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자전거」

사람들에겐 누구나 상처로 남는 기억들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트라우마’에 대해 과거의 기억이 파편으로 쪼개진 채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사람들은 본질적인 사건이 무엇인지는 망각한 채로 기억의 단편에 의해 고통 받게 된다. 12일(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소극장에서 공연되는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연극 「자전거」는 조각난 기억들이 주는 상처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그 모습 뒤에 있는 트라우마의 근원인 ‘가려진 진실’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묻고 있다.


「자전거」는 친일행위를 일삼다가 해방 이후 사람들에 의해 저수지에 빠져 죽은 할아버지, 그리고 6.25전쟁 때 마을 사람들을 등기소에 가두고 불에 타 죽게 하는 데 일조한 아버지를 둔 ‘윤서기’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연극은 윤서기의 ‘사적인 이야기’만 다루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와 함께 식민통치시절부터 세월호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가 겪은 ‘역사적 상흔’들이 동시에 겹쳐지며 극이 진행된다. 극의 장면은 윤서기의 이야기에서 세월호 참사로, 이어서 대통령 선거 풍경이 연출되는 등 매우 빠르게 전환된다. 이 과정 속에서 극중 윤서기는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역사적 상흔을 만나게 된다. 연극은 윤서기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상처와 절망의 사건이 담긴 장면을 번갈아 연출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잊어버린 채 단편적인 기억만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연극은 말할 수 없는 것들, 설명되지 못하는 진실과 그로 인해 방황하는 인물들의 모습만 보여줄 뿐,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심어주는 것은 철저히 배제했다. 대신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제기하도록 만들어주고, 그 질문의 과정을 특별한 체험 속에 녹여낼 수 있도록 ‘자전거’라는 장치를 고안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의 양 옆에는 각각 5대의 자전거가 일렬로 놓여 있다. 관객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 발생하는 전기로 영사기에 불빛이 들어온다. 연극의 러닝타임 내내 자전거에 오른 관객들은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영사기가 꺼져버리고 극도 진행되지 않는다. ‘성북동비둘기’에서는 “페달을 통해 빛을 밝히는 것은 눈앞에 놓인, 가려진 진실을 응시하는 참된 방식을 고민하는 행위와 같다”고 밝혔다. 반면 페달을 밟지 않고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은 무대의 역사적 기억이 주는 상처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도 자전거를 밟는 관객들을 방관하게 되는 이중적 태도를 가진 채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 삶 속에는 여전히 속이는 말과 가려진 진실들이 난무하고 있다. 관객들은 트라우마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타고, 윤서기의 단편적인 기억 사이를 거닐면서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를 찾아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왜 우리가 끊임없이 트라우마라는 자전거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지를 고민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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