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장기발전계획을 통해 ‘국제 수준의 대학원 중심대학’을 공표한 이래 서울대는 지속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해왔다. 그러나 연구를 이끌어갈 학문후속세대로서 대학원생은 열악한 연구 환경, 과다한 잡무, 인권 침해 등의 이유로 연구 및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수) 발표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의 ‘대학원생 연구 환경 실태조사’ 결과와 카이스트, 서강대 등 14개 대학원 학생회 대표들이 모여 선언한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통해 대학원생이 처한 문제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학비 및 생계 마련의 책임을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경제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체감하고 있지만 고착화된 구조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학신문』은 대학원생 28,229명(휴학생, 수료생 포함)을 대상으로 한 전체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대학원생의 경제 실태를 알아봤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달 20일부터 31일까지 마이스누 메일을 통해 실시됐으며 대학원생 1,488명이 참여했다. 설문 문항 개발은 서울대 인권센터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1. 연구를 가로막는 ‘돈’의 장벽
설문조사 결과 의식주 및 연구 제반 비용을 포함한 학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36.6%로 나타났다. 또 ‘경제적 문제로 인해 학업 중단을 진지하게 고려한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5.5%에 달했다. 적지 않은 수의 대학원생이 경제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대학원생들은 연구 시간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금액이 충분치 않은 경우 생계 혹은 학비 마련을 위해 학내외 ‘부업’에 연구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종 부업이 연구 및 학업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문항에서는 ‘과외/아르바이트 등 학외 유급 근로’ 항목에 대해 응답한 978명의 학생 중 55.7%가 학업에 방해를 받는다고 답했으며 ‘시간강사 업무’ 항목은 응답자 703명 중 40.5%, ‘학내 TA/RA 업무’ 항목은 응답자 1,135명 중 38.3%가 학업에 방해를 받는다고 답했다. 연구실 월급을 통해 등록금을 내고 빠듯하나마 생활비를 해결한다는 공대 석사과정의 A씨는 “연구 인건비를 많이 받긴 하지만 그만큼 1인당 외부 프로젝트 2, 3개씩을 하다보면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 진득하게 공부할 시간을 많이 뺏긴다”고 답했다. 박사과정 중인 한 대학원생 B씨 역시 “연구실의 연구, 프로젝트성 연구와 자신의 논문 연구는 별도”라며 “프리랜서 일이나 시간강사를 하는 경우 논문을 위한 본 연구에 투자하는 시간은 1시간 미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재 및 자료를 구입하는 연구 제반 비용 역시 대학원생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매월 10만 원 이상의 연구 제반 비용이 든다고 답한 648명의 응답자 중 74.5%가 해당 비용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특히 30만 원 이상임에도 연구 제반 비용을 지원받지 못한다고 답한 비율도 64.9%에 달했다. 한 예로 학회 참가비가 학회 발표자에게만 지원돼 해외 학회 참석이 힘들다는 응답도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은 단과대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인문•사회계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경제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를 묻는 문항에서 의식주 및 학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인문•사회계가 38.5%로 가장 많았고 자연과학계는 32.8%, 공학계는 29.4%로 나타나 단과대별 차이를 보였다. 인문사회계의 대학원생 중 ‘경제적 문제로 인해 학업 중단을 진지하게 고려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은 39.8%로 평균 응답률 35.5%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인문•사회계 협동과정 대학원생 C씨는 석사과정을 중단하고 휴학계를 냈다. 전공이 BK 사업에서 제외되면서 300만 원 상당의 학비와 다달이 나가는 생활비가 고스란히 C씨의 몫이 되자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취직 후 학비를 벌어 다시 학위과정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전공에 있는 동료 D씨는 학비 및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과외 3개를 하고 있어 연구에 할애할 시간이 극도로 부족하다.
단과대뿐 아니라 전공 내에서도 차이가 있다. 설문조사 결과 전공 간 연구실/지도교수에게 지원되는 연구비나 사업비 등의 총 금액 격차가 심한 편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46.9%에 달했다. 이처럼 전공, 소속 연구실에 따라 대학원생들이 처한 환경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획일적인 제도적 개선을 통해 대학원생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2. 소수에 편중된 혜택의 기회

대학원생이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통로는 크게 장학금, 조교 수당, 연구 인건비다. 그러나 그 지원 대상의 수가 전체 대학원생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많은 수의 대학원생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교내 장학금에는 등록금 전액과 월 90만 원 가량의 월정장학금을 지원하는 강의•연구지원장학금(GSI)과 월 150만 원을 지원하는 기초학문후속세대 장학금 등이 있지만 강의•연구지원장학금은 지도교수당 1명에게 할당되며 기초학문후속세대 장학금은 수혜자가 채 200명에 못 미치기 때문에 전체 대학원생을 포괄하기에는 무리다. 인문대 박사수료생 E씨는 “GSI는 사실상 지도교수님 수만큼만 선발하다보니 전체 박사과정생을 포괄하기는 힘들다”며 “GSI를 받지 못하면 학원이나 과외, 논술 첨삭 등의 부업을 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인문대의 A교수는 장학제도가 보다 보편적인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장학제도는 우수한 성적을 거둔 소수의 학생에게 양호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소위 ‘선택과 집중’ 체제지만 실상 학위과정 중의 학생들은 모두 나름의 가능성을 가진 셈”이라며 “되도록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되 소수 학생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내외에서 제공하는 장학금 유형이 상대적으로 다양한 학부생 대상 장학금과 비교할 때 대학원에 대한 장학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비하다. 교육부총장이자 대학원장인 김종서 교수(종교학과)는 “학부생의 76% 가량이 장학금을 받는 데 비해 대학원의 경우 수혜율이 60% 정도”(2013년 장학복지과 제공 자료 기준 장학금 수혜율 석사 77%, 박사 56%)라고 말했다. 그는 “학부 장학금이 거의 없고 박사과정생을 위한 장학금이 풍족하게 주어지는 미국의 대학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학부 교육에 장학금이 많이 포진해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의 이유로 학부를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과 대학원 대상 기부 장학금의 상대적 부재를 들었다. 그는 “장학 재원의 많은 부분을 외부자 기부가 차지하는데 이 같은 기부 장학금도 학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독지가들이 대학원보다는 주로 출신 학부에 장학금을 기부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 차원의 교외 장학금은 오히려 축소되는 추세다. 현재 한국장학재단에서 제공하는 대학원생을 위한 국가장학금 역시 인문•사회계를 위한 국가연구장학금뿐이다. 2010년 장학사업의 일부 통합•개편으로 이공계 국가연구장학금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하이서울장학금의 경우 2011년 예산 삭감을 이유로 대학원생 대상 장학금을 폐지한 채 학부생 대상 장학금만 남게 됐다. 설문조사의 자유기술 항목에서 한 대학원생은 “이번부터 이공계 BK 사업에서 연구참여생의 70%에게만 급여를 지원하기로 바뀌었다”며 “학부보다 등록금은 더 비싼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부족하다보니 날이 갈수록 대학원생들의 지원이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조교 및 연구원 활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공별 TA/RA 정원에 대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42.3%가 ‘TA/RA 정원이 있지만 원하는 사람 모두가 TA/RA 등의 업무에 참여하지는 못한다’고 답했으며 ‘정원이 없거나 너무 적어서 1명 혹은 극소수의 학생들만이 TA/RA 등을 할 수 있다’는 응답이 30.9%로 뒤를 이었다. 연구원의 경우 이번 학기 연구프로젝트가 있는 전공 및 연구실에 한해 연구원 정원을 묻는 설문 결과 응답자의 34.7%가 ‘연구 프로젝트가 있지만 선발 정원이 한정돼 있어 원하는 모두가 참여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지원 대상의 수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조교 및 연구원 선발에 지도교수의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박사과정 B씨는 “장학 지원이 많지 않아 강사 업무 등 외부 재원이 없는 경우 돈을 벌기 위해서는 TA/RA, 학과 내 연구 프로젝트에 포함돼야 한다”며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교수님 재량에 달려 있고 특히 기혼 남자 위주로 선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3. 부족한 지원금, “생활비는 알아서”

좁은 관문을 통과해 지원 대상자가 되더라도 지원금이 충분치 않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장학금은 대학원생이 추가적인 노동 없이 학업 및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끔 장려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임에도 대학원생이 학비 및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자유기술 항목에서 한 응답자는 “교내외 장학금은 등록금 위주로 책정될 뿐 대학원생의 개인 생활비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어 교외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장학금을 받아도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고 교외 아르바이트는 학업에 많은 방해가 돼 학업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충을 호소했다.
설문조사 결과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대학원생 556명 중 28.6%가 현재 받고 있는 장학 혜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한 장학 제도가 불만족스러운 이유에 대한 선택문항에서는 응답 가능한 인원의 34.4%가 ‘장학 지원 액수가 적어 등록금 및 생활비를 부담하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장학금 없이 TA/RA, 행정 잡무 등의 조교 업무를 통해 임금을 받는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설문조사 결과 전체의 7.6%에 해당하는 대학원생들이 장학금이나 겸임 업무없이 TA/RA, 행정 조교 업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월평균 소득을 묻는 문항에서는 학내 조교 업무를 하고 있다고 답한 264명의 응답자 중 가장 많은 34.5%가 ‘30만 원 미만’이라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5.7%는 ‘임금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유기술 항목에서 한 응답자는 “월 60만 원의 TA 급여를 받지만 한 학기 등록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아르바이트나 과외업무에 부득이하게 참여해야 한다”며 “박사과정이 되면 TA 급여가 월 110만 원으로 증액되지만 다른 돈벌이 수단 없이 모든 생활비, 특히 집세를 감당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결코 많은 돈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절대적인 액수의 문제 뿐 아니라 조교 수당, 연구 인건비를 지급함에 있어 업무량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설문조사 결과 ‘현재 수행하고 있는 TA/RA 등 근로 업무량을 감안할 때, 현재 그 대가로 받고 있는 임금 수준이 적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에 49.3%가 적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적절한 임금 수준을 묻는 자유기술 문항에서는 “연구 인건비의 총액 자체도 생계를 꾸리기에 부족하고 실질 시급이 1,829원 밖에 되지 않는다”, “1인당 최저임금이라도 보장되면 좋겠다”, “지난 학기 TA를 하면서 임금 자체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었지만 인력이 부족해 학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할 일이 많아 괴로웠던 경험이 있다”는 호소가 다수 제기됐다. 결국 문제시되는 것은 액수 그 자체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업무량 및 업무시간 대비 소득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TA/RA의 근무 기간이 대개 한 학기 단위로 이뤄지고 연구 프로젝트 또한 외부 환경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입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외부 프로젝트를 수주받는 경우 대개 지도교수의 역량에 따라 연구실 전체의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에 같은 학과일지라도 연구실별로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다. 자연대 석박통합과정에 있는 F씨는 “연구비는 결국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실 경제 상황은 그때그때 학계의 연구 동향에 따라 흐름을 탄다”며 “외부적인 요인에 개인의 생계나 경제적 환경이 좌우되기보다는 연구자 개인의 노력이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4. 제도적 빈틈, 전공별로 자의적인 관행 만연해

◇장학금, 제도적 빈틈 보완해야=장학금 문제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의 필요성도 엿보인다. GSI 장학금의 경우 지도교수가 안식년을 맞거나 퇴임을 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미비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교수님의 안식년으로 인해 장학금 혜택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범대 석사과정의 G씨는 “교수님이 안식년이라고 해도 대학원생은 연구를 계속한다는 점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교외장학금을 수여하는 데 교내 TA 근로가 수반된다거나, 한 학생의 장학금을 소속 연구실 내에서 분배하는 등 명확한 규정보다는 학과 내 관행에 의해 장학 지원이 이뤄지는 데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자유기술 항목에서 한 응답자는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동일한 수준의 연구 제반 비용(설문조사, 학회 참가비)을 지원하기 위해 개인에게 지급되는 장학금도 모두 반납하여 공용으로 사용한다”고 답했다.
장학금을 받는다고 답한 학생의 6.5%는 장학 혜택에 만족하지 않는 이유로 ‘장학금임에도 추가적인 노동을 요구한다’고 응답했다. BK 장학금, 단과대 장학금 등에 추가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관행은 특히 자연대 내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지원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BK 장학금에 소속 전공이 자체적으로 조교 업무를 조건화하는 관행은 1년 전 물리천문학부 조교 임금 체불 문제와 관련해 공론화된 바 있다.(『대학신문』 2013년 11월 11일자) 이번 설문에서도 몇몇 대학원생들이 자유기술 항목에서 “연구 장려를 위해 지급되는 장학금은 조교 업무와는 무관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한편 이에 자연대의 B교수는 “조교 활동을 노동이라고 본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지만 기초학문의 경우 조교 활동은 어느 정도 교육의 일환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조교 규정 미비로 업무 과중 초래=TA/RA 등 학내 근로 활동의 경우 업무 시간을 비롯해 근무 기간, 임금 규정 등의 지침이 온전히 각 학과의 자율에만 맡겨져 있으며 각 과별로 내규가 있다 하더라도 학생 개개인이 알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설문조사 결과 학내 근로 활동을 한다고 답한 795명 중 58.8%가 업무 시간에 대한 사전 공지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으며 10.9%는 공지 받은 업무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근무하고 있다고 답했다. 자유기술 항목에서 한 대학원생은 “TA규정에 대한 모니터링이 전무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실제 단과대의 TA 규정은 월 10시간임에도 지도교수별로 실제 근무 시간이 다르다”며 “TA 근무로 인해 연구에 차질이 생길수록 수료 시기에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명의 TA 수당을 2, 3명이 일하고 나눠 받는 관행이 제보되기도 했다.

◇고질적인 연구비 수거 관행도 지적돼=연구실 단위로 구성되는 이공계열에서는 연구 인건비를 연구실비(랩비) 명목으로 수거하는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인건비 항목이 대학원생에 귀속된다는 법적 보장이 확실하지 못해 인건비가 연구실 실장이나 지도교수의 계좌를 거쳐 연구실로 환급된다는 것이다. 자유기술 항목에서는 “국가 과제 연구비를 구성함에 있어 학생과 교수의 인건비로 나뉨에도 불구하고 실험실 전반에 들어가는 운영비가 학생 인건비에서만 차감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추가적으로 ‘운영비’, ‘관리비’ 항목이 생겨야 한다”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구실비 수거 관행에서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부각됐다. 수거에서 재분배에 이르는 과정이 오로지 지도교수의 재량에 달려 있어 분배 기준이나 회계 내역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자유기술 항목에서는 “명목상으로는 연구 프로젝트가 줄었을 때를 대비한다고 하나 지도교수 체제비, 회식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인건비를 재분배할 때도 업무량에 따라 지급되지 않고 교수 재량에 따른다”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다.

 

5. 대학원생 자치기구,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국내 다른 대학에서는 대학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대학원생 연구실태 조사, 논문 작업과 같은 학술활동 지원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고 있다.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지난 4월 연구환경개선투쟁 보고서를 통해 대학원생의 경제 문제 및 연구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이를 근거로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및 ‘생활임금 지급’을 주장했다. 조교 계약 체결 시 조교의 업무 범위나 근무 시간 등을 명시한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해 학교 차원에서 공식화하고 이공계열의 경우 연구실 내 근무 환경에 따른 생활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대학원생 총학생회장 박원익 씨(고려대 경제학과•석사과정)는 이같은 실태조사의 취지로 “교육 환경 개선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학부생과 달리 대학원생은 연구 환경 상의 부조리가 많음에도 그런 이슈를 공유할 기회가 없었다”며 “대학원생의 경우 연구실, 전공별로 파편화돼 있기 때문에 더욱 의식적으로 이들을 모이게 하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14개 대학 권리장전 선언의 시초가 된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 역시 매년 대학원생 연구 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해당 조사에서는 대학원생의 한 달 수입, 주거비, 생활비 등의 경제적 문제를 비롯해 연구 환경과 관련된 종합적인 통계를 산출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2013년에는 대학원생 월 평균 시급이 2,350원으로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함을 보도하기도 했다. 과연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냐는 질문에 카이스트 대학원생 총학생회장 김연주 씨(기계공학과•박사과정)는 대학원생 대상 연구환경개선위원회가 설립된 예를 들었다. 그는 “실태조사 이전 본부는 ‘지금도 충분히 장학금을 받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지만 실태조사를 통해 수치화된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본부와 연구환경개선위원회 설립을 합의할 수 있었다”며 “연구환경개선위원회는 교수 참관 하에 조사 결과를 논의하는 자리이며 1년에 2, 3회씩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의 경우 70여 개의 전공을 대표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학원 자치기구로서 2013년 대학원생 총협의회(총협)가 출범했지만 총협이 대내외적 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총협은 제 2대 회장 선거 무산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설문조사 결과 63.9%의 응답자가 총협의 존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응답자의 73.8%가 총협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다고 답했으며 63.0%는 단과대별 자치기구의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6. 대학원생이 보는 대학원생 문제의 해답은

그렇다면 대학원생의 경제적 어려움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야 할까. 『대학신문』은 설문조사를 통해 문제의 당사자인 대학원생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그 중 가장 많은 대학원생들이 동의를 한 방안은 ‘국가 혹은 본부 차원의 지원 예산이 확대돼 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으로 92.6%가 이에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또 ‘대학원생에게 부과하는 학비를 감면해야 한다’는 문항도 86.5%로 높은 호응도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김종서 대학원장은 대학원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 정원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명문대학은 학문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해 박사과정생에 등록금과 생활비를 포함한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예산상 지원 가능한 수준의 인원만을 선발한다”고 부연했다. 자유기술 항목에서는 “학교 차원에서 최저 생활비 수준을 정하고 교수님들이 최저 생활비를 주지 못할 경우 대학원생 선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통해 대학원생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한정된 재원 내에서 대학원생에 대한 개별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학원 진입장벽을 높이고 정원을 줄여 소수정예 체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문항에 대한 호응도는 ‘동의한다’ 50.7%, ‘보통이다’ 24.0%로 앞의 두 문항에 비해 다소 낮았다.
이외에 ‘학교 차원에서 TA/RA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문항은 57.0%의 호응도를 보였다. 동의하는 측에서는 TA/RA 업무가 연구 시간 외의 추가적인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연구 프로젝트가 적은 전공에게는 TA/RA 업무를 통한 소득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핵심교양 TA를 한 적 있다는 인문대의 E씨는 TA 인력의 확충이 대학원생과 학부생 둘 다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강생 수와 관계없이 TA는 과목 별로 한 명씩 배정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며 “20명이 수강할 때와 달리 70명이 수강하게 되면 업무량도 너무 많아지고 개별 티칭이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학부 학생 배려 차원에서도 대학원생 조교를 위한 TA 정원을 늘렸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7. 학생도 직업인도 아닌 ‘대학원생’이라는 주체로

대학원생은 ‘학생’이면서 동시에 ‘직업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는 학생이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만큼 대학원생으로서의 업무를 통해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인의 위치에 있다. 많은 수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매일 아침 9시 연구실로 출근해 업무가 많은 경우 새벽에 귀가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대다수의 대학원생들은 업무량에 걸맞은 대가는커녕 생활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등 직업인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자유기술 항목에서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은 정식 근로 소득자가 아니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경우 직장가입이 아닌 지역가입으로 분류돼 소득 대비 높은 보험료를 내고 있으며 재형저축*과 같은 특정 유형의 저축에도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대학원생은 또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학문을 발전시켜나갈 학문후속세대로서의 위치에 있다. 인문대 A교수는 “개인이 학문의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이에 따르는 희생까지 감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학문 연구는 그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전문 영역을 개척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사회 또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서 대학원장도 학문 연구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학문후속세대로서 대학원생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립대학법인으로서 서울대가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학문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밝힌 그는 “경제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박사과정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낫다는 점에서 인재가 유출되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길게는 40대에까지 학생 신분으로서 연구를 계속해나가는 대학원생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위치에도 있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대학원생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서울대 부모대학원생 모임 맘인스누가 조사한 「가족친화적 캠퍼스 만들기 사업 제안서」에 따르면 최근 보육비를 포함한 월평균 가계 지출이 346.53만 원(최근 3개월 기준)에 달하는 것에 비해 개인소득은 108.02만 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32.2%의 응답자가 가족이나 친지의 지원을 바탕으로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사회대 박사 수료생인 F씨는 “암암리에 대학원 진학 자격은 집안이 여유로워 경제적 불확실성을 견딜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문은 있는 자들의 것’, ‘학문은 원래 배고픈 것’ 이 두 가지 명제는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학문의 의미를 개인적인 것으로 축소시키고 학문 연구자의 경제적 문제를 방관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협동과정의 C씨는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즐겁고 사회에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가난했다면 공부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하고 싶은 연구를 지속할 것인지의 여부를 집안 형편에 의해 결정해야 하는 지금의 사회 구조에 대해 대학 측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대학원생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을 독립된 하나의 계층으로 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학생으로서의 대학원생, 직업인으로서의 대학원생, 학문후속세대로서의 대학원생 등 대학원생 개개인이 가지는 속성은 다양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학원생’이 갖는 다양한 속성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원생’은 어떻게 공부하며, 얼마를 벌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진정한 연구중심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학내에서도 단과대별, 전공별로 세분화된 대학원생의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보다 현실을 반영한 지원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재형저축: 저소득층의 재산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만든 장기금융상품

 

그래픽·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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