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연장투표로 연명하는 총학선거
막연한 당위성이 참여를 유도하지만
학생사회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필요해
모두가 시대정신을 구체화해 나가야

11월 중 학내에서 투표를 할 때가 되면 대개 날이 쌀쌀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주도 마찬가지였다. 인문대 수업을 듣기 위해 바쁘게 걸어가다가 5동 근처에 있는 투표소를 지나갔다. 2명이 그 투표소를 지키고 있었다. 한 명은 의자에 앉아서 투표용지와 명부를 관리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일어나서 행인들에게 현재까지의 투표율을 알리며, 투표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있었고, 그들의 책상 위에는 핫팩 여러 장이 투명한 봉지에 담겨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 풍경을 지켜보며 날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 이 칼럼의 소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득 아까 투표소를 지키던 그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취재부장에게 투표 상황을 물어봤다. 정규투표기간 마지막 날인 20일 기준 총학 선거의 투표율은 36.5%라고 했다. 다음 주에 연장투표가 시행될 예정이며, 성사 여부는 간당간당하다고 했다. 2011년, 2012년, 2013년 정규투표기간 마지막 날의 투표율은 모두 20%대 후반이었다. 이경환 씨의 제적 사건을 고려할 때, 「디테일」은 꽤 선전하고 있다. 일부 단과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단과대도 연장투표를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꽤 오래전부터 11월 선거에서 연장투표는 당연한 듯 시행되고 있다. 찾아보니 2010년 기사에 ‘이로써 총학선거는 지난 1998년부터 13년째 정규투표기간에 성사되지 못하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2014년이니 총학선거는 17년째 정규투표기간에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과대 선거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정도 현상은 학생사회의 위기로 느껴지지도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선거가 아예 무산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학생회 선거에 학생들이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진부한 진술일 뿐이다.
 물론 투표에 참여하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출마한 선본의 공약을 대략적으로 살피고, 그들의 발언에 귀 기울이며, 선거 상황에 관심을 갖는 이는 소수다. 지켜보는 이 없는 선본 발족식, 조촐한 분위기의 선거 정책간담회 현장이 그것을 증명한다, 주변에서 그나마 투표를 한 대부분은 ‘그래도 총학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당위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구체적인 이유에서 학생회가 필요하다고 느끼며 투표에 참여하는 이는 별로 없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상황의 원인을 학생들 각각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학생을 관통하는 문제의식과 필요가 수면에 떠오르지 않고 희미하게 있는 지금, 공동체로서의 학생사회는 존재감 없이 투명하다. 학생사회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지 실감나지 않는 상황에서 선거에 열심히 참여하고자 할 의욕을 느끼기란 대단히 어렵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절실한 시대에서 희미한 무언가에 관심을 갖길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과 필요, 이른바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그것이 희미하게 떠돌고 있으며, 언표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믿고 있다. 흔히 ‘운동권’과 ‘비권’으로 도식화되는, 학생사회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선본을 내고 있는 주체들도 그것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학생사회의 부활을 염원하는 이들은 그런 지점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디테일」도 당선이 된다면 주된 공약인 개별적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복지를 넘어, 다수 학생을 관통하는 그런 지점에 대해 고민해보길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반성해야 한다. 이런 공허한 칼럼을 쓰는 나도 한 학기 동안 편집장 직을 맡으면서 그런 시대정신을 구체화 하는 데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위에 열거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에는 나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신문』은 다음 학기에도 발행이 된다. 다소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다음 학기 기자들을 믿기로 했다. 그들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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