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울대에서의 지난 3년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남모르는 고군분투의 시간이었다. 처음 합격의 기쁨도 잠시, 수업에서 만난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한 마디로 서울대에 어울리는 대단한 사람들인 것만 같았고, 나는 그 ‘황새’들을 따라가느라 매일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은 ‘뱁새’였다. 혹자는 나를 위로했다. 아무나 황새들 사이에 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짧은 다리로나마 어찌어찌 그들을 따라가고 있는 뱁새로서 자신감을 가지라고. 졸업학년을 앞둔 지금, 더는 지나친 열등감과 좌절감에 휩싸여 있지는 않다. (그래, 나는 한 마리의 당당한 뱁새이다.) 다만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궁금증이다. 나는 정말 뱁새였던 것인가. 때때로 황새인 순간들은 없었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 지난 시간과 노력이 그득그득 담겨있는 과제들을 다시 읽노라면 뿌듯하고 애착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 담긴 내 생각과 논리, 아이디어가 얼마나 형편없었으며 또 얼마나 진부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얼마나 의미 있었으며 또 얼마나 비판적이고 예리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역시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류의 과제들을 제출했던 수업이 20개 정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중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은 수업은 7개에 불과했다. 한 수업 당 과제가 3개씩만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자그마치 마흔 개에 달하는 보고서, 서평, ppt들이 그냥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들이 잘 태어난 것인지 잘못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 채.

물론 내가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렸다면 얼마든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새내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대학교에서는 누가 떠먹여 주지 않으니 스스로 찾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라고 해서 낸 과제에 대해서까지 피드백이 당연하지 않은 현실이, 과연 내가 안 찾아 먹었기 때문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성적 마감일 자정이 다 되어서야 올라오는 학점을 보고, 이게 시험에서 깎인 것인지, 아니면 5개의 과제들 중 2번째 과제에서 깎인 것인지 혼자 어림짐작해보는 내가, 과연 누가 떠먹여 주기만을 기다린 때문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메일을 몇 번 보내보았다. 연구실로 찾아도 가보았다. 하지만 이는 학생의 입장에서도 교수의 입장에서도,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법이 아닌가.

뱁새의 입장에서는 피드백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대체 어디가 어떻게 부족해서 이런 결과를 낳았는지 알고, 고치고, 나아지게 한다. 모든 수강생에 대하여 수십, 수백 장에 달하는 과제들을 일일이 읽고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기에는 교수님들이 너무 바쁘실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렇다면 적어도 각 과제물과 각 시험에 대한 점수라도 알려주시기를. 이유는 모를지언정 이게 A+짜리 생각인지, C-짜리 생각인지라도 알려주시기를. 그것도 어렵다면, 메일을 보냈을 때 답장 정도는 해주시기를. 비록 이 학생의 성적은 C였으나 그의 나아지고자 하는 노력과 미래의 가능성조차 C라고 생각지는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서울대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의, 황새가 되고 싶은 뱁새들을 대표해서, 부탁드린다.

오현주
자유전공학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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