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산재보험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이 올해로 50돌을 맞았다. 1964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장제도로 출발한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보상하고 이들의 일터 복귀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부는 지난 50년간 산재보험의 보장수준을 향상하고, 공정하고 전문적인 산재인정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여전히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노동자가 많고, 기업들의 산재 은폐도 심각한 수준이다. 또 산재보험 승인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려운 까닭에 노동자 스스로 혜택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에 지난달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산재보험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어 정부, 노동계, 경영계, 전문가들(이호근, 유성규, 김인아 등)과 함께 산재보험의 개선책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노동자의 버팀목이 되지 못하는 산재보험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모든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으려면 먼저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자성’이란 ‘근로기준법(근기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는가’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행법과 판례에 따르면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퀵서비스 기사 등 최소 100만 명이 넘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노동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의 혜택에서 배제된다. 우선 특고노동자는 근기법상 노동자와 달리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위임•위탁이나 도급계약 혹은 사업자계약을 맺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또 특고노동자는 계약 건수나 배달 건수 등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는 점에서 기본급•고정급을 받는 일반 노동자와 다른 까닭에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드물다. 예컨대 퀵서비스 기사는 위임이나 도급계약을 맺고 휴대용 이동단말기(PDA)를 통해 광범위한 지역으로부터 주문을 받을 뿐 사업주로부터 직접 배달과 관련된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 노무 제공의 대가로는 배달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특고노동자도 사업주의 지시와 감독을 무시할 수 없으며 수당 지급 등 경제적 측면에서 사업주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일반 노동자와 비슷하다. 이호근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노동시장 내 고용 형태는 다변화되고 있지만, 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2000년대 초반부터 특고노동자의 노동자성은 인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들이 산재보험을 통해 보호받을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나왔다.

이후 논의가 진전을 보이면서 그나마 2008년에 특례조항이 제정됐고 특고노동자 중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가, 2011년엔 택배 기사와 퀵서비스 기사가 산재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특고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0%에 불과하다. 특례조항과 함께 도입된 적용제외규정 때문이다. 적용제외규정은 특고노동자 본인이 원하면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도입 당시 사용자가 보험료 부담을 피하고자 노동자에게 적용제외신청을 강요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호근 교수는 지난 6년간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특례조항은 14년간의 논의를 통해 얻어낸 유일한 입법적 성과인데 이마저 그 실효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업의 산재 은폐 부추기는 유인 구조=사업주는 산재가 발생하면 산재 보고를 하고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하지만 이를 건강보험으로 대체하려는 관행이 만연하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따르면 건강보험으로 처리했다가 환수된 산재 건수가 2012년 33만여 건, 2013년엔 44만여 건에 달했다. 심지어 사용자 단체인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자체조사 결과에서도 기업의 산재 은폐율은 2006년 64%, 2010년 66%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업이 산재 발생을 감추려는 이유는 산재를 은폐하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산재 은폐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제도는 개별실적요율제다. 이 제도는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기업의 보험료는 올리고 적게 발생하는 기업의 보험료는 깎아줌으로써 기업에게 산재 예방 동기를 부여하려는 취지로 1964년부터 시행됐다. 2012년 기업이 이 제도를 통해 감면받은 보험료는 1조 1,37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정작 일선 현장에선 기업이 보험료를 덜 내기 위해 이를 악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법인 참터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산재 발생 빈도가 높은 사업장일수록 산재 은폐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더 커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산재가 많이 발생해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사업장은 산재를 한 건 감추면 더 많은 보험료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재 은폐가 적발되더라도 보험료율은 오르지 않는다. 이에 권익위도 지난 5월 개별실적요율제가 산재 은폐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와 경영계는 “개별실적요율제가 산재 은폐와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태도를 고수한 채 지난달 사업장 간 형평성을 위해 제도의 확대 시행에 나섰다.

설령 산재를 은폐했다가 적발되더라도 기업이 받게 되는 불이익이나 처벌 수준은 낮다. 경영계는 “현재 처벌 수준은 낮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 사업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 과정에서 최근 1년간 적발된 산재 발생 미보고 행위에 대해선 1건당 0.2점씩 최대 2점의 감점이 부여되는 동시에 최근 3년간 재해율이 평균 이하일 경우 최고 2점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입찰 참가 자격을 관리하기 위해 산재를 은폐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또 산재 발생 시 산재조사표를 제출할 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다. 이에 대해 유성규 노무사는 “현행 처벌 구조는 기업에게 산재 은폐 시 심각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신호를 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엄격한 입증책임도 산재이용 가로막아=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가족과 유족들은 7년간 삼성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를 알리고 근로복지공단(공단)을 상대로 법적 공방을 벌인 끝에야 간신히 지난 8월 법원으로부터 업무와 백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원고 일부에 대해서는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가 의심되지만, 그 수준이나 정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노동자가 질병으로 산재보험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공단으로부터 해당 질병이 산재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산재 인정에서 핵심은 ‘그 질병이 유해한 업무환경으로 인해 발병한 것인가’인데 이를 입증해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있다. 하지만 노동자는 수시로 변화하는 업무환경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데다가 시간적•금전적으로도 업무와 재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여력이 부족해 실질적으로 입증책임을 다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업은 업무환경을 통제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영업 비밀을 이유로 정보 공개를 꺼린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은 삼성반도체공장 노동자에게 발병한 백혈병이 산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동부에 ‘삼성반도체•LCD 공장에 대한 안전보건 종합 진단 보고서’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보고서엔 질병과 업무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인 보호구 지급 현황, 최근 3년간 재해 발생 현황, 노동자 건강관리 현황 등의 정보가 빠져있었다. 정보 누락에 대해 노동부는 기업이 해당 자료가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며 공개를 꺼렸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 임자운 변호사는 “업무환경에 대해 노동자가 아무리 알고자 해도 회사는 자료를 주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며 정부는 이런 회사의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현장에선 업무 관련성이 없어서 개인 질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업무 관련성을 알 수 없어서 개인 질병이 된다”고 성토했다.

▲ 그래픽: 강동석 기자 tbag@snu.kr

산재보험, 취지에 맞게 정비돼야

우선 10%에 불과한 특고노동자의 산재보험가입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그동안 노동계가 강력하게 요구해온 특고노동자 적용제외규정의 폐지를 고려해 봄 직하다. 실제로 적용제외규정 폐지는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특고노동자 산재보험 가입 확대’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은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적용제외규정을 폐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률 개정안은 지난 4월 일부 여당 의원과 경영계의 반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상반기 국회 일정이 종료됐고 관련 논의는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이호근 교수는 “일단 적용제외를 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시급히 정비돼야 한다”며 “특고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춰 제도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산재를 은폐하는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유성규 노무사는 △산재 은폐가 드러난 기업은 개별실적요율제도를 통해 인하 받은 보험료를 몰수하고 일정 기간 보험료 인하를 유예할 것 △정부 사업 입찰 심사에서 산재 은폐 행위에 대한 감점 규모를 확대할 것 △과태료를 상향 조정할 것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전국의 사업장을 감독하고 산재 은폐를 적발하는 노동부 담당자는 300명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유 노무사는 “어떤 좋은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실효성 있는 감독이 실행되기 매우 어렵다”며 “노동안전보건 담당자의 수를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 인력을 양성해 산재 판정의 합리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담당자의 재해조사 역량을 강화한다면 노동자가 질병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질 높은 재해조사로 이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아 교수(연세대 보건대학원)은 “현재 노동부엔 재해조사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없어 행정직원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며 “인간공학, 산업위생 등의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전담직원을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과거 어떤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가 입증책임에서 결정적인 상황에서 관련 정보를 축적해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북유럽 국가에선 ‘직무-노출 매트릭스’를 작성해 연도별로 각 직종에서의 유해 물질 노출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벤젠에 대한 직무-노출 매트릭스를 구축해 벤젠 누출과 혈액암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석면 등 다른 유해 물질에 대해서도 직무-노출 매트릭스를 구축해 판정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이고 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합의된 산재 판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덴마크에선 업무상 질병 판정에 참여하는 위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잘 구축돼 있고, 이에 대해 위원들 간 합의를 이루고 있다”며 “우리도 의학적 판단과 사회적 흐름을 반영해 업무상 질병 판정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참고문헌을 꾸준히 보강해 최신 연구가 판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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