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출신 음악인 ②홍대 인디밴드 티어파크

페이스북에서 ‘촛불하나’를 부르며 버스킹 하는 외국인 음악가의 영상을 기억하는가? 이전엔 초청공연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인 음악가들이 이젠 조금씩 국내에 자리를 잡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음악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은 더이상 묻혀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번 연재 기획은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왼쪽부터 조나단 씨, 로랑 씨, 김세희 씨, 네이슨 씨. 티어파크가 상수동 합주실에서 신곡 '보호색'을 연주하고 있다. 그들의 몽환적인 음악은 듣는 이들을 꿈의 세계로 인도한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티어파크의 음악은 꿈 속 어딘가를 배회하는 듯 몽롱하다. 독특한 리듬과 음울한 멜로디가 만들어내는 이상한 아우라는 홍대 인디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그 특유의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해 ‘아트 록’, ‘포스트 록’ 등의 수식어가 붙어 다니지만, 그들의 음악은 그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새로운 듯 익숙한 소리의 기원을 그들의 국적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각기 다른 개성을 합쳐 그들만의 ‘색깔’로=티어파크는 각기 다른 출신의 멤버들이 독일의 동물원 ‘티어파크’란 이름 아래 뭉친 다국적 밴드이다. 김세희 씨(보컬)는 호주, 조나단 씨(기타)와 네이슨 씨(베이스)는 미국, 그리고 로랑 씨(드럼)는 벨기에에서 왔다. 조나단 씨는 한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온 사람이고, 로랑 씨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한국으로 여행을 온 사람이라며 각자를 소개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온 여행이, 벌써 3년째 이곳 홍대에서 이어지고 있다.


티어파크의 구성원들은 전혀 다른 음악분야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김세희 씨는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이며, 조나단 씨는 클래식 연주자, 그리고 네이슨 씨와 로랑 씨는 재즈 뮤지션이었다. 로랑 씨는 “재즈 밴드를 오래 했지만 표현의 범위가 넓은 ‘로큰롤’에 환상이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티어파크를 통해 다른 음악적 배경의 뮤지션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며 “재즈 뮤지션으로서 나의 한계를 깨는 계기가 됐다”고 밴드를 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국적과 음악적 토대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가능하게 했다.


티어파크 음악만의 이색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엔 특이한 ‘리듬’이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로랑 씨는 “다른 음악은 3/4박자, 4/4박자를 주로 사용하는데 우리는 5, 7, 13 등으로 박자를 나누는 등 전혀 새로운 척도를 사용한다”며 “이를 통해 특유의 ‘락’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만의 그루브를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티어파크는 그 무엇보다도 ‘라이브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갖고 있다. 곡을 악보에 쓰고 녹음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공연 준비를 하는 일반적인 과정과는 달리, 티어파크는 우선 각자의 스타일대로 연주를 시작한 후, 녹음된 결과물을 들으며 의견을 조율한다. 조나단 씨는 “모두의 의견이 충돌하다 보니, 처음 결과물은 거의 ‘카오스’에 가깝다”며 “곡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나갈지 논의의 과정을 거친다”고 작업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네이슨 씨는 “이 논의는 어느 하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음악적인 고군분투의 과정을 거쳐 네 명의 합의점을 찾는 작업이다”며 “이것저것을 시도하다보면 기존의 다른 음악과 전혀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연주를 하고나서 하모니를 맞추어가는 방식이 더 편해졌다. 창작에 관록이 붙은 티어파크 멤버들은 공연 거의 하루 전에 곡을 완성시킨 적도 있다.


음악이 완성되면, 김세희 씨가 가사를 붙인다. 이는 음악에 ‘서사’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김세희 씨는 “호주에서 자랐지만 한국 또한 나의 정서의 바탕이다”며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티어파크가 한글 가사로 한국 팬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연결고리를 찾게 됐다”고 한글 가사를 선호하는 까닭을 말했다.

불, 불꽃은 새하얗게 너와 나를 태워 만든 하얀 꽃
불, 불꽃은 새까맣게 너와 나의 낙인 같은 그을림
새빨갛게 새파랗게 새하얗게 새까맣게
-「불꽃」

티어파크 음악의 몽환적인 분위기에는 김세희 씨의 나른한 목소리와 그가 적은 시적인 가사가 일조한다. ‘한글 가사’가 이국적인 음악을 만나니 더욱 기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조나단 씨는 “한글인 ‘불꽃’과 영어인 ‘flame̓이 주는 어감이 다르다”며 “전자에는 시적인 어감이 있지만 후자에는 저급한(cheesy) 로큰롤의 느낌에 가깝다”고 언급했다. 네이슨 씨는 “미국인인 나에게 영어노래는 너무 익숙해 가끔 지루하게 들리기도 한다”며 “한국인들이 영어가 ‘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한글이 ‘쿨’한 언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대 인디씬, 다국적 관객의 장=원래부터 홍대 인디씬에 외국인 음악가는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활동하던 음악가들이 점점 그룹화·조직화 되면서 그들의 움직임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또 예전에는 외국인 가수의 공연엔 외국인 관객, 한국인 가수의 공연엔 한국인 관객으로 양분됐다면, 이제는 그 둘이 섞이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지난 3일(금)~4일에 홍대에서 열린 ‘두 인디(Do Indie) 페스티벌’의 티어파크 무대에서도 한국인 관객과 외국인 관객이 다양하게 섞여 자유롭게 공연을 즐겼다. 조나단 씨는 “한국 관객들은 조용하게 음악을 느끼고, 외국 관객은 시끌벅적하게 무대를 즐기는 편이다”며 “양쪽 관객 모두 좋지만 아무래도 둘이 섞인 무대의 분위기가 최고다”고 의견을 전했다.


3일의 ‘두 인디 페스티벌’과 11일의 ‘잔다라 페스티벌’에서의 무대를 마치고 티어파크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2집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세희 씨는 “새 앨범은 티어파크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더 위트 넘치고, 밝은 분위기가 될 것”이라며 2집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자신만의 색깔을 표출하고 있는 다국적 밴드 티어파크의 다음 걸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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