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한국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개인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져 소득 상위 20%가 총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에 대한 회의감을 확산시켰다. 전적으로 시장에만 의존하는 경제시스템은 사회적 불평등을 유발하고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런 여론을 수렴하고자 지난 12일(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제 발전모델 모색 - 정의로운 성장의 방향과 실현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하는 새로운 경제모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경실련 김호균 상임집행위원장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것으로 토론회를 시작했다. 그는 분배정의를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성장 중심의 경제구조를 고수하는 보수정권 사이에 마찰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화두는 부의 편중 현상을 완화하자는 ‘경제민주화’였다. 당시 보수, 진보할 것 없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철폐,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입 규제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기조를 이어가며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고착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경제적 소외계층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의 밑거름”이라며 “이 시점에서 우리 경제시스템에 필요한 경제적 정의는 기회정의로, 여기에 연대의 원칙, 재정 건전성 등을 포괄하는 지속 가능성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경실련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성장모델을 제안했다. 모델의 핵심은 정부가 정책을 통해 내수규모를 확대하고 경제성장의 이익이 특정 계층에게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증세정책 △공공부문에 대한 적극적 투자 등을 제안했다.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가계소득을 안정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또한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해 보편적 복지서비스와 공공재를 확충하면 소외계층에게도 성장의 이익을 배분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내수를 촉진해 외부에 의존하지 않아도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구 운영위원장은 “경실련의 모델은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모두 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에선 기존의 성장 중심 경제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부원장은 내수 촉진과 관련해 “거대한 외부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고 비판했다. 내수시장 규모가 작은 대한민국 경제에서는 아직까지 수출주도형 성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또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효율적인 노동정책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기업들은 비용 때문에 전체 일자리 수를 줄일 수밖에 없고 소비 수요 또한 감소한다. 배 부위원장은 “노동시장정책에서는 일자리 창출이 최상의 복지”라며 “순서적으로 볼 때 양적인 경제성장을 통한 임금 상승으로 소비를 증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토론회를 마치며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성장만능주의의 담론에서 벗어난 경제모델을 생각해보았다는 점에서 이번 토론회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은 “경제모델의 이름이 달라도 소득분배가 개선되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성장이 우리 모두가 원하는 성장”이라며 “상호진정성을 바탕으로 건강한 소통의 장이 계속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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