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0일이 지났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며 15년 전 서울대 자하연의 익사 사건을 다시 기억한다. 1999년 5월 서울대 봄철 축제가 한창 진행되던 날 밤, 한 교내 동아리 회원들이 신임회장인 신 모 군을 자하연에 빠뜨렸다. 연못 수심이 깊어 신 군이 헤엄쳐 나오지 못하자 신입회원이던 원자핵공학부 1학년 강 모 군이 신 군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함께 익사했다. 사고 시각은 밤 12시가 훨씬 넘은 새벽. 당시 서울대 축제 기간에는 총학생회가 대형탁주회사 등에서 트럭으로 막걸리와 소주를 주문하여 구입했고, 이를 단과대 학생회와 동아리를 통해 판매했다. 희생 당한 두 학생은 이 술을 마시고 취해 사고를 당했다. 강 군의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1997년 미국 MIT에서 일어났다. 학교 근처의 사설 기숙사에서 입사 신고식을 치르던 신입생 스콧 크루거(Scott Krueger)는 과도한 음주로 뇌사 상태에 빠져 사흘 뒤 숨졌다. 크루거 군의 부모는 대학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3년 뒤 2000년 9월 대학은 가족들에게 475만 불을 지불하고 125만 불을 크루거 군을 추모하는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당시 MIT 총장은 18세 크루거 군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애도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MIT는 기존의 학내 음주 관련 정책이 부적절하였음을 인정하고, 이후 학생들에게 음주와 알코올 중독에 관한 교육을 강화했다. 크루거 군의 죽음이 대학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MIT는 캠퍼스 주변 학생 주거지역의 관리와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인정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대학들은 학내 음주와 범죄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고, 학내 음주가 강도와 성범죄 등 강력사건 대부분의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얻었으며 미국 내 많은 대학에서 학내 음주 금지 정책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대는 1999년 자하연 익사사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1년 뒤인 2000년 5월 서울지법 민사18부(재판장 윤석종 부장판사)는 서울대 자하연에서 익사한 강 군(당시 19세)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엄연히 학교 내에서 일어난 음주와 이로 인한 사망사건이었음에도, 법원은 “국가, 책임 없음!” 그리고 “학교, 책임 없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서울대 축제는 대학당국이 총학생회와 협의해 공식적으로 치르는 행사인 만큼 행사 진행과 결과에는 대학의 책임이 따른다. 대학은 소극적인 차원에서 학내 행사 및 캠퍼스 관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 있으며, 적극적인 의미에서 대학은 학생들에게 긍정적 삶을 지향하도록 하는 교육적 책임이 있다. 당시 서울대는 희생 학생들과 유족에 대한 공식적인 애도나 유감을 표하지 않았다. 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서울대는 끝까지 책임 없다”고 버티는 것이 서울대 정신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서울대 정신은 좀 나아졌는가?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너도나도 열을 올리며 ‘국가 개혁’이니 ‘국가 개조’니 하는 말과 글을 얼마나 쏟아 냈는가? 그런데 그 가운데 자기 반성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이제는 오히려 그 사건을 빨리 덮어버리자는 망령이 이 나라를 서서히 마비시킨다. 스스로 반성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아비 세대의 죄로 인해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희생됐지만, 우리는 다시 다음 세대에게 아비의 죄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 서울대가 먼저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자. 다른 이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권력은 많으나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15년 전 서울대의 망령에서 벗어나자. 우리의 일그러지고 더러워진 자화상을 인정하고, 정의를 세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서울대 정신을 다시 세우자. 서울대는 지금이라도 15년 전 희생된 우리 친구들의 유족에게 진정한 사과와 유감을 표해야 하지 않을까?

언어학과 남승호 교수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