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진

언어학과·14

만물이 소생하는 봄, 만물이 성숙하는 여름, 그리고 만물이 결실을 맺는 가을을 지나 어느새 만물에 종언을 고하는 겨울입니다. 깨끗한 얼음을 덮고 그 위에 새하얀 눈으로 고명을 얹은 자하연을 볼 때마다, 그리고 가슴 속까지 스며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로 숨을 쉴 때마다 겨울이 이만큼 가깝게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느새, 이 냉랭한 겨울에게마저 종언을 고하는 시기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제 곧 자하연의 눈과 얼음은 녹고 공기는 다시 훈훈해 지겠지요. 이처럼 선배님들의 대학 생활에도 어느새 끝을 고할 시기가 왔습니다.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던 관악에서의 반 십년을 겪고 떠나시는 마음은 어떠신지요.

선배님들께도 이제 곧 들어오는 15학번 새내기들이나 이제 막 관악에서 1년을 지낸 저와 마찬가지로 신입생 시절이 있었겠지요. 이 넓은 캠퍼스에서 길을 몰라 지도를 보고 강의실을 찾아다니셨을 테고, 과방 혹은 반방에 앉아 동기들과 함께 수다를 떨다가 시간을 다 보내셨을 테며, 내 열정을 모두 쏟아 부을 만큼 멋있는 사람과 사랑도 해 보셨을 테고, 장터나 일일 호프를 준비하면서 고생도 하셨을 겁니다. 축제 때는 트램펄린을 타며 놀기도 하고 재미없는 축제라며 툴툴대시면서 마지막에 공연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러 총장잔디에 가기도 하셨겠죠. 그렇게 새내기 시절을 지나 2학년이 되어 이제 학교에 좀 익숙해졌다고 새내기들에게 길도 가르쳐주고 신입생 환영회며 새터며 가서 즐기기도 하셨겠지요. 그러다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러 가신 분들도 계셨을 테고 학교에 남아 미래를 위해 공부하던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게 3학년이 돼서는 이제 늙었다며 새터도 안가시고 전공 공부와 졸업 후 준비를 위해 바쁘게 사셨겠지요. 그렇게 그렇게 1년에서 2년, 혹은 몇 년이 더 지나고 어느덧 지금 그 자리에 서 계십니다. 그 자리에 도달하시기까지의 이 긴 여정을 저는 아직 반의 반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제게 졸업하시는 선배님의 뒷모습이 멋있어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 새내기를 맞이하는 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새내기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꽉꽉 채워 넣은 시간표를 보여주거나 서울대입구역에서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물어볼 때마다 저는 제 1년 전 모습이 아련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믿음직하면서 친근한 선배가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선배님들의 가시는 뒷모습에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제가 만났던 선배님들은 다들 따뜻하게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단순히 선배님의 나이와 학번이 아닌 선배님의 진정한 실력을 존경했습니다. 제가 선배님처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배님처럼 되기 위해, 선배님께서 새겨놓은 그 발자국을 다시 밟음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희성 시인은 본인의 시「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에서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 눈 들어 관악을 보라 하라 / 민족의 위대한 상속자 / 아 길이 빛날 서울대학교’라고 말했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선배님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가 ‘조국으로 가는 길’이라면 선배님들은 그 길에서 굳건한 모습으로 저희를 이끌어주시는 등불이었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선배님들 가시는 길에 미래가 함께하길 먼발치에서나마 빌겠습니다.

김현진
인문계열·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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