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인도인이 나에게 “꼬리아?”라고 물어본다. 맞다고 끄덕이면 오른손을 내밀고 나를 꾹꾹 찌른다. ‘마니, 마니.’ 길가에서 생활하는 가족 옆을 지날 땐,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나의 카메라를 보고 손으로 가리키며 아이들을 보내려 한다. 인도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주며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갔다. 왠지 무서워서 얼굴을 굳히고 길을 서둘렀다.

▲ 길가의 수동 우물로 씻는 빈민가 아이들
▲ 아버지가 쓰레기를 줍는 동안 카메라를 바라보는 빈민가 아이

8월 중순에 인도 콜카타를 방문했다. 이곳은 인도의 문화수도라 불릴 만큼 번영하고 있고 인구도 인도에서 3번째로 많은 지역이다. 하지만 그만큼 빈부격차가 심하고 곳곳에 빈민가가 들어서 부유층의 거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 자원봉사를 위해 방문한 곳은 콜카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 하우스(Mother Teresa House) 중 Prem Dan(‘사랑의 선물’이라는 뜻)이라는 곳이다. 테레사 수녀가 수도원을 벗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빈민가에 들어왔을 때 세운, 중환자나 장애를 가진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다. 이 외에도 장애아를 위한 시설, 죽기 직전인 중환자들을 위한 시설 등 총 6군데가 시내에 흩어져 있다.

▲테레사 수녀의 무덤과 기념관이 있는 마더 하우스(Mother House)

아침 7시. 서둘러 도착한 곳은 마더 하우스(Mother House)였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봉사자들과 인도의 전통음료 짜이와 바나나를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그리고 8시에는 이곳을 기점으로 봉사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배정받은 시설로 간다. 난 친해진 인도네시아인 커플과 함께 버스를 타고 Prem Dan으로 향했다. 도착해 들어가보니 밖의 빈민가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사람들이 온순했다. 이곳에 있는 노인들은 남녀로 구별돼 지내며, 봉사는 일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청소, 간식, 점심, 청소, 간식, 저녁, 청소’의 순으로 이뤄진다. 그 사이에 기증받은 크림으로 어르신들에게 크림을 발라주기도 같이 춤을 추기도 한다. 팔이 없으시거나, 양 눈이 없고 곪아서 입만 움직이실 수 있는 할머니, 말을 못하시는 할머니, 미동도 하지 않고 어딘가 허공만 쳐다보시는 할머니, 허리가 나무처럼 구부러져 홀로 앉아계시지도 못하는 할머니…. 인도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제약을 받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 더욱 더 차별을 받아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나라이다. 시스터에 의하면 이곳의 어르신들은 대부분이 후천적인 장애를 입었다고 한다. 과연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팔에 힘이 없어서 홀로 식사를 못하시는 할머니들에게는 봉사자들이 숟가락을 들고 찾아가 입에 커리를 넣어드린다. 내가 제일 처음 맡았던 할머니께서는 말은 없으셨지만 입가에 수저를 갖다 대면 입을 크게 열어주시고 꼭꼭 씹으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표정이 바뀌지 않으셔서 어떤 눈물인지는 짐작하지 못했지만 왠지 기뻐해주시는 것 같았다. 항상 웃고 계시는 어떤 할머니께서는 팔에 크림을 발라드리면 만질 때마다 환호의(?) 소리를 내시며 여기저기 가리키며 발라달라고 부탁하셨다. 할머니에게서 나는 향신료의 향과 크림의 상쾌한 향이 섞여 이상하고도 인도스러운 향이 나의 코를 자극했다. 할머니는 내가 바르는 동안 힌디어로 계속 뭐라고 해주셨는데 옆에 있던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여자애가 “아마 ‘기분 좋다’라는 뜻 일거야”라고 알려줬다.

▲ 함께 방문한 봉사자들

짜이를 마시고, 커리를 먹고, 잠을 자는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이들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도 소녀처럼 좋아하며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3일째 되는 날, 친해진 말레이시아 지인이 “이 사람들은 정말 사랑의 선물이구나. 그들에게도 우리는 사랑의 선물인 것이고”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옆에 누군가가 있어주고 웃어주고 같이 밥을 먹어주는 것이,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이 행복한 것이었다. 테레사 수녀가 콜카타에 왔을 때, 길가에서 죽어가는 남성을 데려와 보살폈지만 금방 숨져버렸다. 죽기 전 그 남성은 테레사 수녀에게 “나는 거리에서 짐승처럼 살아왔지만 이제 사랑과 보호를 받으니 천사가 돼 죽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 남성을 품에 안고 테레사 수녀는 ‘더는 죽어가는 사람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Missionary of Charity’를 설립하고 콜카타에 6개의 시설을 세웠다고 한다. 진부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삶의 이유이자 행복의 이유가 바로 그 사랑이 아닐까. 할머니들, 그리고 수많은 봉사자들과 지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한 쪽 다리가 없지만 자신의 페이스로 찻길을 걷는 할아버지

한국은 현재 OECD국가 중에서도 삶의 만족도 최저 수준, 최저임금 최저, 자살률 최고, 그리고 고령화 증가 속도가 최고인 국가이다. 눈길을 돌리면 바로 옆에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끔찍한 빈곤은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다”라고 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사는 곳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나누는 사랑과 관심인 것이다. 콭카타 빈민가에서 봤던 아이도, 우리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은 빈곤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심수진(식품·동물생명공학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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