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초, 김인혜 전 교수의 학생 폭행 사건이 익명의 투서로 인해 드러나면서 대학 내 학생 인권 이슈가 불거졌다. 그리고 이듬해 6월, 서울대 인권센터는 학내인권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세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인권 기구를 만들겠다”는 인권센터장의 자신감에 찬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2년에 4개월이 지난 후,『대학신문』1면에는 피해자를 향한 안타까움과 가해자를 겨냥한 분노가 뒤엉킨 성추행 논란 기사가 실리게 된다.

강 모 교수는 해당 학계에서 학문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넓지 않은 학계에서 강 교수에게 밉보이면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수직적 관계의 아래쪽에 위치한 학생들은 성희롱을 비롯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문제와는 달리 1면의 기사는 본질을 잡아내지 못한 채 두리번거리고 있다.『대학신문』은 반복되는 교수-학생 간 일방적 폭력의 책임을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진행중이다’, ‘경과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의례적인 거리두기가 계속되며 누구도 사건에 대해 책임감 있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번 호는 너무 무딘 시각을 드러냈다.

아쉬운 부분은 또 있다. 기사에서는 ‘조사심의위원회’, ‘사실 확인과 처분에 대한 판단’ 등 인권센터의 조사 기능이 지나치게 부각돼, 인권센터의 설치 목적을 인권 침해 사건 해결로 좁게 해석하는 인상을 준다. 곧 밝혀질 것이지만 강 교수가 직장을 옮겨가며 10년도 넘게 학생들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저질렀다는 증언도 있다.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진 데는 교수의 개인적 일탈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물론 인권센터는 현재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고 학내 인권 환경의 점진적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당장 학내에서 본인에게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권센터의 존재를 아직 알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이런 인권센터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이를 위한 본부의 적합한 지원에 대한 질문은 이번 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거듭된 사태를 지켜보는 학내 구성원으로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은, 인권센터의 역할을 방해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대학원생 인권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당시, 서울대 인권센터와『대학신문』의 대학원생 인권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해 한 보직교수는 “표본 선택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또 당시 부총장이 전체 교수진에게 메일 상에서 “실태 조사 발표는 업무상 미숙이었다”는 사과를 하기도 했다.

강 교수가 10년이 넘도록 대담하게 끔찍한 일을 자행할 수 있었던 데는 위처럼 적극적 보호를 위한 조사 결과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일부 구성원들의 입김이 학내의 공동체적 신뢰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비단 강 교수만의 일이 아니다. 아직 제보를 하지 못한 수많은 피해자들보다 가해자들이 더 당당한 현실 앞에서 『대학신문』은 서울대 사회의 신뢰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구성원 간의 상처가 깊은 가운데,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책임감 있는 태도를 요구하는 일은 오롯이 학내언론의 몫이다. 학내 독자로서 학내 구성원 모두가 건강한 서울대 인권 토양을 위한 조건 없는 노력에 공감하는 그날까지『대학신문』에 성역 없는 시대정신을 요구하는 바이다.

양호민
원자핵공학과·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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