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거버넌스 지형이 변하고 있다. 기존의 교수 사회에서 이사회로의 쏠림 현상이 급격히 일어나고 있다. 법인화를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이사회의 존재 밖에는 없어 보인다. 법적 근거로 무장한 이사회의 권력 앞에 전통과 문화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이제는 무엇이 올바른가의 문제보다는 누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게 됐다.

지난 총장선출 과정에서 드러난 이사회의 무소불위식 권한 행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반발은 이사회 산하의 소위원회라는 엉뚱한 결과를 도출시켰다. 7명의 이사로 구성된 소위원회 아래에 연구진을 두어 검토하되 최종 결정은 이사회에서 하는 구조 속에서 연구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확보될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의 권력 구조에서 정점에 서있는 이사회의 안하무인격인 행보를 바라보며 구성원들의 의사가 무시되고 있다는 불만과 대학의 자율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감은 점점 더 팽배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는 이사 선출 구조의 개선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의 이사 선출 방식은 법률에 명시된 당연직이사와 평의원회에서 추천한 이사를 제외한 무려 9명의 이사를 이사후보초빙위원회에서 추천하고 이사회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사후보초빙위원회에 참여한 이사가 이사후보자 추천권과 결정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사후보초빙위원회는 정관에 따라 5명의 이사와 2명의 내부 인사로 구성되기에 이사회와 다를 바가 없으며, 결과적으로 이사회가 이사후보자를 추천한 후 다시 자신들의 손으로 이사를 선출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사후보자 추천권과 선출권을 분리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문제는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때 이사회에서 추천하는 인사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평의원회와 이사회 간의 갈등과 맥을 같이한다. 이에 대한 발전적 대안은 평의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서울대법인화법 개정안에서 찾을 수 있다. 개정안은 이사회를 외부자형에서 내부자형으로 상정해 외부인사의 수를 기존의 과반수에서 1/3 이상으로 축소함으로써 외부의 부당한 개입을 배제하고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가 충분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당연직 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이사는 모두 평의원회에서 추천하도록 해, 평의원회의 이사 추천권을 확대하는 동시에 이사회에 대한 견제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추천권과 선출권의 분리 문제는 발생할 소지가 없게 된다.

국립대학법인은 공공성과 민주성, 자율성이 확보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배의 공유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배의 공유가 이뤄질 때 이사회의 권한 행사에도 민주적 정통성이 부여될 수 있으며 의사 결정 과정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그렇다면 지배의 공유에는 누가 참여해야 할까? 법인화로 인해 교수, 학생, 직원이라는 기존의 대학 3주체만을 고집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제는 법인과 이사회, 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 평교수, 직원, 재학생, 졸업생 등으로 구분해 각 구성원의 역할을 고려한 바람직한 지배 구조의 전형을 모색해야 한다. 아직까지 이사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직원과 학생, 졸업생으로 대표되는 동창회의 참여는 이번 이사진 개선 시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특히, 사립대에서도 대학평의회에 학생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화의 산실인 서울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 소외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개선은 시급해 보인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은 그 자체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대학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프랑스 대학들은 대학의 서열을 없애기 위해 대학명을 숫자로 표기하고 있으며, 독일 대학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지배구조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동의사결정제도가 정착됐다. 베를린 자유대에서는 30대의 조교가 총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정교수대학에서 집단지도체제로의 전환도 이루어졌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선진국에서는 이미 반세기 전에 실현됐다. 지배의 공유와 협치는 우리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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