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출신 음악인 ③포크송 싱어송라이터 예스 예스

▲ 지난 7일(금) 홍대 네스트나다에서 공연 'NADA Softly..'가 열렸다. 첫번째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예스 예스는 평소답지 않은 감미로운 선곡을 선보여 가을밤의 추위를 녹였다.

사진: 까나 기자 ganaa@snu.kr

 페이스북에서 ‘촛불하나’를 부르며 버스킹 하는 외국인 음악가의 영상을 기억하는가? 이전엔 초청공연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인 음악가들이 이젠 조금씩 국내에 자리를 잡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음악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은 더 이상 묻혀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번 연재 기획은 음악분야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홍대에 유별난 외국인이 나타났다. 겉보기엔 포근한 백인 아저씨인데 기타만 잡으면 ‘방언’을 쏟아내고 괴성을 지르는 괴짜가 된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어싱. 홍대에서 그는 그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대변하는 이름인 ‘예스 예스’로 통한다. 한때 뉴욕 음악 저널 CMJ 차트 27위에 오르는 등 미국에서 이미 음악인으로서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한국에 새 둥지를 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악몽 같던 뉴욕에서의 나날들, 세계의 중심인 서울에서의 새 삶=“2012년 이후로 모든 게 미쳐갔어요. 미국에선 끔찍한 악몽과 같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1년 9월 뉴욕의 월 가를 점령했던 반자본주의 시위인 ‘오큐파이 운동’에서부터 어싱 씨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 대항한 ‘오큐파이 운동’은 후에 미국 전역은 물론 캐나다, 독일, 최근에는 홍콩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로 확산될 만큼 영향력이 큰 시위였다. 미국의 경찰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전투복을 입었다. 최루가스, 장갑차, 총으로 무장한 채 평화시위의 참가자를 진압하는 경찰의 모습은 군인에 가까웠다.

어싱 씨는 “물론 뉴욕에서의 삶은 즐거웠으며, 음악인으로서 뉴욕의 활발한 클럽문화에서 공연하는 것 또한 행복했다”며 “그러나 무장한 경찰이 무고한 사람들을 총으로 쏘는 시대가 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억압 받는 사회 속에서 극단적인 표현 방식을 택하는 예술가들도 많아졌다. 그와 함께 공연한 예술가 중에는 피를 흘리는 채로 춤을 추거나, 여성용 생리대인 탐폰을 이용한 퍼포먼스 등을 하는 극단적인 행위예술가들도 있었다.

두려움과 압박감이 내면화된 사회 속에서 어싱 씨는 문득 ‘이 모든 게 상처만 입은 채로 끝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건강하고 따뜻한 음악을 할 수 있는 곳을 모색하다 이 곳 서울에 발을 디디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서울은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매력적이고 많은 가능성과 기회가 열려있는 도시”라며 “훌륭한 예술가가 이미 많을 뿐더러 다른 나라의 예술가도 이 곳에 오기를 희망하고 있으니 ‘세계의 중심’이 아닌가”라고 자신만의 서울 예찬론을 펼쳤다.

◇독특한 영혼이 빚어낸 ‘새로운’ 음악=통기타를 친다고 해서 예스 예스의 음악을 일반적인 ‘포크 음악’으로 한정 짓는 건 무리다. 감미롭게 속삭이다가도 휘파람을 불고 갑자기 괴성을 지르다가도, 속사포처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의 노래엔 다채로운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음악적 형식에 대해 어싱 씨는 “내 영혼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 답한다. 그의 음악에서는 가스펠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한국식 만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에게 음악이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열정과 갈망을 담아 특정한 형상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며 “내 영혼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출구”이다.

예스 예스의 음악은 형식과 더불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독특하다. 대학시절 그는 자신의 전공을 음악에서 불교학으로 바꿨고 이 두 전공에서 배운 것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 그의 음악적 자양분으로 재탄생했다. 예스 예스의 대표곡 ‘Moksha’는 ‘해탈’을 뜻하는 인도의 불교용어다. 어싱 씨는 “‘삼사라’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우리네 인생의 싸이클을 말한다”며 “Moksha는 이 삼사라로부터 해방된 무한하고 영원한, 모든 것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열반의 상태”라고 곡을 설명했다. 실제 8분 30초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노래 Moksha는 상승부와 하강부가 꼬리를 물 듯 이어지며 마치 하나의 사이클을 순환하는 느낌을 준다. 그가 목청을 다해 소리를 지르는 곡의 클라이막스에서는, 곡의 굴레를 박차고 나온 듯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예스 예스의 또 다른 대표곡인 ‘The Machine (can’t take my Mind)’은 교육 시스템에 길들여져 사랑하는 법도,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법도 잃어버린 젊은 세대들에 대한 비유다. 어싱 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젊은이들이 시스템에 순응하게끔, 그래서 기득권들에게 이용되게끔 길러지고 있다”며 “시스템에 안주하는 삶은 편할지는 몰라도 그 결과 우리가 마주하게 된 (전투경찰이 시민을 지배하는 뉴욕의) 현실은 결코 삶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일침했다.

예스 예스가 뮤지션으로서 하고 싶은 일은 이처럼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과 맞닿아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미국의 뉴스 공유 커뮤니티 ‘레딧’, ‘RSS’ 등을 만든 인터넷 활동가이자 천재 해커인 ‘애런 슈워츠’를 꼽았다. 미국에서 SOPA(Stop Online Piracy Act, 온라인저작권침해금지법)가 시행되기 전에 25세의 애런 슈워츠는 이를 인터넷 검열법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법안에 강하게 저항했다. 그 다음 해에 애런은 학술 논문을 불법적으로 해킹해 다운로드한 것 때문에 3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결국 26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싱 씨는 “애런은 인터넷을 통해서 모두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사람”이라며 “사회가 그런 ‘천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분노했다. “저는 그런 ‘천재들’이 죽지 않고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당신은 외롭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라는 것. 예스 예스는 행동하는 ‘천재들’에게 음악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왜냐하면 ‘천재들’의 하루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의 바람이 음악에 반영됐기 때문일까.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평소보다도 훨씬 열정적이고 따뜻해 보인다. ‘마지막 공연은 늘 나의 최고의 무대’라고 말하는 마이클 어싱. 매번 ‘최고의 무대’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예스 예스의 무대는 이곳 서울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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