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서울대의 일본연구, 한국의 일본연구 - 역사와 비전

▲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일본에 관한 학술적 연구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설립된 서울대 일본연구소가 올해 개소 1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일본연구소는 지난 17일 일본 문화체험행사를 시작으로 21일까지 5일간 개소 10주년 기념주간 기획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의 일환으로 개소일인 지난 19일 「서울대의 일본연구, 한국의 일본연구」라는 주제로 일본연구소에서 특별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에선 서울대와 한국에서 진행되는 일본연구의 현황과 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논의됐다. 심포지엄에 참가한 패널들은 현재 일본연구의 문제점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했다.

고립된 한국의 일본연구, 누가 상상력을 죽였나

먼저 패널로 참가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한국의 일본연구는 고립된 섬”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일본연구는 다른 학문과의 교류가 없을 뿐더러 일본을 비롯한 해외 학계와도 소통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 논의는 다른 학문과의 교류가 결여됐다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졌다. 권숙인 교수(인류학과)는 “다른 단과대에선 일본연구소의 성과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서울대 내부에서도 일본연구소가 ‘섬’임을 지적했다. 소위 일본에 대한 연구는 일본연구소에서 도맡아 진행해왔기에 다른 단과대와의 교류가 부족해진 탓이다. 단과대는 단과대대로, 연구소는 연구소대로 각자의 성과를 올리는 데 집중한 나머지 횡적인 교류가 부족해진 것도 문제다. 일본연구에서 학문 간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 일본학 연계전공을 개설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의 입지가 애매해진다는 이유로 취소된 바 있다.

세종연구소 진창수 연구실장은 “전문화되고 다양화된 일본연구가 오히려 의사소통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연구자가 본인의 전문영역만 파고들기 때문에 학문의 폭넓은 이해와 교류가 저해됐다는 것이다. 이는 학문 간 단절로 인한 결과로, 이에 대해 장인성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일본학 연구자들이 전문화돼 있으면서도 자신이 일본연구를 왜 하는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즉 일본연구도 분명 ‘일본’이라는 대상이 있긴 하지만 이를 연구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선 그 층위를 넘어선 시야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진 논의에서 두 번째 문제점으로 제시된 것은 한국에서의 일본연구가 한국적 시각이 아닌 서구와 일본의 시각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냉전이 활발하던 1980년대까진 반공을 위한 잠재적인 동맹으로 일본을 바라봤고 이에는 반공을 이끄는 서구 세력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을 수밖에 없었다. 또 1980년대 이후에는 서구에서 공부한 한국 학자들이 일본연구를 시작하며 일본을 바라보는 서구적 시각이 한국에 유입됐다.

하지만 서구로부터의 일본연구 역수입은 지나친 서구 중심적 시각과 제도·구조 등 현상적인 점에만 치중하는 서구적 방법론을 들여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그 반작용으로 일본에서의 일본연구를 직수입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역시 서구로부터 정통 일본학을 지키겠다는 변명만 있을 뿐 일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전과 다를 바 없었고, 국내 학계에 일본 우월주의 분위기를 가져와 문제가 됐다. 문옥표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는 “(일본을 보는) 서구의 현상적인 시각을 넘어설 수 있는 경험과 동아시아라는 위치가 한국에겐 있다”며 한국적인 일본연구의 역량을 강조했다. 서구식과 일본식이 아닌, ‘한국식’으로 일본을 보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보는 한국적 시각 속에도 문제가 남아있다. 식민지배에서 비롯한 역사문제가 일본을 해석하는 폭넓은 상상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김영작 명예교수(국민대 국제학부)는 “(한국의 일본연구는) 식민지배 후 한일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그 경향은 우경화 노선을 걷는 아베 정권 등장 이후 심화됐다고 말했다. 아직 청산되지는 못했지만 ‘식민지배가 우리에게 무엇이냐’는 시선에 일본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시도가 매몰돼서는 안된다. 특히 일본연구의 내용과 결과를 식민지배의 악, 민족저항의 선, 둘 중 하나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걸림돌이 된다. 이를 두고 박규태 교수(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열등감과 우월감이 섞여 있는, 열린 상상력을 가로막는 일종의 콤플렉스”라고 진단했다.

'객관적'인 배와 해류 만들어 고립 벗어나야

일본을 보는 한국적 시각을 마련하면서도 민족주의적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한국의 일본연구가 섬에 갇혀 있다면 패널이 내놓은 답은 ‘객관화·상대화의 배’다. 이분법적 사고라는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선 식민지배 역사연구를 포함한 일본연구의 학문적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함은 자명하다. 주관이 개입하기 쉬운 문제를 상대화하는 과정, 즉 특수성과 보편성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도 문제다. 일례로 위안부 문제를 한국에만 특수한 것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제국주의 전쟁에 흔히 존재하는 것으로 볼지의 문제가 있다. 위안부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의 일본연구는 한국과 일본 양자적인 관계의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보편성의 시각도 가질 때 객관화·상대화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박규태 교수는 이런 객관화·상대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반면교사로서 아베 정권의 예를 들었다. 그는 역사를 왜곡하는 아베 정권의 출현이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의식적·무의식적 노력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다른 입장을 고려하는 상상력을 애써 억제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일본연구에도 편견에 의해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세태가 존재함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는 데 객관화·상대화는 유용할 것이다.

이렇게 논의된 문제만 해결해서는 한국의 일본연구가 고립을 벗어나긴 어렵다. 한영혜 교수(국제대학원)는 “한국의 일본연구가 섬이긴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논문을 양산하고 있기에 문제는 자연스레 탈피될 것”이라 말하기도 하며 객관화·상대화의 배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는 본질적으로 시류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객관화·상대화의 ‘해류’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국의 일본연구에 개선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진행되기에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구자들이 많은 논문을 양산하고 있음에도 신문의 논점은 90년대와 지금이 다르지 않게 된 이유기도 하다.

이에 대해 진창수 연구실장은 지금의 일본 연구자들이 대학 시스템 속에서 논문을 양산하다보니 연구와 의사소통능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해, 결국 일본연구에서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는 영향력이 없다고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전문가들은 답을 알고 있지만 이를 대중에 설명하기 힘들다”며 “일본연구소가 대중과 소통하는 채널을 열어 사회에 대한 발신을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일본연구소는 이날의 심포지엄이 남긴 많은 숙제를 해결해, 한국의 일본연구를 고립된 섬이 아닌 활발한 교류의 섬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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