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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는 다른 IMF의 조언, 그들이 재분배를 말하는 이유는?[학술대회]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 데이비드 립튼(David Lipton) 초청 세미나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인 중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1945년 설립된 이후 세계 무역의 안정된 확대를 통해 회원국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왔다. 국제통화기금은 회원국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1980년대 중남미 국가의 채무불이행 위기,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등 경제 위기를 겪는 국가들에게 차관을 제공해 세계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노력해왔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은 차관 제공을 조건으로 대상 국가에 ‘작은 정부’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모델 중심의 개혁을 일방적으로 요구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 외환위기 당시에도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정부에 긴축재정과 고금리, 금융시장 개방 등의 개혁정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제통화기금의 기조가 바뀌고 있다. 2010년대 들어 국제통화기금은 소득불평등과 재정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잇달아 공개하며 각국 정부에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재정 지출을 삭감하는 것에만 초점을 뒀던 국제통화기금이 기존과 정반대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불평등 해소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은 데이비드 립튼(David Lipton) 국제통화기금 수석부총재를 초청해 ‘소득불평등과 재정정책의 역할’ 세미나를 개최하고 국제통화기금의 새로운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립튼 부총재는 1990년대 후반 한국 외환위기 당시 미 재무부 국제통상차관으로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협상팀을 배후에서 진두 지휘했던 인물이다. ‘IMF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여졌을 정도로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모델을 한국 경제에 이식했던 그가 이번 세미나에서는 17년 전과는 정반대로 한국의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제안했다.

 

 정체된 경제성장, 소득불평등 해소가 해결의 열쇠 될 수 있어

세미나에서 립튼 부총재는 국제통화기금이 2014년 1월에 발표한 ‘재정정책과 소득불평등(Fiscal Policy and Income Inequality)’ 보고서를 중심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먼저 G20 국가의 경제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이 둔화되는 상황을 보여주며 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정체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2014년 OECD 주요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3%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한 신흥 시장국가의 잠재성장률 또한 둔화됐다. 세계은행(World Bank) 또한 지난 1월 2015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4%에서 3.0%로 하향 조정하며 부정적 경제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선진국은 소득불평등의 심화도 함께 경험하고 있다. 립튼 부총재는 “국가 간 불평등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개별 국가 내 불평등은 심화됐다”며 현 상황을 지적했다.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인 지니계수*는 전 세계적 관점에서 1970년대 초반 0.67에서 2000년대 후반 0.62로 감소했다. 이는 통계적으로 국가 간 불평등은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개별 국가 내에서는 이주 노동자의 유입, 기술발전으로 인한 기계의 인간의 노동력 대체 그리고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 등으로 중하위층의 임금 수준이 정체되면서 상위층과의 소득불평등은 더욱 더 심화됐다.

성장의 정체와 불평등의 심화. 두 가지 복합적인 경제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경제정책 입안자는 성장과 분배를 양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립튼 부총재는 “성장과 분배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며 기존 관념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불평등이 가속화될수록 경제 발전이 저해되고, 평등할수록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며 “두가지 바람직한 목표를 함께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은 2011년 발표한 ‘평등과 효율(Equality and Efficiency)’ 보고서에서도 성장과 분배가 보완적 관계라는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소득불평등을 핵심 의제로 인정해왔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균등하게 분배되는 국가의 활발한 경제성장 기간은 평균 24년이었던데 반하여 소득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국가들의 지속 기간은 14년에 불과했다. 지나친 소득불평등은 부의 양극화와 정치적 불안정을 수반한다. 또 지속적인 불평등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균열을 부르고 투자를 저해해 장기적 경제성장을 방해한다.
이어서 립튼 부총재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분배 정책을 펼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한 소득 재분배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기회의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재정정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 재분배 정책 통한 지속적인 성장 도모해야

한국 경제의 큰 문제는 중산층이 줄어들고 사회적 계층 이동성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 전 가구의 75.4%에 이르렀던 중산층 비율은 2010년 67.5%로 감소했다. 부의 양극화 현상 또한 심화됐다. 따라서 정부가 빈곤층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병원, 도서관 등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해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립튼 부총재의 제안이다. 이를 통해 사회 계층 이동성을 회복하여 중산층을 재건하고 양극화를 감소시킴으로써 투자와 소비를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47.2%)과 이날 제시된 25개국 자료 중 가장 높은 성별 임금 격차(39%)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립튼 부총재는 “현재 한국의 공공 사회지출은 GDP의 9% 수준으로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노인층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를 줄일 것을 주문했다.

 

 IMF의 조언, 한국 경제 재고해 보는 계기가 돼야

이날 세미나에는 국내 경제전문가가 다수 참석해 립튼 부총재의 발표를 경청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패널들은 립튼 부총재의 발표 후 국제통화기금 보고서의 지적에 수긍하며 다양한 추가 의견을 내놓았다. 조장옥 교수(서강대 경제학과)는 “한국 경제의 불평등은 수차례의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심화됐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당시 정부가 취했던 구조조정 정책은 대기업과 부를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게 진행됐다”며 앞으로 정부가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탈피하고 약자를 위한 재정 복지에 신경 쓸 것을 주문했다. 조동철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는 경제성장책에 집중된 기존의 재정 지출 구조를 사회 복지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정부는 약한 기업(weak firms)이 아닌 약한 사람(weak people)을 보호해야 한다”며 “특히 아동을 위한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의 옹호자였던 국제통화기금조차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철옹성 같던 국제통화기금도 정부의 적극적 재분배를 요구하는 가운데 ‘경제가 성장하면 다 같이 잘 살게 된다’는 논리는 이제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립튼 부총재는 발표 후반부에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사회 복지 프로그램에 타 국가에 비해 GDP의 더 많은 비율을 투자한다”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사회가 더 평등해지고 행복해진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각 국가들마다 부의 재분배를 위해 재정정책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며 한국 경제에 적합한 적극적 재분배 정책을 고민해볼 것을 제안하며 세미나를 마쳤다.  

이승엽 기자  syeup@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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