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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올림픽이 폐막된지도 수일이 지났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그럴듯한 격언도 있지만, 굳이 수험생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올림픽 기간 내내 바삐 할 일도 제쳐 놓았다가 곤혹을 치른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한 곤혹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교훈을 주는 명승부가 있었다. 바로 덴마크와의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다.

 

 

“4년마다 단 한 번, 올림픽 기간에만 인기 종목이 된다”는 여자 핸드볼 팀 감독과 선수들의 울먹이는 인터뷰는 사람들에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와 함께 편향된 애정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비인기 종목이 비단 핸드볼뿐만은 아니지만, 유달리 그들의 울분섞인 인터뷰가 절실하게 와 닿는 이유는 핸드볼 선수들이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 아래 겪어야 하는 현실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이 기막히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기형적 자본주의에 위협받는 순수 학문과 농업의 현실

비인기 분야에 대한 관심과 소박한 애정이 절실

 

가깝게 우리의 대학 생활을 살펴보자. 진리 탐구의 장이 되어야 할 대학에서 순수 학문이 처한 현실은 한없이 위태롭기만 하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아예 고유 명사가 되다시피 했고, ‘이공계 기피 현상’도 이제는 당연한 분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형적인 한국형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신의 출세를 위한 고시 패스나 의대 편입과 같은, 소위 인기 학과, 인기 학문에 대한 과열된 집중 현상은 비인기 학과, 비인기 학문으로 구분지어져 버린 타 학문들의 고사(枯死)를 조장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장 위주 근대화 정책을 거치며, 공업에 대한 집중 육성은 상대적으로 농업의 희생을 강요해 왔다. 그것도 모자라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FTA 협상이나 DDA(Doha Development Agenda : 도하 개발 아젠다) 협상에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라는 논리 하에 농업 자체에 대한 포기를 강요하고 있다. 굳이 국내 핸드볼의 상황을 빌려 표현하자면 ‘비인기’ 산업의 서러움을 톡톡히 맛보고 있는 것이다.

 

 

핸드볼 등 비인기 종목의 운동선수들이 바라는 것은 한결같다. 수억원대의 연봉을 자랑하는 축구, 야구 등의 선수들이 받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고사하고서라도, 그저 국민들의 사소한 관심이 그들이 원하는 전부이다.

 

 

‘비인기’ 학문 및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에 학문적으로 대응할 연구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사학계의 호소나, 농업이 망하면 장기적으로 국가 정체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농업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질 포용력이 필요하다.

 

 

희망적인 것은 예전처럼 금메달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등 지상주의’가 많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은, 동메달도 값진 메달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비인기 종목이 갖는 설움을 공감해 줄 정도로, 경직되어 있던 한국 사회에 여유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여유가 올림픽으로 들뜬 스포츠 분야뿐만 아니라 학문 및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인기’, ‘비인기’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떠난 균형적인 발전과 다양성의 인정이 사회의 내실을 더욱 충실하게 할 것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출발은 ‘비인기’ 분야에 대한 관심과 소박한 애정으로부터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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