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A 씨와 함께 일하는 B 씨는 전기실이 너무 덥고 환기가 필요하다고 느껴 환풍기를 틀었다. 하지만 환풍기가 기계 뒤편에 있어 효과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소음만 커져 서로 대화도 하기 힘들어졌다. 옆에 붙어 있는 기계실도 힘든 상황인 건 마찬가지다. 그곳은 난방기구가 전혀 없이 창고에 책상만 몇 개 가져다 둔 모양새라 겨울에 고통을 겪고 있다. 몇 년 동안의 문제제기 끝에 지난달부터 가장 문제가 심각한 기계실 네 곳의 개선작업이 시작됐지만 언제 개선이 이뤄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현재 서울대의 청소 및 경비, 그리고 기술직 노동자들인 시설노동자들의 대우와 노동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현재 700여 명의 시설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시급에 근접해있고, 이는 서울지역 주요 사립대에 비해 1,000원 가량 낮은 금액이다. 매년 신규 고용계약은 전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이뤄지며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 상황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런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간접고용으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본부는 직접고용의 장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예산이 없어 힘들다는 답변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를 언제까지 묵과할 수만은 없다. 이에 『대학신문』은 서울대 시설노동자 현황과 문제점을 짚고, 서울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길을 모색해보고자한다.

지난달 3일 민주노총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분회(일반노조)는 네 곳의 단과대 및 기관의 용역업체가 야간수당 등 일부 수당의 과오 산정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대학신문』 2014년 9월 22일자)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인해 바뀐 통상임금 기준에 따라 요청한 금액이었다. 두 곳의 업체는 받아들였지만 한 곳의 용역업체는 답변을 미뤘고, 다른 한 곳의 용역업체는 본부에 판단해달라며 그 공을 넘겼다. 서울대에서 일하는 시설노동자의 고용 문제였지만 당시 캠퍼스관리과는 “학교는 예산을 지원할 뿐 임금 협상 문제는 전적으로 용역회사와 노조 측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사례에서 나타나듯 서울대는 시설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는’ 간섭하지 않는다. 현재 서울대는 단과대·부속기관 등 각각의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용역업체를 선정해 시설노동자를 간접고용하고 있다. 본부는 각 기관에 시설노동자 고용 및 용역업체 선정 기준에 대한 기본정보가 담긴 입찰안내서를 보내고, 기관들은 이를 바탕으로 공개입찰, 또는 특별한 경우 수의계약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한다. 그렇게 선정된 업체는 노동자 고용과 관리부터 청소·경비 등의 담당 업무까지 전담한다. 이 때문에 시설노동자에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노동자들은 서울대가 아닌 용역업체와 소통을 하고, 임금 협상 등의 단체 협상도 용역업체와 진행하게 된다.

시설노동자들의 현황: 간접고용

서울대의 시설노동자 간접고용은 96년 ‘국립의 각급 학교에 두는 공무원의 정원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시작됐다.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시설관리 정원이 대폭 감소하자 시설노동자 수를 유지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으로 전환하게 됐다. 하지만 간접고용 시행 직후의 노동 환경은 매우 심각해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2000년 설립된 시설노동조합(시설노조)은 설립 이후 최저가 입찰을 통한 용역 업체 선정이 최저임금 미보장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지적했지만 제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후 2011년 복수노조 허용으로 일반노조가 설립돼 2개의 노조가 시설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2012년에 벌어진 용역업체의 부당해고, 성추행 사건 등은 간접고용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서울대는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근로조건이행확약서를 도입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본부의 용역 가이드라인인 입찰안내서는 2000년 이후 숫자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주요 내용들이 한 번도 수정되지 않은 상태라 아직 갈 길이 멀다. 10여 년에 걸친 노조 활동으로 불법도급, 용역업체의 임금체불 등의 문제들은 개선됐으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최저가 입찰을 통한 용역업체 선정과 간접고용제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본부는 간접고용을 하는 이유를 재정 때문이라고 밝혔다. 캠퍼스관리과 정의돈 담당관은 “시설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은 알고 있고, 직접고용이 바람직하다는 것에도 동의한다”면서도 “본부의 예산 문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설노동자들의 간접고용 방식은 시설노동자 고용 및 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 업체가 관련 업무를 담당해 본부의 행정업무 효율성 증대, 공개입찰을 통한 최저가 업체 선정으로 서울대의 재정 운용을 최적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마땅히 져야할 책임마저 회피하는 데 이용되고 있어 매년 노동자들에게 문제가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노동불안정에 시달리는 시설노동자

불안정한 고용은 시설노동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시설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 기간제 근로자로 고용되며 대부분 1년 단위로 고용된다. 그러나 기존 용역업체와 서울대 간의 계약기간이 끝나 용역업체가 바뀔 경우 신규 용역업체는 기존 용역업체의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할 책임이 없다. 근로자들은 새로운 용역업체에 고용이 돼야만 서울대에서 계속 일할 수 있지만 서울대와 용역업체와의 계약에는 고용승계 조항이 없어 고용여부를 전적으로 업체에 맡겨야 한다. 이로 인해 신규고용기간과 임금 단체협상 기간이 겹치는 경우에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기도 한다. 신규 용역업체로부터 고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를 인정받지 못하고 신규 고용이 된 것이기 때문에 고용기간에 비례하는 고용 보험의 실업 급여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대가 간접고용을 하며 절감한 비용에 대한 부담이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는 것 또한 비판의 여지가 있다. 2014년 현재 시설노동자들은 최저임금(5,210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청소노동자는 기본급으로 110여만 원을, 경비노동자는 130여만 원을 받는다. 상여금과 야간수당을 합쳐도 20여만 원 정도 늘어날 뿐이다. 일반노조 서울대분회 정우춘 분회장은 “지난 6월 결정된 서울지역 14개 대학의 시설노동자 시급인 6,200원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라며 “임금 개선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반노조는 지난 22일 캠퍼스관리과에 시급을 6,000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요청했고 캠퍼스관리과는 이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는 입찰안내서를 통해 용역업체가 지불해야 할 최저임금을 명시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용역업체가 이를 초과하는 임금은 지불하지 않고 있어 이 금액이 최저이자 최고임금이 된 상황이다. 이런 '최저'임금 은 용역업체가 최저임금법마저 위반하게 만들고 있다. 노조는 매해 3월 임금협상을 진행하는데 그해 2월까지는 이전해의 임금을 유지한다. 협상 이후 1, 2월 최저임금 부족분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주긴 하지만 이미 1, 2월에 대해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상황이 된다. 심지어 올해부터 최저임금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예고돼 최저임금법을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 없이 곧바로 최고 2천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될 예정이다. 서울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 서울대에 고용된 용역업체가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처벌 받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캠퍼스관리과 강석기 과장은 “이것은 전혀 체불이 아니며 법을 어기는 일은 없다”며 “부족분에 대해서는 3월 중에 항상 지급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간접고용을 통해 시설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책임도 피하고 있다. 기술직 노동자의 경우 기계실의 냉·난방과 소음 문제의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 본부가 환경 개선 약속을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지난달에서야 가장 심각한 기계실 몇 군데에 대한 개선을 위해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 일반노조 기계전기분회 김재일 사무국장은 “냉·난방 문제뿐 아니라 시설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곳의 샤워실, 화장실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며 “위생도 매우 좋지 않을 뿐더러 남녀공용인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야간수당 및 근무시간·휴게시간 구분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우춘 분회장은 “야간 근무시간과 휴게시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야간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본부가 나서서 명확한 야간 근무시간과 휴게시간을 정해줘 보장된 휴게시간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은 해결하려고 해도 노동자와 서울대 간의 소통구조가 이를 막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 환경을 제공하는 실질적 사용자인 서울대(또는 단과대)와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통상임금 판결에 의한 변화, 법인화로 인한 회계 기준일 변경에 의해 나타나는 임금 손실 등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문제들에도 공식적으로 한 테이블에 앉아 협상하지 못하고 한 다리를 거쳐 소통하다보니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임금, 노동 환경 등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용역 가이드라인인 입찰안내서의 개정과 본부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노동자들도 본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입찰안내서를 개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입찰안내서를 개정하면 임금 인상과 야간근무 및 휴게시간 구분, 고용승계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입찰안내서 개정은 문제 해결을 위해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각 단과대가 본부의 기본 가이드라인만 따른 채 시설노동자 고용을 자율적으로 시행 중이라 통일된 소통 채널을 만들기가 힘들다. 또 각 단과대 및 기관에 자율성을 준 상황에서 본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워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간접고용 시스템 자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직접고용이 매년 노동자들이 시달리는 노동불안정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직접고용은 간접고용과 달리 고용승계에 대한 걱정이 없어 고용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노동 시간 구분 및 추가 수당과 노동 환경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서울대가 지게 되고, 지난달 임금 체불 사례와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책임 소재가 명확해 문제의 해결과 예방을 할 수 있다. 일반노조 정우춘 분회장은 “(직접고용이 된다면) 고용안정, 인권보장 등 장점이 많다”며 “현재 근로조건 그대로 직접고용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직접고용은 중간 용역 과정에서 낭비되는 경비를 줄이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민주노총 등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직접고용이 오히려 간접고용에 비해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본부의 입찰안내서에 따르면 용역업체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용역원가의 약 15% 정도다. 또한 한 단계의 용역을 거치지 않을 때마다 10%의 부가가치세를 절약할 수 있다. 『대학신문』 취재 결과, 현재도 각 단과대 및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직접고용한 시설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노동자들은 기존 시설노동자들과 같은 임금을 받지만 용역업체에 고용된 것이 아닌 기관으로부터 직접고용됐으며 용역업체에 고용된 시설노동자들보다 긴 만 70세의 정년을 보장받으며 일한다. 또 이들에 대해서는 기관들이 직접적으로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지고 있다. 이처럼 일부 시설노동자들을 이미 직접고용하고 있는 기관들의 경우 나머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직접고용을 확대해도 행정적 혼란과 비용이 크게 부담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의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직접고용은 필요하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정관에 따르면 서울대는 ‘국립대학의 사회적 책무의 이행과 사회봉사’를 수행해야하며 이는 대부분의 학내구성원들과 국민들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서울의 주요 대학 노동자들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을 주고, 매년 두 달 동안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며,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노동자들을 일하게 하면서 사회적 책무와 사회봉사를 수행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제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설노동자 문제가 TV에서만 보던 다른 대학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서울대의 구성원인 우리가 더는 모른척해서는 안 된다. 서울대가, 서울대의 시설노동자들 앞에 떳떳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