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행복 사이의 거리
졸업과 행복 사이의 거리
  • 대학신문
  • 승인 2015.02.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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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 「서른」(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기고: 박민규(지구환경과학부·10/총문학연구회)

잘 지내요, 언니. 언니가 정말 잘 지내주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또 쓸게요, 언니.
- 「서른」 中

졸업하는 여러분에게


저에게는 띠동갑 여동생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동생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는데, 졸업식을 마치고 동생이 친구들과 함께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학부모들의 카메라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껴안으면서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습니다. 상당수는 중학교에서 재회하게 될 것임에도 앞으로는 영영 만나지 못할 것처럼 우는 모습에 저는 새삼 졸업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처음으로 학교라는 공간과 담임선생님, 또래 친구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하는 셈이었습니다.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한 해 동안 학교가 가장 생기 넘치는 때는 졸업식에서 입학식까지의 기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떠나는 사람들과 들어오는 사람들이 학교 정문을 통해 교차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아쉬운 작별과 반가운 만남을 동시에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그렇게 해왔습니다. 먼저 떠나가는 선배들을 보며, 언젠가는 졸업생의 신분으로 정문을 나서야 함을 예감해왔습니다. 그리고 졸업하는 여러분은 드디어 그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할 거라 생각합니다.

저보다 먼저 교정을 나서는 졸업생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졸업장을 받아드는 순간 환한 웃음을 먼저 터뜨릴지, 기쁨의 눈물을 먼저 흘릴지 궁금합니다. 졸업식의 밤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재학 기간 가장 행복했던 때와 슬펐던 때, 자부심을 느꼈던 때와 후회가 들던 때는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대학의 품에서 떠나 사회로 나가는 여러분이 처음 향하고 있을 목적지입니다. 그 목적지는 자신 있게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인가요.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두서없는 저의 질문들을 제쳐두고, 저는 강수인이라는 인물이 쓴 편지 내용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릴까 합니다.

어느 서른의 담담한 고백


소설가 김애란의 세 번째 단편집 『비행운』(2012)에 실린 「서른」은 주인공 강수인이 한때 같은 독서실에서 알고 지낸 ‘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서간문 형식의 소설입니다. 십년 전 독서실에서, 언니는 전북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하여 임용고시를 준비했고 수인은 충남에서 올라온 재수생이었습니다. 십년 만에 언니에게서 근황이 담긴 엽서와 소포를 받은 수인은 답장에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써서 보냅니다. 모 대학 불문과에 합격하여 독서실을 나온 뒤, 상처와 눈물로 얼룩진 자신의 이십대에 대해서.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 「서른」 中


서른이 된 수인은 지난 십년을 위와 같이 회고합니다. 그녀의 이십대는 결코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면서 성적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충분치 않아 휴학과 복학을 번갈아 하면서 7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사회 초년생이 된 수인에게 남은 건 천만 원 가량의 학자금 대출이었습니다. 취직만 하면 수월하게 갚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냉정한 취업 관문에서 그녀는 번번이 낙방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집안 사정은 크게 악화되고, 은행에서는 매일 독촉 전화가 오는 등 수인의 경제적 상황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던 찰나에 수인은 예전 남자친구에게 속아 다단계 회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창문에 쇠창살이 달린 다세대주택에 들어가서 다른 젊은 남녀들과 합숙을 했고, 인맥을 총동원하여 생필품, 사치품을 수십 배의 가격으로 부풀려 팔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물건이 아닌, ‘사람’을 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사람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수인은 자신의 학원 제자였던 혜미를 유인합니다. 수인을 ‘샘’이라 부르며 곧잘 따랐던 혜미에게 잘 아는 연예 기획사에서 인턴 사원을 뽑는다는 식으로 속여, 혜미를 다단계 회사에 들어가게 만듭니다. 예전 남자친구가 자신을 유인했던 것처럼 말이죠.

잠시 수인은 언니와 보낸 노량진 독서실 생활을 회상합니다. 저렴한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고 천원 남짓 한 빵을 먹으면서 적립금을 모았던, 배고프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언니와의 추억이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수인은 말합니다. 언니는 수인의 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작은 선물을 주었고 수인은 대학 합격 이후 보답으로 제과점 마일리지 카드를 선물합니다. 언니가 수인을 잊지 않고 십년 만에라도 연락한 이유가 바로 제과점 마일리지 카드 때문입니다. 언니는 수인의 성의가 담긴 카드를 소포에 넣어 돌려주면서 8년 만의 임용고시 합격을 알려왔습니다.

수인은 편지를 마치며 혜미의 이야기를 마저 들려줍니다. 혜미를 합숙소에 보낸 후 수인은 혜미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받지 않습니다.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합니다. 연락은 점점 뜸해지고, 수인은 애써 혜미가 당차고 해맑은 아이라서 잘 이겨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수인에게 들려온 것은 혜미가 자살을 시도했고, 목숨은 건졌지만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언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찌하면 좋을지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 제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언니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 「서른」 中


자신을 가장 믿고 따랐던 혜미의 인생을 파탄 낸 수인은 결말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이 부분은 「서른」에서 가장 비극적인 대목입니다. 수인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없고, 그래서 그녀는 십년 만에 연락이 닿은 언니에게 고충을 털어놓습니다. “언니, 저를 기억해주어 고마워요. 그리고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수인의 나이는 서른입니다.

목적지를 향한 걸음


「서른」은 소설입니다.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김애란은 화자인 강수인을 통하여 이십대 청춘이 처한 사회 문제와 현실적인 고민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취업난이나 비정규직 문제, 대학생 채무자 양성과 다단계 사업이고 내면적으로는 개인의 소외나 경제적 빈곤층의 악순환에 대한 것입니다. 수인이 절박하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반복해서 묻는 외침은 소설이 이십대 청춘이 떠안은 고민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한창 졸업의 기쁨을 만끽해야 할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이 글을 통해서 어떤 책임감이나 문제 의식을 가질 것을 부탁드리고 싶은 건 아닙니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고 싶은 것도 아니며, 공감이나 연민을 이끌어내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졸업 이후에 그렸던 청사진이 무너지며 불행의 연속을 겪은 수인과는 달리, 졸업생 여러분은 스스로가 세운 목적지를 향한 걸음을 순탄하게 내디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소설이고 나는 수인 같은 사람이 아니다”와 같은 반응이 나오게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졸업과 행복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 막연하고도 미약한 소망 하나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교문 밖으로 나가는 여러분의 발걸음은 가볍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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