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현대차, 기아차 불법파견 쟁점으로 돌아본 파견노동의 실태와 법 제도

최근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정규직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것만 해도 한국수력원자력, 삼성전자서비스, 포스코 등 20여 개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월 18일과 19일 현대자동차(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모든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며 “근로자보호법에 따라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9월 25일엔 기아자동차(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로 정규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파견노동 채용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청, 파견, 불법파견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판결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도급계약(하청계약)과 파견계약을 구분해야 한다. 도급계약은 제품이나 콘텐츠를 생산해달라는 것과 같이 일의 완성을 위탁하는 계약이다. 일을 위탁한 쪽을 원청, 위탁 받은 쪽을 하청업체라 한다. 하청업체는 위탁 받은 일을 스스로 수행할 수도 있고, 노동자를 고용해 수행할 수도 있다. 위탁 받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모든 의사결정 권한은 하청업체에게 있으므로 원청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명령을 내릴 수 없다. 직접 업무명령을 내리면 위장도급으로 판례는 이를 사실상의 파견으로 본다.

파견계약은 다른 사업장에 노동자 파견을 요청하는 계약이다. 노동자 파견을 요청한 사용자는 파견된 노동자와 어떤 계약관계도 맺지 않지만 직접 업무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도급계약과 다르다. 파견계약은 직접고용 없이 외부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예외적인 형태로 도급계약과 달리 기간과 업종에 제한을 두고 있다. 파견계약 허용 업종은 번역, 경비, 배달 등 32개 업종으로 한정되며 제조업 직접생산라인은 허용업종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계약 후 2년이 지나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파견법)’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파견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

현대차, 기아차와 각 사내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계약은 형식적으로는 도급계약이었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소속임에도 원청의 업무지시와 감독을 받고 사실상 파견노동자로 일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사측은 2년 이상 같은 하청노동자를 파견노동자로 사용하면서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견법을 위반한 것이고 노동자를 불법파견 한 것이 된다.

 

판결의 쟁점은?

결국 이번 판결의 쟁점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실상 파견노동자라고 볼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법원이 사내하청과 파견을 구분한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지휘명령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였다. 법원은 경영전략이나 작업방식, 근로시간 및 조건 등을 전부 현대차가 담당했다고 봤다. 따라서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한 것은 현대차라고 결론 내렸다.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일일 출근·결근·휴가·병가 인원수를 비롯한 근태상황 및 인원현황을 파악해 기록해 온 문서는 그 증거가 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현대차는 자동차 제조업무의 일부를 하청업체에 위탁했는데 실제 하청업체는 전달자 역할만 담당했다”며 “현대차는 모든 의사결정을 지휘했고, 하청업체가 독립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업무의 전문성 역시 파견 여부를 가리는 법원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청은 원청이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업무를 위탁하는 형태다. 다시 말해 원청 소속 노동자도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업무라면 하청을 둘 정당한 이유가 없다. 법원은 현대기아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는 곧바로 생산과정에 투입될 수 있을 정도의 단순반복 업무를 담당했다고 판단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송영섭 변호사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차 소속 노동자들과 주야교대로 근무했을 정도로 업무가 밀접히 연동돼있었다”며 “하청노동자들이 담당한 일은 현대차가 위탁해야 할 만큼 전문적인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법원은 원청의 지휘감독과 하청업무의 단순성을 고려할 때 컨베이어 시스템을 이용한 공정 및 물류, 출하 등 사실상의 모든 자동차 제조공정에서 불법파견이 행해졌다고 봤다.

그러나 사측의 입장은 다르다. 사측은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지휘명령권을 행사하지 않았거나 하청업체가 자체적으로 충분한 전문성을 갖춘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개인별로 근무 환경이 달라 업무의 전문성이나 지휘명령권 행사도 상황에 맞춰 각각 다르게 판단해야 하는데 모든 노동자가 동일한 근무 환경에 있었다고 보고 전 공정 하청노동자를 불법파견으로 판단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예컨대 자동차 바퀴를 만들었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봉급, 근무시간, 경영전략은 하청업체가 전적으로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현대차가 개입하지 않은 제작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하청업체에 시정해달라고 요구한 것까지 파견노동자에게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고 본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청업무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됐다. 바퀴제작 기술은 하청업체만의 독자적 기술로 해당업체는 현대차가 스스로 수행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했다는 것이다. 경총은 “현대차는 제작 과정이나 기술을 전혀 모르고 업체에서 바퀴를 만들어 오면 보관하는 역할만 담당했다”고 말했다.

 

불법파견, 해법은 어디에

사측은 이번 판결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파견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에 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은 파견 기간이나 업종에 제한이 없다. 일부 제조업에 대해 파견노동을 금지했던 독일도 2002년 규제를 폐지했다. 경영계는 파견 관련 규제가 외국에 비해 엄격한 상황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까지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비용부담이 늘어나 가격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 시 기업이 연간 5조 4169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법원이 공장 내 모든 공정과 2·3차 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들까지 전부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하자 “사실상 사내하청 제도자체를 금지한 것”이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파견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되 파견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행법 상 제조업 직접생산라인은 파견노동이 불가능하다. 파견계약이 가능하더라도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해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다. 반면 하청은 제한도 적고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때에 비해 비용도 덜 든다. 권혁 교수(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정규직 근로자의 혜택을 10이라고 했을 때 하청노동자는 6정도 받고, 파견노동자는 8정도 받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계약의 실질적인 내용이 파견일지라도 하청의 형태로 노동자를 사용할 유인이 존재한다. 이는 엄연한 불법파견이지만 정부는 적벌이나 처벌에 미온적이다. 지난해 2월 대법원은 한국GM 창원공장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지만 정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리고 GM이 불법파견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은폐하고 난 뒤에야 감독에 나서 불법파견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제도의 허점으로 파견노동자는 사각지대에 내몰렸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51개의 원청업체 관리자 중 40%가 “유해위험 작업이기 때문에 하청을 준다”고 답했다. 원청 소속 노동자보다 더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셈이지만 원청의 관리와 지원은 상당히 느슨하다.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 임채웅 지부장은 “정규직 노동자의 안전화는 8만 원인데 비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안전화는 3만 원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하청노동자들은 노동권도 보호받기 어렵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언제든지 사측이 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 노동조합 활동이 어렵고 사실상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권 교수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선 “하청노동을 파견노동의 지위로 끌어올리고 파견노동자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듀얼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해 수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하청과 파견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사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와중에 사태가 어떻게 해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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