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출판생태계 살리기 위한 첫걸음 돼야
도서정가제, 출판생태계 살리기 위한 첫걸음 돼야
  • 정서영 기자
  • 승인 2014.10.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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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도서정가제 개정

 책값이 폭락했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최대 90% 세일’, ‘선착순 100원’의 이벤트 등 너도나도 경쟁하듯 ‘폭탄 세일’을 하며 책을 팔아치우고 있다. 11월 21일 시행될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황급히 남는 재고를 해치우고 있는 것이다. 균형이 무너진 출판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도입되는 도서정가제의 시행을 목전에 둔 출판 시장의 모습이다.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어지럽혀진 도서생태계를 바로잡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까?

도서정가제, 무엇이 바뀌었을까?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에서 책정한 정가를 기준으로 책을 판매하도록 온라인 서점의 할인을 제한하는 제도다. 기존의 도서정가제는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구간도서나, 실용서, 학습참고서에 대해서는 할인이 자유로워 일부 출판사들이 인문학 서적을 실용서로 분류해 할인을 하는 편법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90년도만 해도 동네 서점들은 지역 내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본격적으로 ‘가격 할인’에 눈독을 들이게 되고, 오프라인 출판 시장은 위기를 맞게 된다. 온•오프라인 서점 간의 가격 격차가 심해지자 2003년에 온라인 서점에서의 할인을 (나온 지 1년 이내의 신간에 한해) 10%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도서정가제가 실시됐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시행이 무색하게 온라인 서점은 구간도서의 할인률을 대폭 확대했다. ‘무한 할인경쟁’ 속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소수업체만 살아남고, 경쟁에서 도태된 수많은 동네 서점들이 사라졌다. 경영난이 심화된 것은 출판사도 마찬가지였다. 출판사들은 심하게는 정가의 반값으로 온라인 서점에 책을 팔며, 얼마 되지 않는 마진을 챙겼다. 이에 아예 할인가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책값은 더욱 올랐다. 이런 일이 일어나던 10여 년 동안 출판계에서도 도서정가제의 개정을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등 여러 시도를 해왔지만 대부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유야무야됐다.

작년 1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최재천 의원이 발의한 도서정가제 개정안도 1년이 넘도록 계류 중이었다.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었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박익순 소장은 “진척이 되지 않던 법안이 통과될 수 있던 까닭은, 국가적 비극의 상황에서 당시 국회가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이려 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실제 법안은 지난 4월 29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지 2주도 채 안 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기존의 조항을 개정해 어지럽혀진 출판 시장을 바로잡는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릴 예정이다. 개정된 도서정가제에는 △총 할인율은 정가의 15% 이내에서 적용 △출간 후 18개월이 경과한 구간도서에 대해서도 도서정가제 적용 등이 포함된다.(그림①)

 

그림①도서정가제와 개정된 도서정가제 비교

도서의 정가는 왜 지켜져야 할까?

현행 도서정가제는 온라인 서점에 허용하는 할인을 오프라인 서점에는 허용하지 않는 ‘오프라인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많다. 동네 서점의 높은 가격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불신을 갖게 하고, 오히려 동네 서점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오해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1997년 5,407개였던 동네 서점은 2013년 말 2,331개로 줄어들었다.

가격 경쟁에서 도태된 동네 서점의 수가 감소하면서 몇 안 되는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이 유통 시장을 독점하게 됐다. 유통 판로가 축소되고 동네 서점이 출판사의 책에 대한 구매력을 잃게 되자 출판사는 경영 악화에 시달렸다. 한정된 시장 안에서, 영세한 출판사들이 책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덤핑’이 횡행했다. 변정수 출판평론가는 “출판은 근본적으로 ‘초기비용의 경직성’이 높은 모험 산업이기에, 시장 전망이 기대에 못 미쳐도 생산비용을 줄일 수 없다”며 “그러나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고 할인을 하다보면, 소비자들은 왜곡된 가격관념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제값에 파는 책들에 피해가 돌아왔고, 이는 곧 출판 시장의 쇠퇴로 이어졌다.

동네 서점의 소멸이 낳은 출판사의 경영 악화는 소비자에게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출판사가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주저하면,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책의 다양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부재는 곧 출판 시장의 침체와 직결된다. 도서정가제는 출판 시장을 건강하게 회복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조치인 셈이다.

개정된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책도 일반 상품과 다를 바 없이 자유 시장에서 승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온라인 서점의 대표격인 알라딘은 이에 대해 반대 성명서를 게재하고, 회원들의 반대 서명을 받았다.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행위”라며 “판매가격 통제로 출판 시장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산업의 혁신을 저해하는 과보호가 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이에 반기를 든 출판사 수십여 곳이 거래 중단을 선언했고, 알라딘은 개정안의 본래 취지는 일축한 채 한 쪽의 입장만을 내세웠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결국 알라딘 측은 거래 중단 조치와 부정적인 여론에 당혹감을 보이며 서명 운동을 중단했다.

도서정가제의 개정안을 찬성하는 측은 도서가 ‘문화적 공공재’이기 때문에 일반 상품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책은 문화적인 가치를 담지하는 실체이기 때문에 일반 상품과는 다른 특수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책은 정부가 적절히 개입해서라도 그 가치를 지켜내야 할 대상이 된다. 인문사회과학전문서점 ‘그날이 오면’의 김동운 대표는 “삶의 의미에 대해 되새겨주고 깊이 있는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연구들이 보통 책의 형태로 출간이 많이 된다”며 책의 가치를 역설했다.

완전한 도서정가제, 프랑스의 ‘랑법’

프랑스는 대표적으로 완전정가제인 ‘랑법’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랑법’은 독자에게 똑같은 가격으로 책을 판매하고, 동네 서점의 활성화와 콘텐츠의 다양성을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1981년에 처음 도입됐다. 박익순 소장은 “미국, 영국 등 영어권 국가는 전 세계적인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가 규정이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비영어권 국가인 만큼, 프랑스의 경우를 모범 사례로 삼아 비교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완전정가제 도입 후 프랑스는 인문•학술서의 종수가 늘어나는 등 출판계의 다양성이 확보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서점밀집도가 높은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 이후 대형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등장으로 균형이 무너질 때도, 온라인 서점의 할인과 무료 배송을 금지하는 ‘반아마존법’을 제정해 적극적으로 지역 서점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여전히 온라인 서점에게 할인을 허가하는 등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완전 도서정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지금의 정가제는 ‘정가’에 대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맘대로 할 수 있도록 선택하게 하는 셈”이라며 “편법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가’는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판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한 후속 과제는?

변정수 출판평론가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해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담보되는 건 아니듯이,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바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도서정가제는 망가진 시장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첫 걸음이며, 이를 후속 과제의 해결이 필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요구되는 점은 소비자들에게 도서정가제에 대한 당위를 설명하고, 불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법안이 급속도로 통과되면서 ‘도서정가제’ 이슈에 대해 여론을 물을 기회가 없었기에 이 과정은 더욱 필요하다.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의 장동석 편집주간은 “어제까지 90% 할인하던 책을 오늘부터 정가로 판매한다면 그것 자체가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출판업계가 책값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춘희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책값을 일부러 높게 측정한 후에 할인해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이에 대해 해명이 돼야 책값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판 다양성을 위해서도 추가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효율성을 좇는 시장의 특성상, 시장이 제 기능을 한다 해도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변정수 출판평론가는 “출판 다양성을 보장하는 토대는 도서관과 그것을 거점으로 형성될 다양한 독서 커뮤니티”라며 “공공도서관 4,000개의 시대가 온다면 대략 1조 원 정도의 수요가 공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셈이다”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책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지역의 문화 커뮤니티를 살리기 위한 동네 서점들의 자구책들도 눈여겨 볼만 하다. 올해 7월 부산 해운대구에서는 부산서점협동조합과 ‘동네 서점 살리기 협약식’이 열렸다. 고사 직전까지 내몰린 부산 지역 동네 서점들이 단합해 공공도서관에 도서를 납품하고, 그 수익금의 70%를 해운대구에 환원하는 ‘새로운 수익창출 모델’을 제시했다. 서울에서도 작년 9월 동대문구, 성동구 등 동부 지역의 서점 5개가 협력해 ‘동부서점 협동조합’을 만들어 북카페, 저자와의 대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날이 오면’의 김동운 대표는 “서점이 안정적일 땐 2층을 세미나카페로 열어 사회과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 담소를 나누는 등 프랑스 철학카페처럼 운영을 했었다”며 “동네 서점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돼 지역 문화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도서정가제가 시행까지 약 한 달을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는 지금, 어지럽혀진 출판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선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 책과 출판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건전한 출판 시장을 세우는 토대임을 잊지 말고, 도서정가제라는 첫걸음을 신중히 내딛어야 할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상적인 출판생태계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그래픽: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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