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 씨의 이야기가 널리 회자되며, 각종 직업병이 예방 및 감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삼성 노동자들의 반도체 직업병이 가장 치명적인 직업병 중 하나라면, 가장 많은 직장인들이 앓고 있는 직업병은 과연 무엇일까요? 답은 근골격계 질환입니다. 근골격계 질환은 생산 현장 및 사무직 전반에서 빈발하며, 우리나라 업무상 질병자의 70%를 차지합니다. 이전까지 직무 관련 근골격계 증상 연구는 주로 장시간 좌식생활을 하는 사무직의 등허리 통증, 산업현장의 반복적 작업 형태 등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직업 및 산업 의학계에서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한 직업군 중에는 악기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유소년기에 연주를 시작하며, 손 또는 상체를 집중적으로 사용해 매우 정교하고 반복적인 동작을 지속적으로 수행합니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근골격계 질환을 일컬어 ‘연주 관련 근골격계 질환’(Playing-related musculoskeletal disease, PRMD)이라고 하며, 이는 건강 관련 습관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있는 전공 학생들에게서는 예방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됩니다. 저희는 음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주관련 근골격계 증상의 유병률을 조사하고, 전공 악기별 차이, 개인적 특성 및 연주 관련 습관 등 요인을 분석했습니다.

설문에 응한 197명 중 연주 관련 근골격계 증상 자각이 있는 대상자는 67.0%(132명)였으며 전공별로 국악전공자가 74.1%(43명), 현악전공자 68.1%(49명), 관악전공자 57.6%(34명) 순으로 국악전공자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특히 국악전공자는 관악전공자에비해 유의하게 높은 증상 자각 및 통증정도를 보이고 있어 해당 전공자를 위한 조치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습 전 스케일과 연습 중 규칙적 휴식이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국립국악원에서는 50분 연습 후 10분의 휴식을 권장하며 전공 악기별 스트레칭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편 신체 부위별로는 어깨 45.7%(90명), 목 37.6%(74명), 허리 37.1%(73명), 손목 30.5%(60명) 등의 순으로 상체의 유병률이 높았는데, 이는 연주 관련 근골격계 증상이 대부분 상체에 집중됨을 시사합니다.

근골격계 질환의 발생원인은 유전적 요인, 흡연, 음주, 운동 부족 등의 행동적 요인, BMI 등의 생리적 요인, 스트레스 및 과거 질환력 등 사회적 요인, 성별, 연령, 결혼상태 등의 인구학적 요인으로 나눠집니다. 이때 유전적 요인, 인구학적 요인 등은 고정된 조건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며 연습 시간 등의 행동적 요인 역시 조치를 취하기에는 제한적입니다.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연주를 중단하거나 줄이는것이 쉬운 것이 아니므로 대부분의 연주자는 관련 증상을 확인한 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지만 일반적인 치료 원칙이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이지요. 제한적으로나마 스트레칭, 적절한 휴식 등의 인체공학적 중재가 제안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세부 악기별 특징을 규명하고 있지 못합니다. 국내에서는 연주 관련 근골격계 증상에 대한 연구 및 음악가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인 클리닉 역시 부족합니다. 향후 국내에서도 미국과 독일, 프랑스의 음악가 치료학(Performing Arts Medicine, Musikermedizin, Medicine des Arts)과 같은 음악가 치료학의 영역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합니다.

연주자라는 다소 특수한 직업군을 대상으로 접근했지만 직무 관련 근골격계 증상은 직종을 가리지않고 발생하며 장시간 좌식생활을 하는 사무직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빈발합니다. 많은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근력운동과 바른 자세, 스트레칭은 식상하지만 최고의 예방법입니다. 이 글로 여러분이 허리를 펴고 앉았다면 기쁘겠네요. 창 밖은 가을입니다. 조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보건대학원 김은애, 손서희, 채련(이상 보건학전공), 송수연, 이영실(이상 보건관리정책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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