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4.16(세월호 사건)에 대한 인문적 성찰과 재난인문학

11월 1일로 세월호 참사 후 꼭 200일이 됐다. 세월호 침몰은 30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대형 참사로 기록됐고, 시민들은 정부의 미숙한 초동대응을 지켜보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가개조를 눈물로 약속한 지 다섯 달이 지났지만, 진척은 지지부진하다. 여야는 ‘성역 없는 국정조사’를 내세웠지만, 대치만 거듭하다 청문회 한 번 열어보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다. 여야는 지난달 31일(금)이 되서야 겨우 ‘세월호 3법’(세월호특별법, 정부조직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법)에 간신히 합의했을 뿐이다. 참사 199일째였다.

◇“우리 사회는 성장 중독 사회”=정치권이나 검·경의 수사와는 별개로 세월호 참사로부터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려는 노력은 꾸준히 전개됐다. 광화문과 청계 광장뿐만 아니라 이화여대, 동국대, 전남대, 충남대 등 대학가에서도 참사의 원인과 대책을 모색하는 시국 토론회와 좌담회, 강연회가 잇따라 열렸다. 한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과제를 담은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을, 소설가·시인·평론가 등 문인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 12편을 묶어 『눈먼 자들의 국가』를 펴내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안전대책과 문제점’ 토론회, 그리고 31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주최로 열린 ‘4·16(세월호 사건)에 대한 인문적 성찰과 재난인문학’ 심포지엄도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개별 문제들을 꿰뚫는 근본 원인을 사회 구조라는 커다란 틀에서 바라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날 심포지엄 참가자들은 한국 사회를 성장논리에 매몰된 사회로 진단했다. 그동안 한국은 압축 성장을 이뤘다. 그 이면에는 조국이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국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군사적 성장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1987년 이후엔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국가를 통한 성장은 시장을 통한 성장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국가에 의해 이뤄진 과다한 억압에 대한 반동으로 우리 사회는 서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시장을 통한 성장에 몰입했다. 조한혜정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과)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 박근혜 대통령의 474공약과 같이 모든 것을 숫자와 효율성으로 얘기하는 시대”로 정의했다. 국가 발전이나 생산성 향상에만 주목하는 탓에 현실을 되돌아보거나 타자를 고려하는 윤리적·정치적 사유는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됐다. 김석수 교수(경북대 철학과)는 “타자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못한다면 이윤 논리에 예속되는 것을 넘어 생명의 존엄성을 방기하는 악의 활동에까지 참여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서 강수돌 교수(고려대 경영학부)는 성장주의에 매몰된 사회가 어떻게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는가를 중독조직 이론을 통해 설명했다. 중독조직 이론은 알코올 중독자나 일 중독자처럼 조직이나 사회도 돈, 권력, 이윤에 ‘중독’돼 병적인 행위 패턴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강 교수는 “조직이 돈과 권력에 중독된 나머지 조작과 거짓, 판단력 상실이 나타나고, 사회·법률·경제적 무책임이 발생했다”고 짚었다. 과적과 증·개축으로 결코 안전하지 않았던 세월호가 항해에 나서게 된 병적인 현상은 청해진 해운과 국내 유일의 선박 검사 인증기관인 한국선급, 선박의 안전관리를 독점한 한국해운조합, 해양경찰이 낙하산 인사를 매개로 비리, 결탁관계를 맺고 눈앞의 이윤과 권력만을 맹목적으로 좇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해운업자들은 이윤을 위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로비활동을 벌였고, 정부는 권력 유지라는 목적에서 여객선 선령 제한 완화 등 해양 관련 규제 완화를 이어간 결과 노후 선박의 수가 빠르게 증가했다.

참사 발생 이후에도 중독 조직, 중독 사회의 특성이 드러났다. 일부 언론이나 정치인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학 특례입학이나 보상 문제로 참사의 본질을 흐리는 가운데 ‘민생경제 법안이 시급하니 세월호 논의는 그만하자’는 담론도 퍼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성태 교수(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는 “세월호 대참사는 비리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비극인 만큼 안전사회를 위해선 사고에 대한 기술적, 제도적 대응만으론 안 되고 비리를 척결하는 구조와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책은 참사의 근본 해법이 될 수 있나=정부가 참사 후 지금까지 제시한 대책이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지나친 성장논리를 극복하고 우리 사회에 구조화된 부정부패를 타파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먼저 안전대책에서조차도 성장논리를 견지하는 정부의 태도가 지적된다. 정부는 ‘국가안전 대진단 및 안전산업 발전방안’에서 안전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범부처 협의체인 안전산업육성지원단은 후속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지난 9월 제1차 착수회의를 개최했다. 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특히 안전시설에 대한 투자 확대로 경제도 활성화되고, 안전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직접 강조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는 “정부의 기준은 안전이 아니라 산업육성”이라며 “안전을 산업화하는 안전산업 육성방안은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수단일 뿐 안전대책이 될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관피아 척결’로 대표되는 비리사회 타파도 눈에 띄는 성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국민 담화에서 약속했던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은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퇴직공직자의 (재)취업제한 요건을 강화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전관예우를 차단하는 조항이 빠졌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국관광공사 감사 등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은 반복되고 있으며 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205명의 낙하산 인사가 투입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홍성태 교수는 “비리의 대가가 비리의 이익보다 훨씬 커야 비리가 사라진다”며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공무원이 시민의 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하도록 한 김영란 법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정부의 더딘 움직임을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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