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창 가을 풍경화를 바라보며
연구실 창 가을 풍경화를 바라보며
  • 대학신문
  • 승인 2014.10.12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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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범순 교수
국어국문학과

내가 사랑하는 가을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다. 황금빛으로 물든 계수나무들이 내 연구실 창 풍경화를 화려하게 색칠하고 있다. 아직 푸른 색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그 너머 삼성산의 거대한, 움직이지 않는 파도 덕분에 아크로폴리스의 노란 단풍이 더 눈에 띈다. 여러분들은 이런 풍경의 미학이 어느 쓸쓸한 오후 한 교수의 연구실을 얼마나 아늑하고 운치있게 만드는 것일지 상상해볼 수 있다. 학문 공간에 덧붙여지는 이런 계절의 선물들이 숨가쁜 대학의 지적 여정에 활력을 주고, 휴식을 주고, 여유로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장면은 내가 이 캠퍼스에 다니기 시작한 학생시절부터 있었던 그대로이다. 이 풍경화를 벗어나면 학교 캠퍼스 풍경은 70년대와는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하긴 그때에는 신림 사거리까지 가야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289버스 종점 부근은 모두 논밭이었고, 낙성대 부근은 몇몇 무허가 판잣집 이외에는 볼 것이 없었으니까. 교문을 들어서서 지금 법대 자리를 통과해서 걸어가는 ‘초원의 길’ 같은 것은 아득한 추억만으로 남아있다. 푸른 잔디밭에 난 길, 겨우 한 사람만이 걸어갈 수 있는 한 오라기 실 같았던 길, 미대 아래쪽 커다란 호수 옆에 커다란 떡갈나무 두 그루가 아름답게 전원을 장식했던 그 길을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때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전원을 간직한 캠퍼스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그것이 나의 전 재산이었다. 그 속에서, 그런 것들이 나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상상과 지성의 풍요로운 밭을 일구고 있었다. 학점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나는 자유롭게 그런 아름다운 캠퍼스 속에서 공부했고, 나 자신만의 서적들을 읽었으며, 여러 친구들과 대화를 펼쳐갔다. 비록 학점을 잘 따지는 못했지만, 어떤 점에서는 학점 이상의 공부를 다양한 형태로 할 수 있었다.

그저 ‘옛날 타령’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소음을 내면서 무엇인가 만들어내 캠퍼스를 거대하게 확장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려는 것도 아니다. 계속해서 건물과 제도를 만들어내며, 그 속에 교수와 학생들을 집어넣어서 대학이 발전한다면, 그까짓 소음이나 살풍경한 것이 무슨 상관인가? 소음을 피해 집에서 연구하면 그만이고, 살풍경한 것은 학문에서 낭만의 분위기를 조금 제해버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학문과 교육은 어떤 성과를 내야하는 것이고, 그런 성과들은 객관적으로 측정돼야 하는 것이니 대개 실용적인 것이어야 한다. 내가 위에서 ‘옛날’을 들추며 낭만 운운한 것들은 실용성도 없으며, 측정할 수도 없다. 그런 것들은 취직하는 공부에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수많은 제도와 규범들이 점점 더 세밀하고 복잡하게 증식한다. 대개 그런 것을 ‘발전’이라고들 한다. 학문과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교수들은 매년 일정량의 논문수를 채워야 하고, 그것도 규범화된 학술지의 측정기준에 맞춰주는 글을 써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야 태만한 교수들을 채찍질해서 학문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학문의 질이 이런 규범적 측정치들로 측정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어떤 다른 대학 교수 한 분은 그런 제도적 장치를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총장에 맞서서 ‘과연 아인쉬타인이 평생 몇 편의 논문을 썼는지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꾸준히 매년 논문을 발표해야 학문의 발전이 있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이런 통계적 측정치가 신문에 발표되고, 모든 것을 그것으로 환원해서 수준을 가늠하는 일이 우리의 상식처럼 됐다. 이런 통계들이 어떤 수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 분야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일까?

인문학은 특히 통계의 허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분야가 많다.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시인들이 있지만 그들이 모두 우수한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에게 인기 있던 작가와 작품들이 나중에 저평가되기도 하는 반면에, 아무도 몰랐거나 별 인기가 없던 작가나 작품이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실 논문들도 이런 작품들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제도와 규범을 세밀하고 꼼꼼하게 하면 할수록 그에 반해서 주체적 역량이 떨어지는 일은 언제든지 있어왔다. 나의 이 생각 때문에 나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식에서 철저하게 감독하고 세밀하게 측정하는 그런 조밀한 관리방식을 피해왔다. 우리 모두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교육해야 하는지 스스로 따져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본인들 스스로 관리하고, 스스로를 부추기며 학문의 고지를 향해 땀을 흘리며 가야할 일이 아닌가? 물론 그런 제도들도 필요하지만 너무 거기 의존하지 말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는 것이 자기자신의 내적인 능력을 배양하는데 더 보탬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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