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혜지 강사
교육학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개강 후 지난 한 달을 보내면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강의 전날이 되면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제법 했다. 매 학기 강의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통해서 얻는 지적 자극이 너무나 통쾌 강렬하여 학생들의 역량에 대한 순수한 감탄의 빈도가 많아질수록,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자극을 주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커져만 간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교육학 분야에서 측정평가를 전공했고 주로 교육평가나 프로그램평가를 강의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내가 제일 괴롭고 곤란함을 느낄 때는 전공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학생들을 평가할 때이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통해 주로 나눈 이야기들은 그 대상이 학생이든 프로그램이든 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나름 꼼꼼하게 평가와 관련된 최근의 이슈를 놓치지 않고 학생들의 이론적 역량과 실천적 역량을 높여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 많은 생각을 주고받으며 교학상장(敎學相長)하고 있다는 벅참을 느낄 때 그저 신이 나 있는 나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막상 학생들에게 과제를 부여하거나 시험을 통해 학점을 부여하기까지 나를 되돌아보면,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그토록 학생들에게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던 가치를 뒤로 하고. 학생들에게 어느 특정 학점을 효율적으로 부여하는 데 집중하는 나를 발견한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과 나누었던 뜨거움과 벅참은 어느 순간 물러나고, 또 다시 객관성의 탈을 쓴 숫자들이 나를 엄습하고 만다.

그리고 놀랍게도 서울대가 아닌, 상당수의 대학은 교직을 상대평가로 실시하고 있고, 대학 방침이 그러하기에 나 역시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이 무척이나 무겁다. 학교 현장에 자유학기제의 바람이 불어도, 성취평가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도, 일부 대학은 여전히 예비교사들을 한 줄로 세워달라고 한다. 여기에서 나는 한번 더 비겁해진다. 학생들이 강의를 통해 평가를 얼마나 잘 이해했고, 더욱더 평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언하기 보다는, 왜 다른 사람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근거를 준비하기도 한다. 씁쓸해 하는 자신에게 스스로 위안하듯 시스템 상 어쩔 도리가 없다고 변명하면서 학기를 마치면, 그 피로감에 또 다시 시작되는 한 학기가 망설여지게 된다.

그러던 중 최근 우연히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시는 한비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매 강의마다 ‘여러분은 제 첫사랑이에요~’라며 박력 있게 학생들에게 다가가신다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강의에 대한 나의 주저함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었나 하고 마음을 정리하자, 조금은 씩씩해 졌다. 어느 순간 잊어버리게 되었지만, 내가 처음 모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었을 때 종강 일에 강의를 수강한 30여명의 모든 학생들에게 손편지를 써서 나누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너무 서운해서 참 많이 울었던 그 기억까지. 그 후로 5년여가 흐르면서 내 마음은 정신없이 바쁜 일상과 경직된 평가 시스템을 핑계로 너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다. 첫 사랑의 순수함을 떠올리며 말랑말랑한 마음이 돼, 생기 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에 대한 설렘을 지속하고 싶다. 그러면 그토록 괴롭게 여겨졌던 평가의 과정 또한 온전히 학생들을 이해하고 느끼는 설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학기 말에 학생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단지 학점이 되지 않도록, 모든 수강생들에게 손편지에 담을 내용이 풍성해질 수 있도록 그렇게 남은 학기를 보낸다면 나는 무척이나 행복한 강사가 돼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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