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형진 교수
원자핵공학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고속철도, 대형 여객선, 점보 비행기, 원자력발전소, 인공위성 등 21세기 공학기술의 이기들이 주는 풍요로움과 편안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가끔씩 이들이 중력이나 마찰력, 높은 온도와 압력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 새삼 놀랍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해 이들이 생명과 환경을 위협하게 되면, 놀라움은 한 순간에 근심과 두려움, 불신으로 바뀝니다.
 지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미야기현 센다이 동쪽 130km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하고, 41분 후 높이 4m의 쓰나미 1파가, 그리고 8분 뒤인 오후 3시 35분 높이가 15m에 달하는 쓰나미가 원전 부지를 덮친 이후 약 한 달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방사능 오염의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지진 직후 후쿠시마 제1원전의 6개 원자로 중에서 가동 중이었던 1, 2, 3호기는 모두 자동 정지됐습니다. 그러나 송전탑의 파손으로 외부 전력이 끊어진 상태에서, 이 경우를 대비한 비상디젤발전기들은 밀어 닥친 쓰나미에 6호기의 1대를 제외한 12대가 수몰되거나 관련 기기가 침수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고지대에 위치한 공기냉각 방식의 6호기 디젤발전기의 전기공급으로 5, 6호기는 안전하게 원자로 냉각을 수행한 반면, 전원공급이 상실된 1~4호기는 원자로 혹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의 방사능 물질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지 못하면 핵연료가 녹고 손상된 방사선  차폐시설의 외부로 방사선이 누출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습니다.
이렇게 전원공급이 상실된 상황을 대비하여 배터리 방식의 비상 원자로심 냉각 시스템으로 1호기에는 비상복수기가 2, 3호기에는 원자로격리시냉각계가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작동된 비상복수기와 원자로격리시냉각계의 배터리가 소진되면서 이들 원자로는 차례로 냉각기능을 잃게 됩니다. 이후 현장에서는 원자로 건물 안의 시간당 방사선량이 긴급작업자의 연간 허용선량에 맞먹는 상황에서 결사대를 구성하여 격납용기의 압력을 낮추기 위한 가스빼기 작업과 1, 3, 4호기로 이어지는 수소폭발과 여진 속에서 소방호스로 원자로에 해수를 주입하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향후 제1원전은 막대한 예산으로 10년 이상의 제염과 해체 과정을 밟을 것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다시 한 번 원자력 안전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안전문화란 개인이나 조직 모두가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속에 내재한 위험을 평가하고 관리하려는 자세를 말합니다. 안전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악화과정도, 이후 국내 원전의 사고 은폐, 납품비리,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도 질이 낮은 안전문화가 원인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3년 여가 지났지만 국내 원전에 대한 방사선 공포감과 원전 계속 운전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높습니다. 다른 거대 공학기술이 그러하듯이 원자력기술은 혁명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전된다고 믿습니다. 원자력계는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 2호기 핵연료 용융사고,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4호기 폭발사고 등 과거에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그 원인을 분석하여 안전성을 크게 향상시켜 왔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에서는 모든 원전에 대한 안전점검이 실시되었고 2015년 말까지 약 1조 1천억 원의 예산으로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후쿠시마 후속대책이 완료될 예정입니다. 안전문화의 증진과 진화하는 원자력 안전기술은 보다 안전한 원전의 설계, 설비 개선, 운전으로 이어져 국가 에너지 안보의 확보와 함께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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