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홍대 ‘같이 잠든다는 것’ 전시장에서 오가영 씨가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작품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주입하는 전시회 대신 관객들이 작품이 주는 의미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유승의 기자july2207@snu.kr

지난달 15일(목) 홍대에서 조금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장은 오래된 바(bar)의 분위기가 풍겼다. 안내책자가 놓인 탁자는 나무로 된 가게 문짝으로 만들어졌고 한쪽 구석에는 관객들이 작가와 합숙을 할 수 있는 침구가 마련돼 있었다. 미술관이 아닌 폐업한 바에서 전시를 기획한 작가는 오가영 씨(조소과·10)다. 학내외의 다양한 전시를 바탕으로 졸업 후 본격적인 전시 기획에 도전하는 오가영 씨를 만나봤다.

◊전시 기획하는 작가=오가영 씨는 전시 주제 선정부터 공간 선정, 작품 배치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전시를 기획하는 작가’다. 그는 작품 창작은 물론 전시 공간을 선정하고 필요할 경우 직접 인테리어를 꾸미는 등 전시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이는 다양한 경험이 부족한 학부생으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가영 씨는 “작가의 작품이 돋보이기 위해선 그만큼의 노력으로 이뤄진 기획이 필요하다”며 기획이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또 매력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사실 오가영 씨가 처음부터 전시 기획을 하려던 것은 아니다. 평범한 미대생이었던 그가 본격적으로 전시를 직접 기획하겠다고 결심한 건 2013년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였다. 네덜란드에선 마음만 먹으면 길거리에서든 주차장에서든 누구든 어디서나 전시회를 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가 마련돼 있었다. 이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많은 비용을 주고 대관해야만 전시를 할 수 있는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오가영 씨는 “미술 전시란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만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배웠다”며 “귀국하면 기존의 전시공간에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재미있는 요소가 있는 전시회를 열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좋은 전시는 경험에서 나온다=교환학생을 마치고 온 오가영 씨는 네덜란드에서 했던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고 함께 대안공간에서의 전시기획을 할 친구들을 모았다. 이에 뜻이 맞는 4명의 친구들이 모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여학생들’이란 의미의 ‘여자애들’이란 팀이 결성됐다. 오가영 씨는 ‘여자애들’의 전시를 통해 대안공간에서의 전시를 선보이려고 했다. 어떤 곳이 대안공간인지 논의한 끝에 ‘여자애들’ 팀은 미대 옥상을 전시회장으로 결정했다. 미대 옥상의 경우 졸업전시회나 과제전시회가 열리는 미대 내부 전시공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고, 옥상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 재작년 미대 옥상에서 전시회 ‘첫’이 열렸다. 기획도 미숙했고 날씨도 좋지 않았지만 오가영 씨는 “첫 전시였음에도 예상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 기억에 남았다”고 이야기했다.

사진제공: 오가영 씨

그렇게 2013년 10월, 51동 옥상에서 전시회 ‘첫’이 열렸다. 하지만 전시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드러났다. 밤이 되면 초겨울의 찬바람이 불어서 다들 추위에 떨며 전시를 운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가영 씨는 “옥상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해 부족과 미숙한 기획력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옥상에서의 전시는 오가영 씨가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걸 일깨워준 전시였다.

전시 ‘첫’ 이후 오가영 씨는 더 나은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 한남동의 전시공간인 ‘웨이즈 오브 싱’에 전시기획자로 지원했다. 두 달 동안 다른 사람의 기획을 돕고 때론 직접 전시를 기획하면서 실무를 익혔다. 전시 기획은 주제 선정, 공간 구성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가영 씨가 주목한 것은 공간 구성 단계에서 전시 공간이 가진 역할과 의미였다. 그는 “여러 번의 전시 기획 경험을 토대로 전시 공간은 작품의 의미를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또 “기획을 하는 내내 내가 왜 이 전시를 하는지 끊임없이 되짚어봐야 했다”며 기획자로서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 오가영 씨가 웨이즈 오브 싱에서 기획한 전시 ‘무슨 좋은 풍경이라도 벌어졌는지’에 설치된 ‘코스모스 거울’ 작품.

사진제공: 오가영 씨

학교에서 동기들과 나눴던 대화들도 오가영 씨의 기획에 큰 보탬이 됐다. 오가영 씨는 그 중 ‘투명인간 대화’를 꼽았다. 오가영 씨는 앞으로의 기획 방향과 작가로서의 활동에 대해 동기들의 조언을 얻고자 투명인간 대화에 참가했다.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앉아 투명인간이 될 한 사람을 정하고, 마치 그 사람이 없는 듯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가영 씨의 전시에 대해 동기들은 그 누구보다도 날서게 비평했다. 언제나 함께 작업을 하던 동기들이었기에 오가영 씨의 장점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고쳐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전시 기획 경험과 동기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바탕으로 오가영 씨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안공간에서의 전시를 “기존의 전시공간을 대체하는 ‘대안공간’에서의 전시”라고 결론지었다. 작품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이 오가영 씨가 전시에 투영하고자 하는 공간이다.

그는 지난달 15일부터 30일까지 열렸던 ‘같이 잠든다는 것’이란 전시를 통해 이런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하려 했다. 홍대의 바였던 곳의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조해 대화공간이란 특성을 유지했다. 전시회장 한쪽에는 관객과의 합숙공간을 만들어 작가와 관객이 함께 지내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을 조성했다. 4일의 시간 동안 작가와 관객이 전시기간 내내 함께하며 작가의 고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같이 지내면서 작품에 대해 토론했다”며 “작가로서의 이야기는 물론 관객들의 서로 다른 감상평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무모한 도전도 서슴지 말기를=오가영 씨는 앞으로도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과 전시회의 부대행사를 직접 기획할 예정이다. 사실 작가이자 기획자로서의 활동이 쉽지는 않다. 원활한 활동을 위한 지원을 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작가들과 그들의 전시회를 지원해주는 행사는 많지만 선발기준이 다양한 예술관을 지닌 작가 개개인에 맞춰지지 않아 지원을 받기가 매우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앞길이 불확실한 직업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가영 씨는 “내게 있어서는 충분히 투자할 가지가 있고 믿고 걸어가고 싶은 길이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오가영 씨는 후배들에게 “전문적인 기획을 배우지 않고 옥상전시에 도전했던 자신처럼 때론 무모하거나 용기 있는 선택을 통해 여러 가지에 도전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기존의 전시공간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에 주목해 전시기획에 도전한 오가영 씨처럼 때론 하고 싶은 일을 두려움 없이 도전해보는 것도 대학생활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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