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제4회 생물정보학 데이

영화 「가타카」의 미래 사회에선 신생아의 피 한 방울에 담긴 유전 정보를 통해 아이의 심장질환, 우울증에 걸릴 확률부터 예상되는 수명까지 예측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선 유전 정보를 밝히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질병이나 수명 등 예측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예측할 수 있는 미래 사회가 등장했다.

영화 속에서만 가능해보였던 일은 현실에서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2013년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검사 도중 DNA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는 BRAC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치료하기 어려운 암이 발병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발병을 막기 위해 수술을 감행했고 유방암 발병률은 87%에서 5% 이하로 떨어졌다. 유전자 정보를 다루는 생물정보학의 활약으로 인간이 가늠할 수 없었던 미래의 일까지 내다보고 대비할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 10일(금) 박물관(70동)에서 「생물정보학, 어디까지 알고 있니?」라는 제목으로 제 4회 생물정보학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생물정보학에 몸담고 있는 통계학, 컴퓨터공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모여 자신의 연구 현황을 공유하고 생물정보학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로 이어져왔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서울대, 숭실대, 이화여대와 한양대연구센터에 속한 대학원생들이 중심이 돼 프로그램을 직접 구성하며 생물정보학에 관련된 연구 동향을 살폈다.

생물정보학이란 컴퓨터를 이용해 생물학을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기존의 과학에서 실험을 매개로 정보를 알아갔지만 이젠 점점 더 방대해지는 생물학 정보를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는 생물정보학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생물학이 발전함에 따라 정보의 양은 방대해지고 정보 간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정보를 제대로 정리하여 필요한 때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생물학이 정보과학 분야와 결합했다. 이에 따라 방대한 양의 정보를 통계학, 컴퓨터공학 등의 알고리즘을 거쳐 분석하고 구조적으로 정리해 저장했다.

많은 정보를 한데 모아놓고 연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한 요소에 특화된 기존의 분야들과 달리 유전 정보 총체에 대해 학문적 접근을 수행하는 것도 생물정보학의 특징 중 하나이다. 강연 도중 이주련 교수(숭실대 생명정보학과)는 “지금까지 생물학이 컴퓨터의 각 부품을 공부했다면 그 컴퓨터의 작동 원리를 발견하는 일이 생물정보학의 목표”라고 말했다. 생물정보학은 다른 분야 학문과의 협동을 통해 유전 정보 전체를 저장하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기존 과학과 상보적인 위치에 있다.

▲ 생물정보학이 유전 정보 총체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는 이주련 교수(숭실대 생명정보학과)
사진: 까나 기자 ganaa@snu.kr


맞춤 의학, 예측 의학의
토대가 되는 생물정보학

이상혁 교수(이화여대 생명과학과)는 유전 정보를 토대로 한 환자 개인에 대한 맞춤의학이 각광을 받게 됐다며 그 기반이 되는 유전 정보 분석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예전엔 폐암을 3~4개로만 분류해 일괄적인 치료를 한데 비해 지금은 유전 정보에 따라 10종류 이상의 분류가 가능해졌고 이들에 대한 치료약이 각각 다르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같은 병명에 대해 빠르게 성장하는 세포를 암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항암치료제를 일관되게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빠르게 자라는 머리카락, 소화기관 세포 등이 덩달아 손상되는 부작용이 많았다. 하지만 암세포를 만드는 돌연변이의 유전 정보를 알아내 그것만을 표적으로 공격하는 치료가 가능해졌다. 부작용은 줄어들고 치료 효과는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70대 설암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자 서열을 분석하고 많이 발현되는 유전자의 형질에 주목하여 개인 맞춤형 항암치료를 시행한 사례가 있다. 이 교수는 맞춤 치료와 같은 의학 기술의 발달이 “유전체 정보를 파헤쳐 그것의 발현과 상호 역할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생물정보학에 그 시작점을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박태성 교수(통계학과)는 유전자 정보를 통해 암의 재발 가능성을 예측하는 ‘온코타입디엑스’(OncotypeDx)에 대해 소개했다. 어떤 유방암 환자가 수술을 받은 후 향후 10년 내에 암이 재발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치자. 의사는 온코타입디엑스를 통해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결정하기로 하는데 이 방법은 250개의 후보 중에서 암에 대한 발현량을 통계분석하여 16개의 유방암 유전자와 5개의 참고 유전자를 추린다. 유전자에 대한 예측 모형을 구축한 후 암의 재발지수를 수치화하는 과정을 거쳐 측정된 예상 발병률에 따라 환자는 항암치료나 호르몬 치료 등을 진행하게 된다. 유전 정보를 통해 맞춤치료, 예측치료와 예방치료가 모두 가능해진 것이다.

다양한 연구방법의 공유와
생물정보학의 학문적 소통


교수들이 의학분야에서 두드러지는 생물정보학의 활약상을 소개했다면 학생들은 본인들의 연구 발표를 통해 유전자 서열이란 정보를 어떻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저장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 제시됐다. 생물정보학이 복잡한 정보의 대동여지도를 그려가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학생들이 제시한 구체적인 방안들은 생물정보학 발전을 위해 유의미한 상호 자극이 됐다.

허영회 씨(생물정보학 협동과정·석박사통합과정)은 평범한 쥐와는 단 하나의 유전적 차이를 가진 일명 ‘넉아웃(knock-out)’ 쥐의 형질에서 ‘하나의 유전적 차이’로 생긴 형질차를 선별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환원 접근법’(Reductionist Approach)는 점점 여러 가지 관문을 거쳐 최종적으로 하나의 유전자 단위차를 보이는 유전체를 검출해내는 방법으로 마치 스무고개를 넘어 원하는 정답의 유전체에 접근하는 것과 같다. 한양대 정보보호 및 생물정보학 알고리즘 연구소 김현우 박사는 넥스트서치(NextSearch)라는 방법을 통해 단백질 구성의 기본단위인 펩티드를 검증하는 길을 제시했다. 알짜배기 유전자모음인 엑손(exon)으로부터 펩티드가 복사되는데 넥스트서치는 엑손의 정보를 그래픽 형태의 데이터 구조로 만들어 간략하게 저장한다. 이 지도에는 유전자에서 펩티드, 단백질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정리한 구조가 담겨있다.

이번 학술대회 주최자인 김선 교수(컴퓨터공학부)는 생물정보학이 앞으로 학문, 사업, 사회의 크기를 점진적으로 성장시키며 연구자들에게 늘 새로운 도전을 부여하는 역동적인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물정보학 분야의 가능성을 생각해볼 때 더 많은 학생들이 연구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며 “이번 학술대회, 그리고 앞으로의 생물정보학 대회가 이 학문을 여러 학생에게 소개하고 연구자간에 소통이 이뤄진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총괄 기획한 임상수 씨(생물정보학 협동과정·박사과정)는 “점차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등장하고 다양한 학문의 융합이 깊어지고 있다”며 “이번 학술대회는 학생들 간의 연구 소통과 더불어 생물정보학 자체의 지평이 확장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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