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가면들의 병기창: 발터 벤야민의 문제의식

▲ 가면들의 병기창
문광훈 저ㅣ한길사
ㅣ1,103쪽ㅣ3만 5천원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하나의 이론으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때론 상충되기까지 하는 파편적 논변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벤야민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는 쉽게 이뤄지지 못했고 부분적인 해석이 주를 이뤄왔다.

이런 상황에서 문광훈 교수(충북대 독어독문학과)는 벤야민에 대한 6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끝에 『가면들의 병기창-발터 벤야민의 문제의식』을 집필했다. 이 책은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 대한 벤야민의 글을 모아 정리하고 그의 문제의식이 가진 특징을 분석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벤야민은 우리가 현실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진 삶의 모든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사유는 모든 주류적 인식은 물론이고 전형적인 반대인식까지 의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형성한다. 즉, 주류적 인식과 이를 반대하는 전형적 문제의식 모두에 대한 맹종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거부는 문제에 대해 매 순간 즉각적으로 사유하는 파편적 각성을 통해 이뤄진다. 다시 말해, 지배적인 기존 담론들이 첨예한 반성 없이 무의미하게 역사를 이어가려 할 때 현실에 대한 매 순간의 손쉬운 순응을 거부해야만 문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벤야민이 당대의 문제에 대해 불편한 직관을 쌓으려 했고, 결국 불규칙하고 다층적인 논의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벤야민의 파편적인 논변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의 방대하고 개별적인 저술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사유방식을 역사, 정치경제, 예술 등으로 분류해 저서를 구성했다. 그 중 정치경제에 대한 부분을 살피자면, 벤야민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움’이란 실상 이미 존재했던 것을 살짝 바꾼 복제품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상품에 광고가 둘러지고 가짜 의미가 부여되면서 이미 있어왔던 욕망은 새로워 보이는 상품으로 포장된다. 현대인은 이미 제한된 선택지에 갇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품의 허상 속에 산다. 이에 더해 벤야민은 근대 사회가 이전 시대와 달리 억압을 숨길 줄 알며 부조리한 현 상황을 새로운 삶의 양식이라 속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에 대한 벤야민의 사유도 이와 비슷하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예술작품조차 복제 가능한 소비품으로 변하지만, 이 또한 삶의 양식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벤야민은 예술이 알레고리*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세계가 완전무결하다는 환상을 깨고 동시대의 주류적 질서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상투적으로 반복돼온 지배적 관념이 인식되면서 비로소 새로운 삶의 양식이 상상될 수 있는 것이다.

‘가면들의 병기창’이란 제목도 이를 보여준다. 작가의 분신으로 수없이 다양한 진실을 보여주기에 예술은 ‘가면’이라 비유되며 기존 담론의 허상을 전복시킬 ‘무기’가 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벤야민의 사유공간은 세상과 대결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무기를 벼르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벤야민의 사유는 끊임없이 기존에 대해 반성하는 인식을 도출하고자 논리의 비약도 서슴지 않았다. 다만 이런 비약이 또 다른 질문과 현실인식을 야기하고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저항을 낳는다면 그로써 벤야민이 추구해온 문제의식의 목표가 실현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저자는 “제대로 된 벤야민 읽기는 전적으로 새롭고도 신선한 해석 속에서 또 하나의 벤야민을 창출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저서를 통해 여러 문제들의 대립점이 새로운 논의로 승화되며 현 세태를 직시할 제2의 한국적 벤야민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알레고리: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 대표적인 예로 '이솝 우화'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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