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환

사회학과·석사졸업

석사 학위논문 인쇄를 맡긴 바로 다음날, 이 글을 씁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졸업장을 받는 과정에 존재하는 가장 큰 난관을 통과한 셈입니다. 수많은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해왔듯이, 제가 만들어낸 글도 검은색 네모반듯한 책자의 형태로 인쇄가 되어 나올 것입니다. 대학원이라는 제도가 담론과 지식을 ‘소비’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담론을 ‘생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명제의 타당성을 부인할 수 없기에, 좋든 싫든 저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고도, 평가도 이 논문을 바탕으로 내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글을 읽고 쓴다는 행위로 이루어졌던 지난 2년은 지극히 ‘생산성’이 낮은 생활의 연속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다른 글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생산적’이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지난 생활이 너무나 많은 것에 대한 의존에 의해 지탱되었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등록금의 상당 부분을 해결해주었던 내 아버지의 노동, 학벌질서의 꼭대기 서울대학교가 제공해주는 무수한 사회적 자원들……. 제가 얼마나 성실히 생활해 왔는지와 관계없이,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빚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객관적으로 ‘쓸모 있는’ 글을 썼는지는 그 다음의 문제일 것입니다. 부끄럽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미리 졸업한 선배들이 저에게 준 학위논문들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나눠줄 제 논문도 곧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 질 것입니다. 다른 어떤 긍정적인 학문적·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기는커녕, 아마도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끝까지 읽어볼 글이 될 것입니다. ‘나무 베어 아까운 글’이지요.

물론 성급하고, 건방진 말일 것입니다. 고작 2년 남짓한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서,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겠지요. 애초에 석사과정은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쓰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라는 한 선배의 말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교한 습작을 쓰는 과정,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기규율을 체화해나가는 과정이었기에 - 그리고 그러한 자기규율이 지니는 위험성도 조금 더 느낄 수 있었기에 - 결과물의 객관적인 가치가 초라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위안을 삼아봅니다.

언젠가 읽었던 서준식의 『옥중서한』에 들어있던 한 편지가 생각이 납니다. 저처럼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조카에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순이도 어쩌면 대학에서 언젠가 사회학에 실망하여 사회학을 선택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학은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라고. 하지만 그럴 때 꼭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해내기 바란다. 아름다운 마음, 순수한 마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사람들의 행복을 열심히 기원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몰두하는 사회학은 세상의 모순을 반드시 해결해준다는 사실을. 이와 같은 마음을 끝까지 간직해나가는 이상 순이는 사회학을 선택했던 것을 후회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다른 기준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이 없기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회학에 몰두하라는 서준식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구체적 삶과 고통에 다가가기보다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에 집착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점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이제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이 기준은 지난 과거에 대한 질책보다는, 앞으로에 대한 다짐으로 삼고자 합니다. 사회학 공부를 계속하지 않고 다른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후회하는 삶은 되지 않으리라 믿어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또다른 시작’이라는 졸업을 맞이합니다.

김일환
사회학과·석사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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