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대학 산학협력 현장실습의 실태

 <서울 J호텔 산학실습생 모집>

작성자: 조리학과 조회 : 999 작성일 : 2014. 07. 11 오후 2:09:52

1. 모집인원: 서비스 부문 00명, 조리 부문 00명
2. 실습비: 월 30만 원
3. 실습기간: 2014년 8월부터 2개월 이상(실습기간 조절 가능)

현장실습을 희망하는 학생은 학과사무실로 연락주세요.

수도권 소재 한 대학의 외식, 조리 계열 학과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현장실습생 모집 게시글이다. 현장실습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산업 현장을 경험해 전공 능력과 취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최근 정부가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산업 현장실습은 급격하게 증가해왔다. 그런데 이런 산학 연계 현장실습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 착취로 악용되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달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청년유니온과 장하나 의원실이 주최한 대학 산학협력 현장실습생 증언대회 ‘현장실습, 교육이란 이름의 신(新) 노동착취’(이하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된 현황조사 결과에서는 호텔•관광•조리•외식•식품 관련 대학에서 교육의 명목으로 실시해온 산학협력 현장실습이 사실상 아르바이트 업무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악용돼 학생들의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실습생의 평균 근무시간은 주당 40.25시간으로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전형적인 전일제 근무형태였으며, 현장실습은 설거지나 재료 정리와 같은 단순 노동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월 실습비는 평균 35만 1,993원으로 시급으로 환산 시 1,684원에 불과했다. 사실상 노동을 제공했지만 현장실습생이기 때문에 노동 관련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이다.

경력제공을 미끼로 악용되는 현장실습

현장실습은 학생의 현장 적응과 실무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이들에게 산업체에서의 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은 이를 통해 학생의 자질을 조기에 파악해 우수 인력을 확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위해 학교는 실습 기회를 제공할 기업체를 선발해 협약을 체결하고 학생들을 연계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는 이유는 대학이나 학과마다 차이가 있다. 의료, 보건 등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는 학과의 경우 법에서 정한 현장실습 시간을 의무적으로 채워야 한다. 법적으로 의무는 아니지만 학과에서 졸업 필수 요건으로 지정해 놓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보통 학교가 기업체나 병원 등에 실습비를 제공하고 학생의 교육을 위탁하기 때문에 교육의 내용이나 과정이 제대로 관리, 감독되는 편이다.

문제는 주로 학생들이 경력 취득을 위해 현장실습을 나가는 경우에 발생한다. 취업을 앞둔 3,4학년 대학생은 대학에서 협약을 체결했거나 지도 교수가 알선해 준 기업체에 경험차 현장실습을 나간다. 하지만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현장에서 교육을 받기보다 단순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은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이후 취업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실습 평가에 대한 걱정으로 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롯데호텔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서 현장실습생과 함께 일했던 김영 씨는 증언대회에서 “아르바이트생과 현장실습생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차이가 없었지만 아르바이트생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실습생은 지방에서 상경을 많이 했는데, 이들은 특급호텔에서 일하기를 희망했고 취업 시 가산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갑을 관계가 되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야간, 연장, 휴일 근로를 암묵적으로 강요받았다. 실습 평가가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할 수도 없었다.” 기업체가 경력 한 줄을 제공하며 대학생의 노동력을 싼값에 이용해온 것이다.

사라진 교육, 누가 책임져야 하나?

“교육 절차는 따로 없었어요. 그냥 저한테 주어진 임무가 있고 그걸 다 수행한 거예요. 두 달 동안.” (ㄱ씨, 여성·24세)

현장실습의 기회는 양적으로 크게 증가했지만, 그 본래 목적인 산업 현장에서의 교육은 누구도 제대로 관리, 감독하고 있지 않다. 교육부가 2013년 발간한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에는 학생을 현장적응력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실습‘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또 단순 아르바이트성의 현장실습은 대학의 판단에 따라 지양하도록 하는 지침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런 지침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외식, 조리 계열 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안 씨(남성•26세)는 현장실습생을 모집하는 기업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현장실습이 부당하게 실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당한 노동을 제공하고 왔다는 친구들의 사례가 훨씬 많다. 학생을 부려먹으려 하는 기업체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생들이 밝힌 사례를 종합해보면 외식업체 ‘아워홈’의 경우에는 예비 영양사에게 철저히 교육 위주의 실습을 시켜왔으며, ‘대한항공’은 기내식 조리사의 경우 따로 공채 모집을 하지 않고 산학협력 실습생을 평가해 채용하는 등 일부 기업은 현장실습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현장실습의 혜택으로 ‘취업 시 우대’ 항목을 내걸어 학생들을 끌어모으지만, 실제로는 공수표에 가깝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대학은 이런 실태를 알고 있을까? 학생이 현장실습을 학점으로 인정받을 경우 대학에 현장실습 일지를 내야 한다. 대학은 이런 자료와 더불어 기업에 대한 상시적 관리, 감독을 바탕으로 현장실습의 교육 과정을 점검하고 학생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수도권에 위치한 한 대학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본 결과, 대학 측은 “교육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비스 업계이기 때문에 교육 차원에서 홀에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들도 신청할 때 이미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얼마를 받게 될지 알고 지원한다.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게 없고, 현장에서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 대학에 다니는 익명의 대학생은 학교와 협정을 체결한 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현장실습을 수행하면서 아르바이트생과 동일한 노동을 했던 사실을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대학이 현장의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관리, 감독을 형식적으로만 해온 것이다. 이에 대해 류하경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대학이 교육부에서 부여하는 보호감독의무를 위반한 경우 위반사항에 대한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동을 통한 실습, 정당한 임금 제공해야

서비스 산업과 같은 일부 산업은 그 특성상 최소한의 교육만을 실시하고 나머지는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현장 적응력을 키우기도 한다. 관련 학과의 일부 학생들 역시 업무 과정을 교육으로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또 일부 기업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담당 인력을 따로 배치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업무와 교육을 병행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당한 노동의 제공뿐만 아니라 이런 경우 역시 현장실습생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아 관련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원과 고용노동부의 판단이다. 대법원이 밝힌 근로자성 판단 기준에 따르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실질적인 지휘명령 체계가 있고, 계약의 목적이 노무 제공이며, 어떤 명목으로는 돈이 임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때 근로자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서도 현장실습이 순수한 학업의 연장이 아닐 때 현장실습생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더해 류하경 변호사는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그동안 부당한 현장실습을 지시해온 기업은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발표된 평균 시급 1,684원은 2012년 기준(조사기간이 2011~14년임을 고려) 최저임금인 시급 4,580원의 1/3 수준인데, 이 경우 최저임금법 제28조(벌칙)에 따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한다. 이어 그는 “사용자가 각종 사회보장법,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을 회피하기 위해 위장실습으로 젊은 인력을 써왔다”며 기업체에 강력히 책임을 물었다.

한편 장하나 의원은 추가적인 실태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년에 4만 명 가까이 되는 현장실습생의 임금 체불 규모는 연간 1천억 원 정도라고 본다”며 “고용노동부와 교육부가 특별 실태조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과 노동의 경계, 맞춤형 제도가 필요

현장실습생의 부당한 처우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교육과 노동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번에 대학생 현장실습의 문제가 불거지기에 앞서, 올해 초에는 특성화고 학생의 현장실습이 노동 환경과 교육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와 교육부가 서로 관할 책임을 떠넘기며 정책적 보완을 미뤄와 여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증언대회에서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현장실습생을 위한 맞춤형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장실습이 그동안 근로 당국의 사각지대였다는 점이 밝혀졌다”며 “교육부와 노동부가 합심해 이를 공론화하고 맞춤형 보호조치나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도 “교육은 교육답게, 노동은 노동답게 이뤄져야 하고, 노동과 교육의 측면이 다 있을 때는 노동부와 교육부가 모두 책임을 져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입장을 묻자 고용노동부 박수호 감독관(근로개선정책과)은 “실태조사와 현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나갈 것”이라며 “제도적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교육부에 그 필요성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는 “국정감사 중이니 차후 말씀드리겠다”며 이번에도 이 사안에 대한 책임을 미뤘다. 결국 대학의 의무이행에 대한 감독, 현장실습 제도의 정비 등 현장실습생의 처우 개선을 위한 열쇠는 현재 교육부가 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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