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화 강사
종교학과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함께 읽는 인문사회 분야의 명저들을 보면,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들에는 통용되는 상식과 학문의 기본 전제들에 대해서 되묻는 질문들이 많다. 상식과 진리라고 간주되는 것들을 다시 물을 수 있는 자유와 비판정신을 근간으로 하면서, 긴 호흡을 가지고 인간과 세계를 학문적인 ‘문제’로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학문을 발전시킨다. 이런 견지에서 나의 공부를 반성해 볼 때가 많다. 학생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생활세계와의 조우 없이 그저 기존의 이론들을 소화하는 것을 공부라고 여겼고,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과감히 밀고 나가는 용기와 배짱이 부족했다. 이런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여유를 가지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중요한 문제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남과 다를 수 있는 자유와 용기를 가지고 공부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서울대 학생들은 실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어린 시절부터 무수한 당위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입학한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도 그런 생활의 연장에서 의무감으로 공부하는 자기 절제의 달인들이다. 학생들은 한 학기에 평균 18학점의 수업을 듣는다. 몇 학생들과 인터뷰를 해 보았는데, 이 학생들은 상당히 성실하고 뛰어난 친구들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상이한 주제의 6개 과목을 동시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공부한다고 할 때, 어느 정도의 학점을 받기 위해서 과제와 시험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속한 인문학의 경우, 수업과 연관된 지적 관심사를 독서, 탐구, 글쓰기로 펼쳐가면서 그 결과물로 양질의 리포트를 한 학기에 4개 이상 쓴다면, 적어도 나는 지적으로 고갈되거나 탈진한 느낌이 들 것이다. 학문에 뜻이 있는 학생들도 수업 시간에 요구되는 것들을 충실히 하려면, 정작 자신이 정말 원하는 공부에 바칠 시간과 열정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쉽고 빨리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부정적인 의미의 ‘전략적인’ 사고가 넘쳐나게 된다.

공부를 통해서 인생과 학문에 정면승부하고, 주어진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문제를 찾게 하는 학생들을 격려해 주는 시스템이 대학에서부터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양질의 공부 컨텐츠를 제공하면서 문제거리를 풍부하게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자유롭게 두고, 학생들이 알아서 다양한 학문 영역을 조합해서 스스로의 화두를 풀어가길 유도하며,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할 것이다. 세부 전공에 갇혀서, 과중한 공부 스트레스에, 의무 방어전을 치르기에 바쁜 상황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학자가 될 미래에, 우리 학계에 필요한 기초 핵심 분야의 연구와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연구(ground-breaking research)가 나오기 힘들다.

자율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인간은 무엇이 이해할 수 없는 의무로 다가왔을 때 반감을 가지고 자기의 자율성을 늘리기 위한 방향으로 노력한다. 창조력은 자율적인 인간이 충분한 시간을 가질 때 나온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보았을 때, 할 일이 너무 많고, 시키는 것이 과중한 상태에서 학생들은 창조적이 될 여력이 없다. 이수해야 하는 총 학점 수를 줄일 수 없다면, 학생들이 하나의 수업에서 납득할 만한 양의 과제를 하며, 가능한 각자의 관심을 추구할 수 있는 양질의 과제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대학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여기에 대해서 대학 정책자, 교수자들과 학생들의 진정성 있는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학생들도,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진 주체로서 행동해 주기를 바란다. 학문의 진보가 기존 의견과 다를 수 있는 용기와 자유에서 나오듯이 삶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열심’, 그저 주류의 삶을 살기 위한 ‘열심’의 끝은 허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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