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대학신문』은 금융경제연구원 원장실에서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미나가 열리기 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대학신문』은 립튼 부총재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의 경제처방과 소득불평등에 대한 IMF의 기조 변화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 립튼 부총재로부터 한국의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도 들을 수 있었다.

▲ 사진: 김희엽 기자 hyukim416@snu.kr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때 강력한 구조조정을 동반한 IMF의 처방은 한국경제의 기반을 변화시켰다. 과거 IMF의 처방과 현재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
=1997년 IMF의 경제처방은 한국 경제 기반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한국은 몇 가지 큰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자산의 4배에서 8배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었으며, 은행들은 돌려받지도 못할 돈을 빌려주곤 했다. 그 결과 한국의 은행들은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신용을 잃었다. 1997년 12월에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적인 사업을 실시했는데, 이는 재벌과 은행의 유착관계를 약화시키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시켰다. 그 결과 한국은 국제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했으며 현재의 ‘새로운 한국’이 됐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실시한 노동유연화 정책은 비정규직 양산을 초래했다. 지금 한국 정부는 여전히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규직 해고 완화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노동 안정성과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노동유연화 정책이 적절하다고 보는가?
=한국 노동 관련 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을 주기는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IMF에서 발표될 관련 보고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노동유연화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시장 경제에서 기업과 노동자 각각이 중요한 역할을 갖는 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국내 기업들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과도 경쟁을 해야 하며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도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 한편 노동자들은 고용 조건이 나아지기 위해 적절한 노동 유연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노동 유연화 정책의 적절성은 각 사회와 나라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판단하기에는 어렵다.

◇세미나 주제에서도 나타나듯 최근 IMF는 재정정책을 통한 소득불균형 해소를 주장한다. 또 소득불평등 해소가 오히려 경제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과거 IMF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점이다. IMF가 소득불평등에 집중하게 만든 세계 경제의 변화는 무엇이었나?
=많은 연구를 통해 생각이 바뀌게 됐다. 지난 40년간 IMF는 소득불균형에 대해 ‘새는 양동이’라고 불리는 비유에 기반해 연구를 진행했었다. ‘새는 양동이’는 부자로부터 세금을 걷어 저소득층에 분배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해 결국에는 전체적인 경제에 해악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후에 수년간 다양한 국가의 상황을 연구한 결과 소득불균형은 경제 성장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동안 소득불평등은 경제 성장을 위해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여겨졌지만 새로운 연구를 통해 소득불평등 해결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 역시 소득불평등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다. 최근 강조하는 IMF의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한 조치들이 한국 경제 상황에도 적용이 되는가? 한국 경제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특별히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세계 평균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소득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더 큰 문제가 되기 전에 사회 안전망 확보 등을 통해 미리 대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교육 시스템 같은 사회 안전망은 잘 구비돼있는 편이지만 소득분배 구조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해봤을 때 한참 부족한 실정이다. 또 한국은 일자리에 있어서 남녀 불평등이 심각한 편이다. 한국의 여성 사회 참여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이며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많은 한국 학생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서울대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갈수록 더 치열한 경쟁 상황으로 학생들이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학생들 혹은 서울대생에게 조언을 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라. 농담이다. 다만 멕시코, 페루 등의 라틴아메리카에 가서 대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도 똑같은 고민을 하더라. 15년 전까지만 해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해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실제로 세계는 점점 경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은 이제 라틴아메리카, 중국, 동남아와 경쟁해야 한다. 언젠가는 에티오피아, 케냐와도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업 고용자는 더 이상 성적이 좋거나 똑똑한 사람만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는 창의적인 일을 창출해 낼 수 있고 그들의 지식을 수익으로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래서 지금 학생들에게는 공부만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을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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