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정욱 박사
과정정치외교학부

 예전에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경쾌한 리듬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그리고 노래를 좀 더 들어보면 후반부엔 이런 가사도 나온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그런데 가만히 듣다보면, 경쾌한 리듬에 얹혀있는 가사들이 마냥 흥겹지만은 않다. ‘아프니까 청춘’ 아니겠냐며 둥글게 살라고 훈수를 두는 ‘잘난 어른들’의 위로로 오늘의 상황을 넘어서기엔 청춘들이 감당해야 할 중압감은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10대, 20대, 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돈이 없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삼포세대’라는 말도 더는 새로운 표현이 아니다. 운 좋게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좋은 학교에 합격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살아남기에 한국은 비정한 나라다. 그러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는 없다. 나를 돌볼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펙쌓기는 이런 불안을 달래는 정점에 서 있다. 결국 평범한 청년들을 삼포세대로부터 구원해줄 방편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청년들에게 네모는 ‘적자생존(適者生存)’, 즉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이다.

하지만 눈을 돌려 유럽의 청년들을 보면, 너무나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유럽 대다수 복지국가들의 청년들은 학비와 생활비 걱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예컨대 모든 독일 대학생들의 학비는 무료다. 또한 학생당 매달 1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지원금 총액의 50%만 취업 후 무이자로 상환하면 된다. 설령 생활비가 모자라도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부족하지 않게 보충할 수 있다. 시급이 충분히 높기 때문이다. 졸업 이후도 마찬가지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직업교육, 사회보험,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사회·경제 영역에서 청년들의 일상을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청년들에게 네모는 ‘공생공사(同生共死)’, 즉 더불어 사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적자생존의 세계를 사는 청년들에게 왜 본인의 생존만을 위해 노력하느냐고 탓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들이 그리 산다면 그 사회에 사는 청년들은 참으로 불행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언제나 생존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은 대다수의 힘없는 청년들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또 하나의 방안이 있는데, 그것은 공생공사의 세상을 꿈꾸면서 실제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19세기 유럽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침울한 속담 중에 하나는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으로 도망간다”는 것이었다. ‘삼포세대’의 원조는 사실 산업혁명의 폐해를 온 몸으로 느끼던 19세기 유럽 청년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오늘의 유럽도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는 청년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라는 말이다. 네모의 세상에서 동그라미를 꿈꾸는 것,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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