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에서 예술을 배운다는 것
한국 대학에서 예술을 배운다는 것
  • 강수원 기자
  • 승인 2014.11.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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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육을 다룰 때 예술계열 대학생들이 처한 교육 환경에 관한 논의는 항상 뒷순위로 밀려있었다. 파악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예술대학 학생들이 겪는 경제적 문제를 보여줄 자료는 부족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도제식 교육만이 문제라는 편리한 답을 취할 뿐이었다 사회에 진출하는 학생들의 불안함을 덜어줄 최소한의 교육의 필요성도 뒤늦게 부각됐다. 이번 기획이 완벽한 답을 제시하진 못하지만 예술계열 학생들의 교육 문제를 고민할 계기를 열어보고자 한다.

1. 예술은 원래 배고픈가요


근대 대중 교육이 마련되기 전 서구에서 예술이 일부 귀족들의 취미 정도로 여겨졌던 것은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예술교육에 많은 시간적•금전적 비용을 투자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크 음악의 대표자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역시 명문가의 자제였으며 청년기에 뤼네부르크, 바이마르 등지에서 17년간 풍족하게 음악을 배우며 성장했다. 약 400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전문 예술가를 양성하는 고등예술교육은 종합대학을 중심으로 많이 대중화됐으나 학생들은 금전적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높은 등록금, 커지는 부담=교육부의 학부•과 표준분류체계에 따르면 ‘예술대학’은 음·미대 등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활동인 예술을 교육하는 대학이다. 예술대학의 등록금은 항상 다른 단과대에 비교했을 때 높게 책정돼왔다. 대학알리미에서 공시한 2014년 평균 등록금 현황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 218개 대학에서 예체능 학과의 연간 평균 등록금은 720만 9천 원으로 의학과(922만 5천 원) 다음으로 높았다. 「대학의 특성 및 전공계열에 따른 등록금 수준 분석 연구」(2009)에서 2005년부터 4년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예체능 학과의 등록금은 항상 공학계열보다 높고 인문사회계열 등록금의 1.3배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예술대학이 포함된 예체능 계열 학과의 등록금이 높게 책정되는 요인으로 실험•실습비가 있다. 실험•실습비는 실습용 기계•기구와 재료를 구입하고 관리하고 충당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등록금의 일부로 책정된다. 하지만 대학 차원에서는 실험•실습비의 사용 내역을 공시할 의무가 없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서울대 미대 A 씨는 “학교 측에서는 흔히 (미대생들이) 작업 도구나 설비를 많이 쓰는 만큼 등록금을 차별적으로 책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실습비의 사용 내역이 투명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실습비가 많이 포함된 높은 등록금을 부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자금 대출에 의존하는 학생들이 생긴다. 2012년 취업포털 ‘사람인’이 실시한 “대학생 학자금 대출 현황” 조사에서는 예체능계열 학생의 61.9%가 등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평균 대출 금액은 1,660만 원으로 모든 계열 중에서 가장 높았다.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B 씨는 “처음 들어왔을 때 등록금이 490만 원으로 높은 편이었는데 지금도 학자금 대출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대출율과 금액에 비례해 학자금 대출 연체율도 그에 상응한다. 「고등교육기관 및 학생 특성에 따른 정부 지원 학자금 대출 연체율 분석 연구」(2009)에 따르면 학자금대출을 받은 예술계열 학생 375만 67명 중 9천 347명이 연체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대출자 중 연체자 비율은 8개 계열 중 3번째로 높은 18.74%로 분석됐다.

◇사비를 털어가며 제2의 등록금을?=예술대학 학생들은 등록금 이외에도 전공 수업이나 학과 행사를 따라가기 위한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먼저 재료 구매, 작업 및 연습 공간 확보, 도구 대여, 악기 정비 등 정규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들 수 있다. 「대학생의 과외 사교육 참여와 사교육비 지출 규모의 계열별 차이 분석」(2010)에 따르면 예체능계열 학생 1인당 사적으로 지불하는 비용은 약 543만 원으로 평균비용(약 339만)을 웃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재형 교수(동국대 영화영상학과)는 “졸업작품으로 50~60명이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 때 식비, 배우 섭외비, 운송비, 세트 대여 등 끝없이 생기는 비용을 생각하면 결국 수백만 원이 필요하다”며 “실습비로 30~40만 원을 받더라도 학생들에겐 여전히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교육활동을 선택하며 생기는 비용도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다. 학생들이 기획하는 작품 발표회나 혼자서 재료를 다루는 법을 연습하는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음대의 경우 20~30명의 학생이 모여 발표회를 준비하는 데 약 700~800만 원이 사용된다. 작곡과의 경우 만든 곡을 연주해줄 사람을 섭외하는 비용은 개인의 몫이다. 이처럼 예술계열 학생들의 사적인 교육지출은 통계로 정리된 적이 거의 없으나 그 부담은 상당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미술 실기나 졸업 작품 등 부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제2의 등록금’이야기가 나오는 건 무리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장학금이 단과대 규모나 학과별 특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지급돼 예술대학 학생들이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서울대의 2014년 장학금 수혜 현황을 살펴보면 미대의 경우 한 학기에 재학생 1인당 받는 장학금은 103만 9천6백 원으로 법대를 제외한 14개 단과대 중 가장 낮다. 미대와 음대의 장학금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B 씨는 “콩쿨과 같은 외부 대회에서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고 실적을 쌓을 기회가 많은 음대는 장학금을 받기 쉬운 편”이라며 “연극이나 영상처럼 그런 기회가 부족한 학과는 외부 장학금을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음대 내에서도 학과에 따라 재학생 1인당 받는 장학금은 최대 2배까지 차이가 났다.

 

◇내는 만큼 받질 못하니=이처럼 학생들이 대학 교육에 공•사적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계 학생들은 이에 상응하는 교육 환경을 제공받고 있을까? 서울대 음대 C 씨는 “연습실에 피아노가 조율돼 있어야 하는데 매번 갈 때마다 상태가 다르다”고 토로했다. 서울대 동양화과는 1학년을 위한 실기 공간이 없으며 난방 및 전열기구 사용도 제한돼있다. A 씨는 “곧 미대 복합연구동이 준공된다고 하지만 학생들을 위한 작업 공간이 얼마나 마련될지, 학생들의 요구가 어디까지 반영될지 회의적”이라고 토로했다. 또 미대는 수업이 끝나면 학내 작업실에서 밤새 작업하는 이른바 ‘야작’이 보편적이나 홍익대는 오후 11시 이후 발생 가능한 모든 안전사고의 책임을 학생에게 넘기고 있다.

교육 서비스의 질적 수준과 관련해 전임교원 확보율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1대1 레슨이 반드시 이뤄지는 순수음악을 포함한 음악계열 학과에서는 이론으로만 지식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고 학생마다 성취 수준이 다양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전임교원의 비율이 중요하다. 미대는 3, 4학년들의 졸업 작품 및 준비 과정을 평가하는 ‘크리틱’ 수업에서 모든 학생들이 충분히 조언을 받으려면 소수 학생 단위로 수업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예체능계열 학과가 있는 서울지역 11개 주요 종합대학의 전임교원 확보율(재학생 기준)을 조사한 결과, 서울시립대를 제외한 모든 대학에서 예체능계열 학과의 전임교원 확보율이 대학 전체 전임교원 확보율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예술계 학생들이 교육을 받기 위한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 학생과 학교가 소통해야 한다. 임은희 연구원은 “*홍익대 미대 도자기학과는 원래 가마 비용을 1인당 20만 원씩 거뒀지만 학생들의 항의로 지금은 없앤 것으로 안다”며 “학생들이 교육의 소비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대 강사 D 씨는 “학창시절 경제적으로 곤궁해 조교를 맡지 않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을 교수님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며 “‘예술은 스스로 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경제적 책임을 맡기지만 말고 학생들이 겪는 현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정: 홍익대 도자기과가 아니라 홍익대 도예유리과임. 또 학생들은 여전히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며 실험실습비에서 지원받는 금액도 매년 학과 예산에 따라 다름. 가마 비용은 가마 종류, 가마 크기, 소성 온도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며 같은 가마를 사용한 학생들끼리 부담함. 각 학생이 부담하는 비용은 총 비용을 해당 가마를 이용한 학생 수로 나눠 책정됨. 비용은 학생회가 관리함.

 

2. 단순히 도제식 교육이 문제일까?

 

지난 2월 14일, 서울대 성악과 박 교수가 여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것으로 학내 인권센터에 제보가 들어와 파문이 일었다. 또 2학기 개강일인 지난 9월 1일 숙명여대 작곡과 재학생 및 졸업생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윤 교수, 홍 교수의 퇴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다.

이 외에도 중앙대 사진학과 임 모 교수가 수년간 학생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해임되거나, 학생들에게 폭언을 일삼은 경희대 미대 손 모 교수가 미대 학장직을 사퇴하는 등 예술계열 대학의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이따금씩 ‘잡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 때마다 도제 관계로 대표되는 폐쇄적인 교육 방식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예술대학의 교수 및 학생들은 도제식 교육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주장에 회의적이다. C 씨는 “실기로 배워야 하는 지식이 주를 이루는 예술 계열의 특성상 도제식 교육은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공통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한 뒤 “물의를 일으키는 교수님들보다 그렇지 않은 교수님들이 훨씬 더 많다”고 덧붙였다. 도제식 교육은 부대조건일 뿐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예술대학 구성원들은 도제식 교육 아래 ‘일부 교수’가 학생과 마찰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는 제도적 조건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엔 두 가지 지점이 있는데 우선 종합대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예술교육이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 한계를 보완하고자 예술대학 교육자와 학생들이 추가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종합대학 안의 예술교육=고등예술교육의 방법과 목적은 대학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종합대학’(university)은 주로 영미권에서 발전된 유형으로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교육’이 주를 이룬다. 종합대학에서의 예술교육은 단과대 차원에서 이뤄지며 예술 실기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교양과목이 포함된다. 이는 프랑스, 스위스의 국립고등음악원이나 독일의 쿤스트아카데미(Kunst Akademie)와 같이 교양교육을 배제한 채 실기 중심의 ‘도제 교육’으로 예술 기능인을 양성하는 유럽 국가의 고등예술교육기관들과 구별된다.

현재 한국 고등교육에서 예술대학은 고등교육법 제2조에 따라 ‘대학’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예술대학은 다른 단과대와 교육과정, 교양 수업, 학점 인정, 학위 수여, 학생 선발, 등록금 산정 등에 있어 같은 법률을 적용받으며 세부적 차이는 대통령령, 교육부령, 학칙 등으로 결정된다. 여기에 예술대학 내 학과들은 전문 예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학칙에 따라 실기 위주 교과과정을 편성한다. 박진영 교수(김포대 한류문화학부)는 “학과나 전공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순수예술 쪽은 주로 독일 등 유럽의 영향을 받아 도제식으로 교육을 하며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된 디자인 예술 등은 일 대 다수 실기 수업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예술대학이 이렇게 종합대학 내에 소속돼 있다보니 전문 예술인을 양성할 차별화된 교과과정을 구성하기 어려워졌다. 교양과목 수강, 학점 관리, 최대 이수 학점 한계 등 실기 교육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 때문이다. 정재형 교수는 “대학에서 영어 강의 같은 교양 수업이나 학점 관리 등에 신경 쓰다 보면 ‘쟁이’를 키우는 예술 교육은 결국 죽도 밥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B 씨는 “다른 교양수업과 다르게 전공 실기는 1주일 2번씩 4시간을 듣는데 총 1학점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돼 실기 시간이 많아지니 좋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학생들을 예술가로 육성하려면 다른 수업을 더 줄이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족한 수업을 채우고자=예술대학 구성원들은 부족한 실기를 채울 추가적인 수업을 강구한다. 이런 과외 수업의 방법, 장소, 비용 등은 교수가 결정한다. 성악의 경우 교수에 따라 한 번 반주를 해줄 때마다 일정 금액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미술계열에서는 방학 때 학생들이 모여 특정 분야를 전공한 교수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수업을 받기도 한다. 예술대학•학회총연합 의장 오세곤 교수(순천향대 연극무용학과)는 “제도를 따를 경우 실기 훈련을 할 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며 “결국 교수가 희생을 하거나 부모의 사교육 등으로 채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교육의 편차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종합대학내 예술교육의 한계로 일부 교수가 행하는 추가적인 수업 방식이나 문화는 학생이나 외부 사회 입장에서 볼 때 부조리한 것일 수 있다. 숙명여대 피아노전공 E 씨는 “스승의 날 음대를 가보면 학생들이 교수의 방을 예쁘게 꾸미기도 하고 돈을 모아 명품 가방을 사주기도 한다”며 “스쳐가는 말로 에어컨이 필요하다고 하면 학생들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과거 엄격한 도제식 교육을 받은 교수 중 일부는 자신의 행동이나 이상한 문화를 학생들 입장에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교육자로서 기본적인 성찰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며 “교육자와 직접 마주하는 도제식 교육이 많은 예술계에서 학생들이 입는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정작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이 수업 방식이 잘못됐다고 느끼더라도 예술계는 성적과 진로가 교수의 권한으로 결정되기 쉬운 ‘작은 사회’이기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숙명여대 작곡과 비상대책위원회는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이유는 곡을 제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도교수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서명을 받지 못한 학생은 누구라도 무조건적으로 낙제 점수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E 씨는 음대 졸업생들에게 이력서의 경력처럼 여겨지는 ‘사사’(師事) 문화를 들어 “어떤 행사를 하던 ‘나’라는 연주자를 증명하는 데 누구를 사사했는지가 이름표처럼 따라 다닌다”며 “예를 들어 졸업 연주회의 팜플렛을 보면 공연자가 누구를 사사했는지 다 적혀있다”고 설명했다.

교수마다 개별적으로 교육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학생들의 피해나 교육 방식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선 예술대학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으로 교육 제도가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 오 교수는 “학생들이 교수에게 개별적인 실기 수업을 따로 받지 않더라도 공식적인 커리큘럼으로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게끔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학생의 입장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일부 교수들의 인식 변화도 이뤄져야 한다. 이화여대 음대 F 씨는 “교수와 학생은 권한의 차이가 있기에 학생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며 “사실상 일부 문제가 있는 교수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도 “학생들은 ‘교수가 하니까, 옆에서 하니까 나도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교수의 책임을 강조했다.

3. "가야 할 길을 보여주세요"

 

우리나라의 예술대학은 수월성 교육에 입각해 개별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이런 목표 아래 길러져 사회로 배출되는 예술계열 대학 졸업생은 전문대학을 포함하면 연간 6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예술대학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 현황을 살펴보면 고등예술교육에서 추구하는 목표와는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분류 기준에 따라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2013년 12월 31일 기준)에 잡힌 26,352명의 예체능 계열 졸업생의 취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예술•스포츠 및 여가관련 서비스업 종사자는 5.1%에 불과했다. 해당 조사에서 예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도매 및 소매업(17.4%), 제조업(14.1%), 교육 서비스업(11%),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업(9.9%) 영역이 높게 나타났다.

◇취업을 바라보는 시선=예술계에서는 조사 결과를 두 가지 방법으로 해석한다. 하나는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한 취업률 조사의 한계로 창작 활동 종사자, 1인 사업자, 프리랜서 작가 등 예술계열 졸업생들이 선호하고 실제로 종사하는 취업분야가 누락됐다는 것이다. 가령 음악 분야에선 현금 수입자인 학원 강사 및 반주자, 수익과 직접 관련이 없어 미취업자로 분류되는 순수예술 종사자, 공연 실적을 증명받지 못한 가수 등 전공을 살려 경제활동을 하는 졸업생들이 많으나 데이터에 잡히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공을 살려 예술가가 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없어 드러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미대 강사 E 씨는 “미술의 경우 너무 순수미술에 집중되다보니 유명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이나 예고에 강의를 나가거나 유학을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형 교수는 ”영화 분야만 해도 다들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이 되고자 하지만 연출 등으로 나가려는 학생은 적어 비율이 불균형적이다“고 설명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든 예술대학 학생들은 사회가 변하는 점을 들어 작가 양성 위주의 기존 교육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대 A 씨는 “현대 사회에는 큐레이터나 미술 감독 등 새로운 직업이 생기거나 응용 예술 학문이 늘어나고 있는데, 전공 필수 수업은 순수학문 위주라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학생들의 의견이 많다”고 털어놨다. 음대 C 씨는 “순수예술에서는 고전음악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를 평가하는 보수적인 교육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며 “하지만 예술가가 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길을 가긴 힘들다”고 말했다.

◇대학의 반응: 격변 혹은 정체=중소 규모 예술대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요구 및 사회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령 올해 서경대는 미용예술학부를, 용인대는 뮤지컬•실용음악과를 신설했고 경성대는 연극영화학과를 두 과로 분리해 신입생을 모집한다. B 씨는 “국악과라고 전통음악만 하는 게 아니라 창작음악을 하는 수업도 있고 국악 교육이 유행할 땐 국악 교육을 다루는 수업,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하니 오디션을 변형한 커리큘럼이 생기기도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학과 통합 및 교육과정 개편 과정에서 급격한 변화는 학생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교육 당국과 학생 간의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서원대는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며 미술학과와 뷰티학과를 미술뷰티학과로 통합한다고 발표했으나 정원 감축 및 교과과정 축소로 학생과 교수가 반발하는 중이다.

반면 서울대처럼 지나치게 순수예술이나 작가 양성 위주의 교육 방식을 고수한다고 지적받은 대학도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대 조형연구소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그간 서울대 미대에서 순수예술 중심 교육에 치중했고 그 결과 졸업생들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알려줄 교육이 부족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심형근 교수(상명대 공연영상미술학부)는 “조소과를 비롯한 서울대 미대가 갖고 있는 문제점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은 커리큘럼이 20년 전과 별로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라며 “중소규모 대학에서는 산학과 연계되거나 전공과 관련되지 않은 포트폴리오, 인턴십 수업 등도 있는데 서울대는 이런 부분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사회와 연결되게끔=전공과 관련된 실기만 배운 예술대학 학생들은 졸업 후 어떤 일을 할지 막막해하며 진로를 미루고 있다. 서울대 통계 연보에 따르면 미대 졸업생의 상급학교 진학률은 2002년 이후 처음 전체학생 상급학교 진학률을 앞지른 이후 항상 더 높거나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또 조형연구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자료에서는 2009년 이후 입학한 조소과 학생들은 모두 졸업을 미룬 것으로 확인됐다. 양지연 교수(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는 “미대 졸업생들의 준비 기간이 길어진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역시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술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만큼 예술대학에서 학생과 사회를 연결할 진로교육을 고민할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 양 교수는 “미술 환경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미대 졸업생의 진로는 다변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세곤 교수는 “예술을 응용하고 다른 분야와 융합해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진로 교육이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4. 숨겨왔던 마음 소통할 기회 만들어가야
예술대학은 ‘예술’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와 이해 당사자를 포괄하고 있다. 한국의 7개 교과 분류에 따라 한국의 예술대학은 무용, 연극•영화, 미술, 음악•국악, 응용예술, 교육 등의 영역을 포함한다. 또 예술대학의 이해 당사자를 크게 학생, 교육자, 정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 주체는 예술대학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학생들은 예술대학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혼자만의 것으로 넘기지 말고 다른 학생들과 공유하며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숙명여대 E 씨는 “음대는 본인이 악기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가 중요하고 이것은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나타나다보니 점점 개인주의적으로 변하고 그래서인지 남이랑 무언가 하는 것을 꺼려하게 된다”며 “학생회 등의 활동을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예술대학의 교육자들은 학생들보다 많은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 만큼 학생들이 겪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오세곤 교수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변하고 있고 학생들이 겪는 문제들도 마찬가지다”며 “교육자는 자기 분야의 일에만 고집하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창의적 인재 부흥과 문화 융성’을 내세우는 만큼 예술계의 특성을 이해하고 예술계열 졸업생들의 직업 활동을 지원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1인 사업자나 비정규직이 많은 예술계의 특성상 건강보험이나 국세청 데이터로는 취업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다. 대학특성화사업에서도 취업률 지표를 예술대학에도 적용해 빈축을 샀다. 개인 창작활동 종사자 인정 조건도 현실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예술대학의 교육 환경을 놓고 논의할 내용은 여전히 많다. 앞으로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갈 몫은 그들에게 남아있다.

 

 그래픽: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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