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아트 스튜던츠 리그(The art Students League)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는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 화가인 루벤스를 동경하며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소년이다. 그러나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아사한다. 그런 네로의 처지가 안쓰러운 동시대의 시청자들은 감상에 젖어 ‘네로가 교육을 잘 받았다면’ 유의 가정법을 전개한다. 그만큼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며 ‘고독한 천재’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 미술 행위는 역설적이게도 교육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천재도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존재인 것처럼 인식한다.

▲ 왼편에서 활짝 웃고 있는 Sonomi가 실크스크린을 하는 장면. 일본에서 온 그녀는 정규 미술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등록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미술교육제도는 어떤가. 의무교육 제도가 정착한 오늘날, 중등교육 기간을 거친 모든 사람들 중 몇 퍼센트가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할까. 많은 전문가들을 포함해 보통의 학생들, 심지어는 미술대학에 진학한 학생들도 그들이 받아온 미술교육에 대한 불만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 뉴욕의 영리 교육기관인 ‘아트 스튜던츠 리그’(The Art Students League)에서 수학하고 있는 학생들은 이전에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있든 없든 자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행정가가 아닌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설립된 지 100년도 넘은 이 기관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학이 제공해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학위’라는 냉소주의가 팽배한 지금, 그 어떤 학위도 주지 않음에도 매년 3천여 명의 학생들이 찾는 이곳은 한국의 현실에 어떤 힌트를 던져줄 수 있을까.

한국의 ‘작가’는 어디서 오는가

어떤 테크닉, 특히 어떤 대상을 서구적 원근법 체제에 맞춰 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내는 것은 프랑스 절대왕정 시기의 ‘왕립미술학교’로 대표되는 고전적 미술교육기관의 최대 목표였다. 이후 모더니즘 시기를 거치며, 미술 기능인을 양성하고자 하는 고전적 교육 목표는 자신만의 기법을 창안해낼 수 있는 창조적 개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기능인’과 ‘작가’, 두 마리 토끼를 동시해 잡고자 하는 이런 기획은 모두가 중등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의무교육 시대를 맞아 난항을 겪게 된다. 동일한 교육과정을 거친 수많은 학생들 중, 현대미술의 다음 주자를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데 창조적 개인이 전문화된 미술교육을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맡은 한국의 미술 공교육제도는 이런 고민을 미술‘대학’에 떠넘긴 듯 하다.


교과부에서 제공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고등학교 미술 교과목의 교육 목표는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 개척 능력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로가 진학의 동의어로서 사용되는 오늘날, 미술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미술 과목을 어떻게 기억할까. 이에 대해 신화용 씨(디자인학부·11)는 “미술 교과목은 체육이랑 묶여서 대학 진학에 별 도움 안되는 비주류 과목 취급을 받고 있다. 게다가 실습은 일주일에 고작 한 시간 정도이므로 의미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과연 그럴까. 현재 운용되고 있는 교과 단위 배당 기준표에 따르면 미술 교과는 1주당 2단위(1단위는 매주 50분 수업 기준)를 배정받는데, 이는 체육 교과의 2분의 1, 사회 교과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그나마도 사설 교육 기관에서 입시를 위한 사실적 묘사 교육을 위해 매일 반나절 정도를 할애하는 반면, 공교육 제도에선 그만큼의 진도를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서울현대미술연구소에서 제출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설립 및 운영연구’ 보고서에는 “중, 고등학교의 사정들은 대부분 형식적인 시간들을 안배하고 있고, 그나마 고등학교 3학년 과정에는 아예 시간조차 배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적혀있다. 고등학교 미술교육의 목표인 ‘학생의 진로 개척 능력’은 사설 교육 업체로 이양되는 것이다.


서양화과를 복수전공 중인 김한결 씨(미학과·09)는 중등교육과정 내 미술 교과목의 문제점을 “고등학교 때는 사설학원에서 입시를 위한 기계적 훈련에 몰두하다 입학 후에는 ‘진짜 미술’을 배워야 한다”고 요약한다. 이 ‘진짜 미술’은 역사를 배경으로 자신만의 미적 규범을 창안해야 하는 현대미술의 작법을 말한다. 그렇다면 미술대학에 진학할 계획이 없는, 그리고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은 ‘진짜 미술’을 접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인가. 이렇듯 진학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진, 그리고 탁상행정에 기초한 국내 공교육 제도의 한계는 아트 스튜던츠 리그의 역사와 운영 방식에 비추어봤을 때 더 두드러진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모태인 ‘아트 스튜던츠 리그’

미국 뉴욕에 위치한 아트 스튜던츠 리그는 1875년 만들어진 영리 미술교육 기관으로, 이 기관의 독특한 역사 덕에 한국의 미술교육제도에서 기대하기 힘든 운영 방식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지 10년이 지난 1875년, 뉴욕시에 위치한 ‘The National Academy of Design’에 재학 중이었던 학생들은 이 기관이 재정적 위기로 모든 수업을 취소할 위기에 처하자 직접 새로운 학교를 만들고자 결의한다. 이 기관의 설립 멤버 중 다수는 여성으로, 여성 참정권이 미국에 아직 확대되지 않은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상당히 진보적인 첫 출발을 내딛은 것이다. 이를 ‘개척’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손에 쥔 유일한 자금이 초기 멤버들의 자발적 지원금이었다는 것이다.


정부 관료가 아닌 예술가들이 직접 학교를 건립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 기관의 운영 방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학교의 운영 방침은 매년 선거로 선출되는 교내의 입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Board of Control’에 의해 관리된다. 이 집단은 회장과 두 명의 부회장, 그리고 열 명의 운영위원들로 구성되는데, 매년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먼저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세 명의 위원들을 선출한다. 그리고 이 멤버가 다른 6명을 임명하게 되는데, 운영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 6명 중 최소한 3명은 은퇴한 Board of Control 회원이어야 한다. 어떤 봉급도 받지 않고 순수한 자원직이라 할 수 있는 이 기관의 위원들은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며 이들의 요구 사항을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역사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작가 집단의 자발성과 미국 특유의 민주주의적 개척 정신이 합쳐진 학교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다.


기부금에 의한 구성원들의 민주주의적 운영 시스템은 학교가 설립된 지 1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들 중 한 명인 권미정 씨는 “학교 자체가 굉장히 자발적으로 운영되며, 멤버십을 획득하면 참여할 수도 있다”며 이런 특징을 학교의 장점으로 꼽았다. 즉 아트 스튜던츠 리그는 이 기관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누구나 직접 참여해서 해결해야 할 수 있는 ‘정치적 사안’으로 설정한다. 여기서 국내 상명하달식의 공교육 커리큘럼과는 다른 아트 스튜던츠 리그만의 독특한 교육 방식이 만들어진다.


누구나 와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다향한 나이대의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문턱이 낮은 기관인 '아트 스튜던츠 리그'는 입학에 나이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커리큘럼까지 학생의 선택으로 결정되기에, 교육 또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우선 입학을 위한 별도의 시험이 없다. 이 말은 사전에 미술을 교육받지 않은 학생이라도 학습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권미정 씨 또한 한국에서 별도의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수학하고 있었다. “저는 한국에서 미술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워요. (다른 학생들이) 한국에서 미술을 하고 오면 틀에 박혀 있는 그거 때문에 힘들어 하더라구요.”


이런 ‘기회의 평등’ 원칙에 걸맞도록 교육비 또한 낮게 측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학생들은 대체로 교육의 질에 만족하고 있었다. 어떤 기준을 만족시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 의무가 없기에 학생들은 오히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게 된다. 한국에서 입시 미술을 하다가 이곳으로 오게 된 김정연 씨는 “입시 미술은 틀이 정해진 기준이 있다보니까 거기 맞춰서 똑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며, “아뜰리에 같은 분위기가 개성을 살리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술적 측면의 교육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미술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데이비드 클라인은 “이곳에서 미술 테크닉을 더 배우고 정진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기술이 더 뛰어난 학생은 기술을, 아이디어가 좋은 학생은 아이디어를 서로 나누며 수평적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한국의 미술교육 제도에 대한 시사점

미술대학 진학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 시장은 나날이 번성한다. 이런 교육 시장의 상황과는 달리, 국내에서 예술을 전업으로 하는 작가가 된다는 건 특정 계급의 ‘한가로운 소리’처럼 들리기 일쑤다. 그렇다면 공교육은 어떤가.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공교육 제도 내에서 미술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점점 축소되어 가고 있으며, 그 기능과 책임을 사교육 시장에 양도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미술교육의 개선을 위해선 공교육 제도 전체를 손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현황에 비추어볼 때, 그 흔한 숙제도 없이 전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작가들을 배출하고 있는 아트 스튜던츠 리그의 경우는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이곳에선 미술 비전공자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기행’이 난무하며, 심지어는 ‘감히’ 기관의 운영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시작을 함께 한 이런 교육 모델을 형식적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 스튜던츠 리그의 교육 모델은 여러 방식으로 파생되어 국내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개선의 궁극적 목표는 사설 교육 업체에게 사실상 이양된 미술 전문 커리큘럼을 국가가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초중등 교육 과정에 포함된 미술 교과목 이외에도, 미술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현대미술의 초보적 문법을 익혀나갈 수 있는 별도의 관내 기관이 필요할 것이다. 대학 입학 이전과 이후 사이에 놓인 끊어진 다리를 보수해나가는 이 과정이 미술대학을 지망하지 않는 학생도 ‘진짜 미술’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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