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파멸
회복과 파멸
  • 박민규
  • 승인 2014.11.09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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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의 『노랑무늬영원』 중 「왼손」

이상한 것은 그의 왼손이 마치 나름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뺨의 상처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 (「왼손」)

▲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회복을 염원하는 일

올해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이야기했을 때, 반기를 드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낭독회에 갈 수 있었다. 문학평론가 송종원의 진행으로 소설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이 오갔다. 이윽고 다소곳한 목소리로 자신의 작품을 읽던 한강은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는 낭독을 멈추었다. 어떤 관객은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누구도 그 정적을 깨트리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소설과 닮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한강의 세 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을 다시 펼쳤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이 책은 두 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2000) 이후 12년 만에 출간되었다. 한강의 내면 묘사는 유리를 매만지는 듯 섬세하고 치밀하다. 이탤릭체를 활용한 특유의 독백은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극대화해 읽는 이를 감화시키기에 충분하다. 단편들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진한 여운이 남았다. 서사에서 오는 감동 때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탄생과 소멸에 대하여 치열하게 탐구하며 문제의식을 표출한 집요함 덕분이다.

각 단편마다 시점이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그녀의 작품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어딘가 닮아있다.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개인적인 상처를 여럿 안고 살면서 자의식이 강해진 인물들이다. 폐쇄적인 삶 안에서 모두가 극심한 내면의 갈등을 느끼며 몸부림친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새로운 생명을 향한, 삶을 향한 의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날의 궤적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 궤적의 끝에서 다시 새로운 선을 그어보려는 시도가 여러 단편의 결말에서 등장한다. ‘회복’이라는 단어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회복에 대한 염원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작품이 「왼손」이다.

본능이 가져오는 파멸

 

줄거리는 이렇다. 평범한 삶을 살던 남자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왼손이 가끔 자기 손이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직장 내에서도 통제가 되지 않는 왼손이 상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남자는 회사를 나온다. 자제력을 잃은 왼손은 남자의 대학 시절 짝사랑이 일하는 화원으로 그를 이끈다. 여자와 오랜만에 재회하게 된 그는 반가움만을 갖고서 돌아서려 했으나, 본능적으로 움직인 왼손이 여자의 뺨을 어루만진다. 이것은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계기가 된다. 이혼 후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탓이다.

가장 나쁜 것은, 왼손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것이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그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제와 같은, 아니 어제보다 더한 일을 벌일 수도 있었다.

남자는 여자와 사랑을 나눈다. 허나 남자는 결혼하여 아이까지 둔 상태였고 상대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남자는 위태로운 만남을 지속하면서도 양심 때문에 결혼 사실을 고백하려 한다. 그런데 왼손이 이를 막는다. 자기 자신의 코를 때려버리는 무지막지한 행동으로. 얼마 뒤 여자는 남자에게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실망감과 원망을 갖는다. 남자는 사죄를 위해 그녀를 찾아가지만 왼손이 또 다시 본능적으로 여자를 탐하려 한다. 여자는 저항하며 커터칼로 그의 어깨를 찌른다. 남자는 상처를 옷으로 감싼 채 가까스로 왼손을 제어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는다.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이는 찰나, 다시 통제 불능의 왼손이 아내를 향해 거칠게 움직인다. 그는 아내를 황급히 밖으로 내보내고 최후의 수단을 택하게 된다.

왼팔을 부러뜨리면 왼손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내일 아침엔 언제나처럼 출근할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그의 자리를 지켜낼 것이다. 아내와 아이도 되찾아올 것이다. 그의 어깨에 칼을 꽂은 그녀는 잊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잠 못 이루지도, 의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소설은 부엌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눈가를 피 묻은 왼손이 어루만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윤리적 책임과 판단이 지배하는 오른손, 본능과 욕구가 지배하는 왼손 사이의 혈투는 남자가 지닌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부러뜨리려는 오른손과 살아남으려는 왼손이 뒤엉켜 빚어내는 혼란스러움이 작품의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갈등의 중심에 원래의 삶을 되찾겠다는 남자의 강력한 의지가 자리잡고 있다. 객관적인 상황만 떼어놓고 봤을 때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왼손이 그를 파멸시켰다. 그러나 남자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용한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파멸의 원인이 된 왼손을 똑같이 파멸시킴으로써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회복을 꿈꿀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한강의 소설은 모두 회복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쓰여 있다.

「왼손」은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에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진술한다. 진술만으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한강의 다른 작품들에서 사용된 기법과 좀 다르다. 한강은 대개 이탤릭체의 독백이나 회상, 장면 묘사를 서사 중간에 삽입하여 흐름을 단절시키고 그 내면 세계로 독자를 흡입하는 방식을 택한다. 주인공들이 내면적으로 고통받게 된 배경과 트라우마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다.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인식하며 독자가 인물의 내면 안으로 잠식되는 것이 한강 소설의 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랑무늬영원』 같은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생명의 생동감을 표현하기 위해 도입부부터 묘사한 잔멸치떼 이야기나 화가 Q의 도록에 대한 서술이 주는 감각들을 곱씹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허나 「왼손」에서는 그런 ‘수고’를 좀 덜어도 좋다.

작품 안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 중 하나는 “왼손이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는다”라는 남자의 주장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병원에 찾아갔을 때 의사는 정신과 진단을 권유했고, 회사 동료와 상사는 과중한 스트레스에 따른 부적응으로 여겼으며, 짝사랑한 여자는 그의 진심을 의심했다. ‘당연히’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야 할 근육 어딘가가 불수의근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만약 남자처럼 신체 어느 부위가 본능에만 의지하여 움직인다면? 일상을 정지시키고 돌발 행동을 막으려 치료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 본능으로 인해 펼쳐질 일들을 순순히 맞이할 것인가. 억눌린 본능을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해방시키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감각, 욕망이 있다. 남자는 왼손을 통제할 수 없었기에, 짝사랑했던 여자와 만날 수 있었다. 본능에 의존한 위험한 만남은 남자를 파멸로 이끌었지만 말이다.

파멸은 회복의 전제 조건이다. 제각기 내면의 상처를 견뎌내려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며 누군가는 이것이 흔하고 진부한 인생사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시련과 극복이라는 단순한 구조로 대체하여 한강의 소설들을 단순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들의 상처는 이미 너무나 많은 절망의 시간 동안 단단해져 단번에 치유될 수 없다. 또 한 번 고통스러울 재기의 과정, 불완전한 회복만이 있을 뿐이다. “그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라는 「왼손」의 첫 문장을 떠올린다. 남자는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려 한다.
한강의 소설을 읽는다. 인생이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차근차근 무너지는 주인공들을 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그녀의 곡진한 언어로 듣는다. 작품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은 독자밖에 없다. 다행히도 그들은 꿈꾸는 중이다. 이렇게.

온 힘으로 기다린다.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

그녀가 회복되었다, 라고 첫 문장을 쓴다.
- (「밝아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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