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셔틀버스의 대학동 정류장 근처, 못 보던 천막이 눈에 띈다. 한남운수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이병삼 씨(45)의 천막이다. 그는 매주 화요일마다 한남운수 차고지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를 위한 집회를 1년 8개월간 진행해왔지만 사측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지난달 31일부터 천막투쟁에 나섰다.

버스준공영제 시행, 정비사 처우는 악화돼

서울시는 2004년 민영제로 운영되고 있던 시내버스 체제를 개편하면서 버스준공영제를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서울시는 버스 운영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민영제와 안정적인 운영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영제의 장점을 결합했다고 홍보한다. 지자체가 버스회사에 보조금을 주는 대신 버스 운영에 일부 개입해 공공성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보조금은 인건비, 자재비, 복지비 등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고 서울시는 표준운송원가를 산정해 보조금의 지급액을 결정한다.

하지만 버스준공영제 시행 이후 버스 안전을 책임지는 정비사들의 처우는 더욱 악화됐다. 버스 회사는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업체별 1명+버스 대당 0.137명’의 정비사 인건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서울시는 인건비만 지원할 뿐 실제로 버스 회사에서 몇 명의 정비사가 일하고 있고 보조금 중 인건비로 얼마가 지출되는지는 확인하지 않는다. 또 버스 안전을 위해 의무 고용해야 하는 최소한의 정비인원에 대해 규정을 마련해 두지 않고 업체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 결과 전국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서울시 98% 이상의 사업장에서 정비사들은 강제적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전환,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 이는 정비 불량에 따른 버스 안전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6년간 한남운수에선 무슨 일이?

한남운수의 사례는 이런 버스준공영제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남운수는 서울대 캠퍼스 안으로 들어오는 5511, 5513, 5516을 비롯해 11개 버스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정비사 처우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2008년 부도 위기를 맞은 한남운수에 가장 큰 채권자였던 박복규 씨가 대표이사가 취임하면서부터다. 박 대표이사는 2009년 2월 취임 당시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버스 정비사들에게 임금 15% 삭감과 인원 감축, 월급제에서 연봉제로의 전환 등을 요구했다. 운전직이나 사무직에 대해서는 어떤 요구도 없었다.

정비사들은 사측의 부당한 요구에 맞섰다. 서울시에서 정비사 23명에 대한 임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감축이 왜 필요하냐고 항의했다. 월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연봉제 도입을 빌미로 한 정비직의 비정규직화가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정비사들은 회사 사정을 고려해 최대한 부속품과 자재를 아끼고 근무시간도 늘리겠다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미 근로조건을 바꿨으니 항의하지 말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비사들이 계속해서 항의하자 사측은 6명의 정비사들에게 보직을 운전직으로 옮기라는 발령을 냈다. 당시 정비사들은 차 고장 여부를 살피는 시범 운전을 위해 선택적으로 대형면허를 취득했을 뿐 운전 경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씨는 “빈 차로 시범 운전하는 것과 사람을 태우고 운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남운수에 운전직으로 입사하기 위해서는 이력서에 대형면허 취득한 지 최소 1년, 대형차량 운전 경력 최소 1년이 지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정비사들은 운전직 발령이 부당하다며 이를 지방노동위원회(노동위)에 신고했지만 노동위는 발령을 받은 정비사들에게 일단 회사 명령에 따라 운전직으로 옮겼다가 정 힘들면 다시 정비직으로 복귀할 것을 종용했다. 노동위에서 심사가 진행되는 5개월 간 월급도 받지 못하고 일했던 정비사들은 사측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자 싸우기를 포기하고 운전직으로 옮겨갔다.

이런 상황에서 사측은 또다시 정비직에 대한 임금 삭감을 요구했고 정비사들이 이에 반발하자 남아있던 정비사들 중 이 씨를 포함한 정비사 5명을 운전직으로 발령냈다. 정비사들이 발령을 거부하자 2010년 10월 사측은 이들에게 정직, 해고 처분을 내린다. 정비사들은 부당한 처분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방법원에서 대부분 승소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에서는 2명이 승소하고 3명이 패소하며 판결이 갈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민사에서 패소한 이 씨는 노동위도 법원도 회사 편이라고 판단해 2010년 12월 피켓시위를 시작했다. 다른 회사에서도 정비사에 대한 처우가 갈수록 나빠져 이 씨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7월 9개 회사에서 정비사들이 모여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버스지부 정비사지회를 설립했고 조합원들은 이 씨의 피켓시위를 도왔다.

이 씨는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한남운수 대학동차고지 앞에서 매주 화요일 3시마다 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 초창기에 노동당, 녹색당, 서울대 총학생회, 관악지역 노동조합 등과 함께 ‘한남운수 부당해고자 원직복직과 버스완전공영제를 요구하는 관악지역 공동대책위(공대위)’를 꾸렸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남운수를 향한 이 씨의 투쟁은 이 씨가 해고된 이후에 일부 결실을 맺었다. 노동자들은 점심시간 1시간을 보장받았고 연차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퇴직금을 퇴직 전에 미리 받을 때는 근속근무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씨는 “저는 이미 해고됐지만 저 안에 있는 동료들에게는 나아졌습니다”라며 천막 맞은편 정비소를 가리켰다.

그러나 정작 이 씨가 6년 동안 싸워왔던 문제는 그대로다. 정비사 임금 삭감, 인원 감축, 연봉제로의 전환 등 본질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씨의 복직 문제 역시 진전이 없다.

서울시, 회사 자율에 맡기고 있어

한남운수 사태에서 드러난 버스준공영제의 허점을 보완하는 데 서울시가 적극 나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버스 회사를 지원하고 있는 만큼 이를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대두되고 있는 문제는 △보조금을 어떤 항목에 얼마큼 지출하는지에 대한 사후 감독 △정비직 의무고용 인원 설정이다.

서울시는 일단 보조금을 지급하고 나면 보조금을 어디에 얼마나 사용할 것인지는 회사의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버스정책팀 구재성 팀장은 “표준운송원가는 최대 지원치고 그보다 적게 쓸지 더 쓸지는 회사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버스 회사가 보조금을 용도대로 사용하지 않고 유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공공연구원 이영수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정비직 인건비로 지급된 보조금으로만 1년에 100억 원 가까이 유용됐다고 밝혔다.

이병삼 씨 사건을 계기로 정비직 의무고용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논의 단계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정비직 고용의 최소기준 마련을 골자로 하는 ‘시내버스 준공영제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의 단계에 있어 실질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 앞에 천막 친 이병삼 씨

▲ 지난 5일 통학셔틀버스 대학동 정류장 근처 위치한 이병삼 씨의 천막. 셔틀버스가 그 옆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 까나 기자 ganaa@snu.kr

다시 한번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31일 이 씨는 천막을 쳤다. 한남운수 대학동차고지 맞은편, 행인과 버스가 많이 오가는 횡단보도 중간에 천막을 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남운수는 지금도 규정된 정비사 인원에서 10명 정도를 덜 고용하고 있다”며 “정비사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직업인데 정비사를 적게 고용하면 이는 시민의 안전 문제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사진: 김유정 기자 youjung@snu.kr

서울대 캠퍼스 내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 3대(5511, 5513, 5516)는 모두 한남운수에서 운영한다. 이 씨는 “한남운수 사태는 서울대 학생들의 안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며 “서울대 학생 뿐 아니라 주변의 중, 고등학생들도 통학버스로 한남운수 버스를 이용하고 있어 정비 불량이 사고로 이어진다면 학생들의 피해가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비사 경력 27년이라는 이 씨는 해고 통보를 받기 전까지 회사 자체적으로 실시한 근무평가에서 1위를 할 정도로 회사를 사랑하고 자기 일에 충실했다. 이 씨는 “이제 정비 일을 하고 싶어도 다른 회사에서 내 이름을 알아 이력서도 넣지 못한다”며 “어떻게 해서든 한남운수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측이 해고를 취소한다면 언제든 일터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남운수는 이병삼 씨의 복직투쟁뿐 아니라 정비사 처우 문제에 있어서도 “의사를 밝히지 않겠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