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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정의가 실종된 세상을 향한 외침, 「비밀의 문」[기고] 드라마 「비밀의 문」리뷰
  • 대학신문
  • 승인 2014.11.08 18:29
  • 수정 2015.03.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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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제21대 임금 영조와 사도세자는 500년 왕조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아들을 죽인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아들로 역사에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천한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자격지심과 ‘형을 죽이고 권좌를 얻은 자’라는 정통성 시비로 인해 평생을 강박증에 사로잡혀 살았던 영조, 그리고 ‘흉악한 병에 걸린 광인(狂人)’과 ‘백성을 위해 어진 정책을 펼치고자 노력한 훌륭한 왕재(王才)’라는 엇갈린 시선 속에 비참하게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사도세자의 비극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달리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참혹한 사건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영조와 사도세자가 소설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계속 호출되는 까닭도 그래서일 것이다.


‘의궤살인사건’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SBS 대기획 「비밀의 문」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기법과 인물 해석 그리고 주제적인 면에서 기존의 역사드라마와 궤를 달리 한다. 첫째,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가정사로 한정하지 않고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대립으로 확장시키면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 기법으로 풀어낸 점이 색다르다. 둘째, 역사적 기록에서 출발하되,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이면을 상상하여 사도세자를 ‘공평한 세상’을 꿈꾸었던 왕재(王才)로 그린 점도 특이하다. 셋째, 왕세자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해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면서 부모세대와 대립하는 자식세대의 관점에서 비극의 역사를 전유하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부모세대와 맞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자식세대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세대가 부모세대를 뛰어넘기는커녕 오히려 그 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풍조가 만연한 세태에서 영조대왕과 사도세자의 비극적 관계를 정치적 대결의 결과로 풀어낸 상상력이 흥미롭다.

   
▲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비밀의 문」은 미스터리 역사드라마를 표방한 만큼,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도입부에 배치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국본 이선(이제훈 분)과 함께 저자거리의 세책방을 찾아 포교소설을 빌려 읽으면서 우정을 쌓아가던 예진화사인 신흥복(서준영 분)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그와 연루된 자들마저 목숨을 잃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라”는 신념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수사에 나선 이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세력에 의해 신흥복의 죽음은 자결로 처리된다.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선은 임금의 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은밀하게 수사를 하다가 오히려 범인으로 몰려 고초를 겪는다. 사건이 미궁에 빠질 즈음, 보기 드문 독서광이자 사설포교이며 이미 두 편의 ‘포교소설’을 발표한 소설가 서지담(김유정 분)의 활약으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히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가 싶었지만, 신흥복이 죽기 직전 비밀리에 사본으로 남긴 문서 ‘맹의’가 이선의 손에 들어오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정치적인 대립과 갈등이 증폭된다.


‘맹의’는 노론의 비밀조직 ‘대일통회맹’의 결의문으로 영조(한석규 분)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던 연잉군 시절, 노론의 영수인 김택(김창완 분)과 결탁하여 힘을 합쳐 이복 형 경종을 권좌에서 밀어내겠다고 서약한 비밀문서이다. 물론 영조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인 ‘맹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설정된 허구적 장치일 뿐이다. 하지만 재위 기간 내내 정통성 시비 때문에 정치적 인정투쟁에 시달렸던 영조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맹의’라는 허구적 장치로 영조의 정치적 불안감을 표현한 극적 상황이 사실처럼 보일 정도로 매우 그럴듯하다.


국본 이선은 신흥복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맹의’를 통해 아버지 영조의 정치적 민낯을 확인한 뒤 갈등을 거듭하다가 은폐된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하고 ‘맹의’ 진본을 찾아 나선다. 이로 인해 영조와 국본 이선의 정치적 대립이 심화되고 갈등이 증폭된다 하더라도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선이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비극적인 아들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문」이 흥미로운 것은 신흥복의 죽음과 연루된 자들이 연달아 살해당하면서 벌어지는 광기 어린 마녀사냥에 제동을 걸기 위해 국본 이선이 수사를 중단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시대적 대의를 선택한다는 극적 상황 때문이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살육을 저지르는 아버지에게 진실을 밝히고 백성의 용서와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국본의 정치적 입지가 온전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소론 세력의 정치적 엄호와 혜경궁 홍씨(박은빈 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본 이선은 끝내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선의 비극적 최후에서 부모세대가 만들어 놓은 견고한 질서를 따르지 않은 자식세대가 당할 서슬 퍼런 응징을 연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노론과 결탁한 증거인 ‘맹의’를 추적하는 아들 이선을 대하는 영조의 태도는 상당히 정치적이었다. 영조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아들에게 토로하면서 스스로를 연민의 대상으로 만든 뒤, 대리청정을 거둬들이고 직접 정사를 돌보겠다고 선언한다. 무수리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소론이 아닌 노론이 선택한 왕세자라는 이유로 온갖 수모를 겪고 죽음의 위기를 넘어야 했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균역법을 관철시키려 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을 눈물로 회고하는 영조의 모습에서 자상한 아버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아들마저 정적(政敵)으로 인식하는 정치 9단의 노회한 술수만이 느껴질 뿐이다. 균역법이 완성돼 반포될 때까지 성심을 다해 보필할 것을 다짐하는 이선이 아버지의 품에 안겨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이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선은 임금의 밥상이라 하기 어려운 소찬과 비단옷이 아닌 무명옷을 입고 근면하게 생활하는 아버지가 백성을 위해 균역법을 완성하기 위해 대리청정을 거두고 친정 체제를 구축한 것을 의심할 수 없었다. 설령 의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경우, 역심(逆心)을 의심받게 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선은 경종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아버지의 왕위 승계 과정에서 있었던 불법과 탈법의 증거인 ‘맹의’ 진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노론 세력의 음모에 의해 정치적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가 실종된 세상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언론을 대신하여 이야기책이 진실을 전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진본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맹의’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점점 더 격화되면서 영조의 왕위 승계 과정의 불법과 탈법을 기록한 이야기책 ‘궁중비사 소호당 정수겸 회고록’이 출판돼 저자거리에 유통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영조는 책을 출판하고 유통시킨 세력을 잡아들이고 그것을 읽은 백성도 죽여 없애라는 명령을 내리고, 국본 이선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맹의’와 관련된 내용의 진위 여부를 아버지에게 직접 묻는다. 맹의와 관련한 이야기책의 유포 사건으로 인해 이선과 영조의 정치적 대립각이 점점 더 첨예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 여부와 별개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부모세대와 진실을 밝히려는 자식세대의 대립과 갈등을 환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대결에서 승자는 부모세대였다. 자식세대의 미래를 담보로 부모세대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오늘날의 세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가족사로 기록된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 부자관계는 어떻게 재해석해도 결말이 달라지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다. 「비밀의 문」은 역사적 기록의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세책방 주인 서균(권해효 분)과 그의 딸 서지담이 그 주인공이다.


‘궁중비사 소호당 정수겸 회고록’을 출판하여 유통시킨 범인으로 지목돼 붙잡힌 서균은 목숨만은 부지해 후일을 도모하라는 채제공(최원영 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위해 싸우고 싸워 이겨서 내 발로 나가겠다는 걸세. 하여 나도 지금 희망 속에 있다네”라면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역설한 뒤, “내 딸 지담이가 살아갈 세월은 이 애비가 살아온 세월보다 버겁지 않기를 빌어주마. 행복해라 우리 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신념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그리고 영조가 ‘맹의’를 부정하면서 기록된 것만 진실로 믿어야 한다며 소론의 핵심 세력을 죽이는 참혹한 추국청에서 “미친 살육을 당장 멈추시오. 임금님께 하는 말이 아니오. 형리 나리들 이게 지금 잘 하는 겁니까? 대감님들 이거 다 미친 짓 아닙니까?”라고 물으면서 “귀가 있어 들었을 뿐이고 입이 있어 말했을 뿐인데, 백성들이 말할 자유를 이런 식으로 짓밟은 임금이 무슨 임금이오? 그 칼 없이는 백성들 상대 못 하는 거 창피하지 않습니까? 당장 이 미친 짓을 멈춰요! 선한 자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 더 무섭소!“라고 일갈한 뒤 끝내 영조의 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서균의 일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조의 왕위 계승 과정에서 있었던 불법과 탈법의 실상을 둘러싼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은폐된 진실의 문을 열어 “정의가 물결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장섰던 서균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는 풍조가 만연한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선이 “멈추지 않으면 맹의의 진본이 백성들이 붙인 벽서 위에 붙을 것입니다!”라고 영조를 압박하면서 정치적 목소리를 분명히 낸 것도 서균의 참혹한 죽음이 가져온 변화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명령이 아닌, 시대적 대의에 따라 감당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선 이선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자식세대의 패배가 분명하기에 직시하고 싶지 않지만, 외면한다고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비밀의 문」의 국본 이선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부모세대와의 대결을 피하지 않았던 자식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정통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비정상적인 정치 상황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당장의 생존을 위해 진실이나 정의를 외면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자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어떤 상상력을 발휘한다 해도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고,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한 역사 왜곡 논란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문」을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이 아니라, 국본 이선이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극적으로 천착하면서 자식세대의 정치적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부자관계를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정치적 대결구도로 재해석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다만, 「비밀의 문」은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드라마일 뿐 역사교과서가 아님은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진실과 정의가 실종된 세상을 향한 외침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그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 윤석진 교수
충남대 국문과
드라마 평론가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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