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고전이 말하는 평등

“동물 농장의 하층 동물들이 그 어느 동물보다 일을 많이 하면서도 식량은 적게 배급받는 이런 정책은 당연합니다… 만약 당신 돼지들에게 다뤄야 할 하층 동물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게도 다뤄야 할 하층 계급이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풍자 소설로 일컬어지는 『동물농장』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43년 테헤란 회담에 이르는 기간 동안 소련의 사회주의가 어떻게 변질됐는지를 고발한 이 소설이 한국에선 1948년 미군정 산하 해외정보국이 반공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소설의 작가 조지 오웰을 냉전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파시킨 작가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진정한 사회주의의 도래를 열망한 사람 중 하나다.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권력을 반대한 조지 오웰, 그가 생각한 평등이란 무엇이었을까? 오웰 문학의 연구를 진행하고 『동물농장』,『1984년』,『영국식 살인의 쇠퇴』등 그의 작품을 다수 번역한 박경서 교수(영남사이버대 실용영어학과)를 찾아 의견을 물었다.

▲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비판했던 전체주의의 군상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설명하는 박경서 교수

오웰이 꿈꾼 평등한 사회는 ‘계급 없는 민주적 사회주의’로 일컬어진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오웰은 노동계급이 지닌 인간미(decency)가 사회에 뿌리내리고, 경제적으로 노동계급을 착취하면서도 대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며 노동계급과 정서를 공유하는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이 연대해 주체가 될 때 사회주의가 가장 잘 실현된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운동의 동력은 마르크스주의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의 필연성보단 형제애, 우애와 같은 ‘윤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갈망했던 평등한 사회는 요원해져만 갔다. 박 교수는 “오웰은 파시즘, 스탈린주의로 일컬어지는 전체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위협하는 것을 보며 깊은 회의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1917년 일어난 러시아혁명이 점차 자기 이념을 배반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오웰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실현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노동자들은 러시아제국을 무너뜨리고 소련을 수립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혁명의 이상을 전면 부정할 수 있는 전체주의의 흐름을 막진 못했다. 전체주의인 스탈린주의로 변질된 소련식 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발하기 위해 오웰은 펜을 잡았다.

1945년 발표된 소설 『동물농장』은 매너 농장 동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돼지 메이저 영감이 인간을 몰아내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내 그는 세상을 떠났고, 가장 총명하다고 알려진 돼지들이 메이저의 가르침을 ‘동물주의’라는 사상으로 정립해 이를 다른 동물들에게 설파했다. 어느 날 농장주가 술에 취한 나머지 식량을 주지 않자 동물들은 우발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성공해 매너 농장은 동물 농장으로 탈바꿈했다. 이어 돼지들은 동물주의를 요약한 7계명을 반포했고 이를 동물 농장의 모든 동물이 지켜야 할 규율로 정했다.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일하는 것이 혁명의 원칙이었으나, 영리한 돼지들은 계획을 세우고 감독하는 것을 자기 일로 삼았다. 동물들은 인간 없이도 열심히 일해 동물 농장엔 유례없는 대풍년이 도래했고 동물들이 배급받는 식량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내 혁명은 배반되기 시작했다.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 일어난 러시아혁명과 동물주의에 입각해 일어난 농장혁명 모두 혁명이 일어났던 초기엔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렇다면 왜 평등이라는 혁명의 이념은 지속되지 못했던 것일까? 이에 박 교수는 “불평등의 원인은 혁명을 일으킨 주체세력에 있었다”고 답한다. 그는 “무지한 동물들이 아닌,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돼지가 주체세력이 된 순간부터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평등한 사회는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이며 “돼지들이 엘리트계급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를 지향했던 메이저 영감의 혁명적 이상주의를 저버린 엘리트 돼지,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동물 농장은 전체주의화되는 것으로 그려졌다. 나폴레옹은 그가 은밀하게 길러온 개를 이용해 자신에 반대하는 동물들을 추방했고 순식간에 나폴레옹을 위시한 돼지들은 권력을 장악했다.

이때 박 교수는 돼지들이 그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동물들은 다시 노예처럼 일하도록 강요받았고, 배급량은 감소가 아니라 ‘재조정’됐다.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는 계명은 ‘다른 동물을 이유 없이 죽여선 안 된다’로 변하는 등 7계명은 수정이 거듭됐으나 무지한 동물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7계명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계명만 남아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배급이 감소됐음에도 재조정이란 용어를 쓰고 7계명을 조작하는 등 돼지들은 언어의 조작을 통해 그들의 권력을 손쉽게 유지했다. 박 교수는 “언어는 문화, 사고를 의미한다”며 “혁명, 투쟁이란 단어가 없다면 이들은 발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동물농장』의 논리적 연장선상에 있는 오웰의 마지막 소설 『1984년』엔 언어의 말살을 통한 대중의 지배가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1984년』도 혁명이 변질돼 전체주의가 성립된 사회를 묘사한다. 『1984년』의 세계에서 신어(newspeak)는 구어(oldspeak)를 대체할 언어로 개발되며 그 원리는 글의 체계를 단순화하고 어휘를 줄여 개념 자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그곳에는 ‘자유’라는 개념이 없고 신어의 ‘free’는 ‘자유로운’이 아닌 ‘~이 없는’의 의미만 가진다. 신어에선 ‘영국 사회주의’(England Socialism)를 ‘영사’(INGSOC)로 하는 등 어휘의 길이도 줄어든다. ‘영국 사회주의’보다 ‘영사’라는 표현이 더 사고의 폭을 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웰은 “국제 공산당(Communist International)은 인류애, 붉은 깃발, 마르크스 등을 연상시키지만 길이를 줄인 코민테른(Comintern)이라는 말은 조직, 기관만을 연상시킨다”며 현실 사례 또한 제시한 바 있다.

박 교수는 『동물 농장』을 비롯한 오웰 작품의 핵심적 주제가 혁명의 이상이 권력 욕구와 결부되면 필연적으로 혁명은 실패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데 있다고 정리했다. 권력 욕구만 제거되면 혁명은 성공할 수 있지만 권력 욕구는 인간의 본능과 같아 제거하기 힘들다는 것이 오웰의 입장이다. 권력 욕구가 존재하는 한 혁명은 또 다른 혁명을 낳고, 주체세력만 바뀔 뿐이다. 그렇다면 결국 평등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향한 혁명은 배반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평등한 민주적 사회주의는 결코 성취할 수 없다는 비관주의만 이야기하는 것은 넋두리에 불과할 수 있다. 이에 박 교수는 “지식인과 민중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오웰 문학의 특징”이라며 “소설에 나타난 디스토피아는 미래에 대한 경고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동물 농장』이 빛을 본 지 70년이 지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안타깝게도 이 동물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누구는 다른 누구보다 더 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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