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민’ 씨는 항간에 떠도는 저속한 표현을 접할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에 빗대거나 진보, 민주세력을 ‘좌파좀비’라 칭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아 다닌다. 세월호 유족들을 폄훼하는 발언들도 영 눈에 거슬린다. 나시민 씨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심기가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그 자신에 대한 풍자나 비난을 참을 수가 없는지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일갈하자 검찰이 부리나케 움직여 인터넷 공간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뒤늦긴 했지만 국무총리도 한 마디 거들었다.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가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시민 씨는 저 비루한 집단들을 고소하기로 결정하고 직접 소장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다. “‘이러한 표현들은’(이 사건 도서는) 우리사회 또는 국제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보편적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전쟁범죄를 찬양하는 것)에 다름 아니고 자라나는 청소년과 후세들에게 타당한 근거가 없는 주장, 허위사실과 잘못된 표현에 오염된 서술로써 ‘왜곡된 사실을’(역사를) 전파하고 있는 바, ‘피해자들’(채권자)의 명예와 인격권의 보호 및 우리 사회가 추구하여 왔던 법적, 사회적, 역사적 정의와 진실의 가치와 잣대에 비추어 절대로 ‘허용이’(판매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해자들의 표현들은’(채무자 박유하의 채권자를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 사건 도서의 표현들은) 표현의 자유와 한계를 넘는 것에 해당합니다.”

▲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사실 위의 인용문은 『제국의 위안부』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청구한 측의 소장 마지막 부분을 변형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사회의 통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이 저서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는 ‘나눔의 집’ 측은 ‘매춘’, ‘동지적 관계’ 등의 표현이 피해자들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박교수는 저서에서 ‘조선인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식민지배, 가난,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의 복합적 산물이며, 이런 인식에 기초해 일본의 사죄와 보상 문제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많은 이들의 생각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아온 결과이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우리 안의 견고한 기억들”에 “화해를 지향하는 균열”을 내보려 시도했다고 밝힌다. 그런데 논쟁적인 이 문제제기를 둘러싼 생산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안이 재판정에 불려가게 되면서 제대로 된 학문적 논의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됐다.

서두에서 언급한 저급한 표현들을 제한해야 하는지, 사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도 분분한 상황인데, 학술적 결과물을 재판정에 회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가령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 국부론’, ‘5.16 혁명론’ 등을 주장한 저서의 논지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유포 등의 명목으로 사법적 판단에 맡긴다면, 이를 바람직한 처사라 볼 수 있을까.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법률가들이 대신하고 논쟁이 있어야 할 곳에 판결이 자리 잡는다면, 우리 사회의 민감한 이슈를 진지하게 다루고자 하는 학문적 노력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볼테르의 말을 다시 되새겨본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그러한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목숨을 걸고 지킬 것입니다.”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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