하고 파기함으로써 인류 공동의 적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이에 로크는 「창세기」의 구절을 들어 “남의 피를 흘리는 자는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고 서술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상태는 곧잘 전쟁상태로 이어지게 되는데, 전쟁상태란 하느님의 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자연법을 어기며 타인의 소유권에 위해를 가하고 이를 격퇴하기 위해 대응이 일어나는 ‘적의와 파괴의 상태’다. 강 교수는 “자연법을 어기는 절대군주정 또한 아직 동의에 의한 정부가 서지 않은 전쟁상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전쟁상태에 직면해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와 재산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를 구성하여 따르게 된다.

이처럼 로크는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못 박아 이로부터 절대군주정을 배제하고 시민들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소유권’이 절대 침해당할 수 없는 권리라면 부의 분배에 있어 문제가 생길 것만 같다. 이에 로크는 ‘자연상태’에서 공유물이 사유화될 때 나머지 공유물이 충분히 남아있어야 하며 또 획득한 사유물은 썩히는 등 낭비돼선 안 된다는 한도를 제시한다. 그럼에도 로크에 의하면 금, 은과 같은 화폐의 도입으로 소유물이 썩지 않아 낭비되지 않을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사유물의 한도가 거의 한계를 갖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로크의 이론이 부의 무제한적 축적을 정당화하면서 당시 대두하던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해석한 맥퍼슨(C.B. Macpherson)의 설명은 주류적 해석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맥퍼슨은 로크가 자연적으로 사유재산을 획득할 수 있는 한계로서 제시된 ‘썩지 않아야 함’이 화폐의 도입을 통해 자동으로 충족된다고 서술하는데, 이와 동시에 화폐를 매개로 한 노동의 ‘판매’가 가능하게 돼 자본가에 의한 ‘자본의 무제한적 축적’이 정당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로써 로크의 이론체계는 극단적인 경제적 자유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강 교수는 자신의 논문 「로크사상의 현대적 재조명」을 통해 로크의 이론이 ‘자본의 무제한적 축적’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로크가 언급한 노동의 판매는 전통적인 주인-하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자본가-노동자의 관계에 확대해 적용하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로크의 시대가 아직 산업자본주의의 시대가 아닌 만큼 섣부른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폐의 발생은 자연상태의 연장으로 노동의 판매로 이뤄지는 부의 축적도 자연상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자연상태에서 화폐의 도입은 사유화를 진행시켜 재화에 대한 경쟁을 강화하는데, 이 때문에 전쟁상태가 쉽게 도래하고 정부가 구성되면 사람들은 자연권이 침해받지 않는 한 오직 실정법체계를 따르게 된다. 그런데 동의에 따라 구성된 실정법체계는 소유권의 보장을 위해 개인의 소유권을 일부 양도받기에 자연상태의 재산획득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리고 맥퍼슨이 제기하는 ‘자본가의 무제한적 부의 축적’은 정부가 세워진 이후의 것이다. 강 교수는 “로크도 공공선에 따라 재산에 대한 법률을 다수결로 통과시킨다면 시민의 재산을 규율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이에 따라 ‘절대적 소유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로크의 ‘공공선’은 자연법에 의해 확보된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전하려는 의지라고 볼 수 있기에 소유권의 제한도 분명 경계를 가질 것이다.

앞의 주장과 맥퍼슨의 주장은 어찌 보면 정반대의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병존하는 상황은 로크 이론에 포함된 모호함이나 비일관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혁명의 수단에서 경제적 우파의 무기로 전환된 자유주의 이념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강 교수는 “당시의 로크는 혁명가였다”며 “오늘날의 기준이 아닌 당대의 맥락에서 로크를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점’과 새로운 ‘로크 읽기’

이처럼 로크의 이론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형성된 맥락을 고려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강 교수는 “비유하자면 로크는 자유주의 운영프로그램 1.0버전을 만든 셈”이라며 “이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고민하는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존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보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로크의 이론을 ‘시장자유주의’에만 활용할 때 잃게 되는 ‘평등’의 요소가 있는데, 이론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이를 보완할 방법이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크가 유산자계급에 유리한 이론을 제기한 것이라면 그 이유를 살펴 자유주의 프로그램이 무산자계급에 우호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민이 가능한 것은 로크의 『통치론』이 고전으로서 보편적인 질문에 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로크는 『통치론』에서 인간은 왜 정치적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지 물었다”며 그 답으로서 “개인이 동의했을 때만 복종할 수 있고, 공공선을 증진하는 방향으로만 그 권위가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 답은 로크의 이론이 ‘소유권’ 개념에 기반을 두지만 그 본의에는 개인의 자율성과 공공의 이익이 자리한다는 점을 알려주는데, 이를 파악해 로크를 읽는다면 ‘평등’을 고려해 우리 제도를 더욱 개선해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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