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호 교수
정치외교학부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세월호 사건은 이제 기억 저편의 이야기인 듯하다. 배가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듣던 그 날, 그리고 며칠 동안이나 아내와 나는 서로의 눈을 피하며 말없이 TV를 묵묵히 바라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 아이들이 봄여행을 떠났던 계절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지만, 우리가 어느덧 일상으로 회귀해 있다는 사실이 죄스럽기만 하고, 국회에서 지난 주 통과됐다는 특별법이 새삼 뜬금없다는 생각조차 든다. 많은 이야기들-사회 개조론에서부터 음모론까지-이 오갔지만 이제는 모든 것들에 둔감해진 것은 이런 정치적 무기력감이 매우 낯익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무기력감과 정부 책임성의 부재라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현대 민주정치의 일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세월호 사건은 천천히 침몰하는 배와 함께, 우리 공동체를 이끄는 정부의 무능력함과, 이를 통제할 시민들의 무기력함과, 양자를 연결하는 선거라는 고리의 부실함을 너무도 처절하고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을 따름이다.

선거가 정부의 성과 평가라는 관점에서 진행된다면 이는 민주정치의 선순환을 이룩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정부는 정책을 집행하고, 여당은 그것으로 선거에서 심판을 받으며, 때로는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이들을 몰아내기도 할 것(throw the rascals out)이다. 어느 악당이 더 나을지에 대한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 할 것이다. 공적 여론과 선거를 공부의 업으로 삼고 지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지난 지방선거가, 그리고 뒤이어진 보궐선거가 정부·여당에게 불리한 선거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해 보였고, 야당 또한 적극적으로 이 점을 파고들었던 것 같다. 물론 선거 결과는 주지하는 것처럼 모두의 예측을 벗어났다.

선거를 전후하여 수집된 여론조사 자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본교 ‘정치커뮤니케이션 센터’가 수행한 실험설문에 의하면,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시민들이 형성하게 된 공감이나 연민, 나아가 분노의 감정은 매우 강력한 것이었고 선거에서 상당히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다만,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그 분노의 감정이 정부·여당으로만 향했던 것이 아니라 야당과 정치 일반을 향한 것이어서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거나 오히려 야당에게 더 큰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야당이 선거에서 ‘세월호 심판’을 외치면 외칠수록 선거 전략으로서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고, 반면, 감정에 호소하는 빨간 점퍼 1인 시위가 생각만큼 황당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정당에 대한 상당히 견고한 충성심과 상이한 지지층의 결집 수준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가장 강한 공감과 분노를 보인 집단은 야권 지지층이며, 이들이 야당에 대해 느끼는 분노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여당 지지자들이 여당에 대해 느끼는 분노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었다. ‘경제 살리기’가 선거의 가장 주요한 이슈라고 대답한 이들이 상당 수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단기적인 경기부양과 집값 상승의 전망을 끊임없이 흘린 정부·여당의 선택은 이성적인 경제정책이라기보다는 적절한 선거 전략으로서 이해된다.

이 글이 비극적 톤으로 시작하여 순식간에 희극적이 돼버린 것처럼 어느덧 우리는 슬픔과 체념을 넘어 이제 자조의 단계에 이른 것 같다. 희망은 없는 것일까. 걱정과 불안, 그리고 열정이 시민들의 관심과 정보 획득, 토론과 숙고, 나아가 정치 참여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정치학 문헌을 믿을 것. 연민과 공감이 같은 말(compassion)임을 상기할 것. 아이들과 유족들을 위해 모두가 공동체의 빈소에서 울었던 장면을 기억할 것. 그리고 그곳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이 새로 정의되고 발견됐던 사실을 기억할 것. 그렇다면 아직 심연에서 끌어올릴 희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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