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학신문 사진부
어느새 다가온 개강을 맞아 약간은 ‘침울’해 있을 서울대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기록적인’ 패배 행진을 계속하던 서울대 야구부가 드디어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에서 첫 승리를 따냈다는 것이다. 야구부의 첫 승리는 속사정을 알고 나면 더욱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런 서울대 야구부는 서울대와 묘하게 닮아 있다.

 

 

서울대 야구부는 철저히 아마추어들의 모임이다. 특례 입학한 프로 지망생들로 꾸려진, 리그의 다른 대학 야구팀들과는 ‘급’이 다르다. 그러나 같은 아마추어 팀들과 비교하면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다. 어느 스포츠 기자의 말에 따르면, 서울대 야구부는 아마추어 팀들 중에서는 거의 최상급의 실력을 가졌다고 한다. 1부 리그에서 뛰기도 2부 리그에서 뛰기도 애매한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서울대 야구부는, 2부 리그가 아닌 1부 리그에서 뛸 것을 고집했다. 그리고 28년에 걸쳐 199번을 내리 지면서도 결국에는 1승을 거뒀다.

 

 

세계 무대에서 고전하는 ‘골목대장’ 서울대

드디어 1승 이뤄낸 서울대 야구부의 의지와 노력 배우자 

 

서울대는 태생적으로 국내 최고의 대학이다. 해방 후 국내에 남아있던 거의 모든 고등교육시설을 모아 ‘연합대학’의 형태로 발족했고, 이후 일정 기간 동안 거의 모든 고등교육 자원을 독식했다. 정부의 지원금이나, 우수한 연구인력, 우수한 학생들을 가장 많이 받아온 서울대가 국내 최고의 대학이 되는 것은 ‘의무’였다. 하지만 세계 무대로 나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남기고 간 고등교육 시설은 열악했을 것이고, 어려운 시절 어렵게 공부한 지식인들은 해방 이후의 정치적 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곧이어 일어난 한국전쟁은 우리 사회가 ‘대학’이라는 최고등 교육[]연구 기관을 지원할 여력을 없애버렸다. 서울대는 이런 환경에서 설립됐고, 그 후 겨우 50여 년이 지났다.

 

 

살만해졌다는 지금도, 해외 유수 대학과는 격차가 있다. 2001년 기준으로 서울대 예산은 3440억 원이지만, 미국 하버드대의 예산은 2조 5천억 원, 일본 동경대의 예산은 1조 9726억 원이다. 대학 예산 중 등록금의 비중은 서울대가 31%, 하버드가 24%, 동경대가 7%였다. 이는 그대로 장서 보유량, 실험 여건, 교직원의 급여 수준, 학생 등록금 부담액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리고 당연히 연구 성과물에도 격차가 생긴다.

 

 

이에 서울대는 많은 비판에 직면했었고, 이는 나름의 성과를 거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원을 독점하고 있는 서울대의 성과물이 세계 수준에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대 교수들은 ‘연구 여건에 비해 우수한 성과’라며 자조적으로 답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야구부를 보자.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공을 잡은 이들이, 부족한 운영비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도 당당히 ‘1승’을 쟁취했다.

 

 

서울대 야구부는 일단 끊임없이 노력했다. 남는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연습에 투자했고, 시합이 있는 날이면 수업을 빠지는 것도 불사했다고 한다. 사명감을 바탕으로 한 팀웍도 한 몫 했다. 고된 연습으로 인원이 적기 때문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세로 임했다고 한다. 199패를 하면서도 그토록 연습에 몰두한 데는 ‘한번 이겨보자’는 의지, 일종의 오기도 작용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는 것이다.

 

 

지금 서울대가 서울대 야구부의 1승을 기억하길 희망한다. 지원 확대를 바라는 것과는 별도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나라의 미래를 짊어졌다는 사명감을 갖길 바란다. 세계 유수의 대학, 국가들을 보며 패배주의보다 일종의 오기를 갖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택한 길을 좋아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28년, 199회에 걸친 패배에도 굴하지 않고, 1승을 쟁취해낸 서울대 야구부에 다시 박수를 보낸다. 그들은 산을 옮긴 ‘현명한’ 젊은이들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