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도입 52년만에 완전 폐지 앞둔 기성회회계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국공립대를 고민에 빠트렸던 기성회비 논란이 일단락됐다. 기성회비 폐지와 대학회계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국립대학재정회계법’(재정회계법)이 지난 13일(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를 통과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대학 재정 부담을 둘러싼 논란은 진행 중이다.

 

▲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기성회비 징수, 법적 근거 없어

기성회비는 등록금에서 입학금과 수업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이다. 해방 이후 대학 진학 인구와 대학 수가 급증하던 시절 정부지원만으로는 대학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후원회 성격으로 설립된 것이 기성회였다. 대학들은 1963년 ‘대학, 고중학교 기성회 준칙’(옛 문교부 훈령)에 근거해 기성회비를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학은 문교부 훈령에 따라 수업료 이외에 기성회비를 함께 걷어 학교 시설 확충, 수리, 운영 등에 사용했다.

기성회비는 사립대에서 먼저 자취를 감췄다. 사립대의 경우 1999년 총장들이 협의를 통해 기성회비를 폐지했다. 기성회비가 수업료와 구별 없이 학교운영비로 쓰인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기성회비 항목만 삭제했을 뿐 같은 금액을 수업료로 합쳐 징수하고 있어 기성회비 납부가 사실상 학생의 부담으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사립대 기성회비 폐지 당시에는 대학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지금처럼 뜨겁지 않아 자연스럽게 수업료로 통합됐다”고 말했다.

국공립대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기성회비는 등록금 인상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본래 후원금 성격이었던 기성회비는 고등교육법상 등록금 상한 제한을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학들은 입학금, 수업료를 동결하고 대신 기성회비를 인상해 재정을 확충하는 편법을 썼다. 대학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반값등록금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기성회비 징수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최초의 움직임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2010년 11월 제기한 기성회비 반환소송이었다. 당시 한대련은 기성회비가 과다 책정됐다며 서울대 등 8개 국공립대학 기성회와 국가를 상대로 ‘학생들에게 1인당 10만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2012년 1월 기성회비에 법적 근거가 없어 기성회가 이를 반환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기성회비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령이 없고 기성회 회원이 내야 하는 기성회비를 기성회 회원이 아닌 학생과 학부모까지 강제로 내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기성회비 징수와 관리는 기성회 자율사항이라는 점에서 국가의 반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승소가 계속되면서 국공립대 기성회비도 사실상 폐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학 측이 항소를 제기했지만 2013년 11월 2심에서도 학생들이 다시 승소했다. 아직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1, 2심의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기성회비 징수가 부당하다는 첫 판결 이후 타 대학에서도 기성회비 반환소송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2013년 8월에는 방송통신대 재학생 10명이 제기한 기성회비 반환소송에서 처음으로 기성회비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최근까지도 경북대 등 5개 국립대 학생들에게 1인당 기성회비 187만원을 환급하라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기성회비 징수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국공립대는 기성회비를 걷을 수도 걷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대체법안 필요성 제기돼

문제는 국공립대의 기성회비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기성회비는 국공립대 등록금의 84.6%를 차지하고 있다. 본래 국공립대의 시설확충비, 운영비, 인건비는 정부가 지원해줘야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대학들은 기성회비로 이 비용을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국가가 지원해야 할 인건비와 교수채용비가 기성회비로 지출되고 있으며 지출액이 기성회비 수익의 5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기성회비를 걷지 않으면 대학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성회비를 대체할 법안 마련이 시급했다.

여야는 대체법안을 두고 오랜 공방을 벌였다. 정부와 여당은 대학의 일반회계와 기성회회계를 교비회계로 단순히 통합하는 내용의 재정회계법안(새누리당 민병주 의원 발의)을 내놓았다. 학생들로부터 기성회비를 걷지 않게 됐을 때 생기는 매년 1조3천억원가량의 부족분을 정부 재정으로 보충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내세운 현실론이었다. 이미 국공립대 등록금이 사립대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립대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야당은 종전에 기성회비로 지출해왔던 비용은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며 ‘기성회회계 처리에 관한 특례법안’(기성회회계 특례법안,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 발의)으로 맞섰다.

당장 다음 학기 등록금문제로 국공립대 재정이 혼란에 빠지자 지난 13일 교문위는 법안소위에서 여당의 재정회계법안의 큰 틀을 따라 법안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법안은 기존의 일반회계와 기성회회계를 총장이 관할하는 대학회계로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로써 국공립대는 기성회비를 수업료와 통합해 걷을 수 있게 됐으며 정부는 기성회비 폐지로 인한 대학의 재정 결손을 부담하지 않게 됐다. 아직 전체 교문위 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 통과가 남아있지만 재정회계법안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3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법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공립대는 재정 대란이라는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여야 합의했지만, 문제 남아있어

그러나 대체법안은 마련됐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여전히 배제됐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기성회비 징수를 묵인해온 데다가 기성회비 반환소송을 제기한 취지 자체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늘리고 학생 부담을 덜어달라는 것인데 이 점이 간과됐다는 것이다. 통과된 법에 따르면 학생들의 고등교육비 부담은 그대로기 때문이다. 앞서 야당의 기성회회계 특례법안은 현실적인 정부 재정을 고려해 2020년까지 매해 기성회비 수입액의 20%씩 국고 지원을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법안 논의 과정에서 재정 형편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번에 통과된 재정회계법에도 정부 책임을 강화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명목적인 언급만 있을 뿐 실질적인 방안은 제시돼있지 않다. 전국대학노동조합 김병국 정책국장은 “기성회비 반환소송 판결의 취지에 따라 기성회비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는 것이 애초의 요구였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부 대학에서는 재정회계법 통과 이전부터 이미 기성회비를 수업료로 통합해 고지한 상태다. 재정회계법이 통과되면서 같은 문제가 전국 국공립대로 확산되자 학생들은 다른 대학 학생들과 연합해 반대 행동에 나설 조짐이다. 부산대 이예진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장은 “학교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국공립대와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거나 농성을 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정부는 이미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정일형 사무관은 “국가장학금 같은 장학제도를 통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50% 이상 완화해주고 있다”며 “기성회비도 등록금의 일부로 보고 장학금을 지급 중이다”라 말했다.

그러나 장학제도는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국공립대 설립과 운영의 책임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있지만 우리나라는 국가가 부담하는 비중이 낮은 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고등교육비 정부부담비율은 27%로 OECD 평균인 69.2%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 홍기돈 보좌관은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히 장학금을 주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며 “정부가 대학에 직접 예산지원을 해서 교육의 질은 높이고 명목등록금은 인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성회 사라진 서울대는?

2012년 이후 입학생 중에는 서울대도 기성회비를 걷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2011년 12월 ‘서울대 법인화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기성회회계가 폐지되고 법인회계가 신설됐기 때문이다. 법인화 이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수업료와 기성회비로 구성된 등록금을 냈고 그중 기성회비가 등록금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법인화 이후 학생들은 수업료로 일원화된 등록금을 내게 됐지만 기성회비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사실상 수업료로 항목만 이동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3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배재정 의원은 “법인화 이전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합쳐 6,281,200원이었던 것이 법인화 이후 수업료 5,969,100원으로 사실상 기성회비 폐지가 아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대학신문』 2013년 11월 3일자) 이에 대해 서울대 예산과 측은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에 따른 것으로 등록금 총액은 인하 추세”라며 “단순히 수업료로 합쳤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기성회비 반환청구가 시작된 것은 2012년 1월 한대련이 제기한 소송에서 ‘학생들에게 1인당 10만 원을 반환하라’는 판결이 나온 후부터였다. 2013년 9월에는 ‘서울대 기성회비 반환 소송인단’(스누캐시백)이 결성돼 기성회비 반환청구가 본격화됐다. 2013년 11월, 2014년 5월에 연이어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왔으며 2014년 11월에는 기성회비 전액을 환급하라는 판결이 있었다.

다만 서울대의 경우 국립대학법인이 되면서 다른 국공립대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법인화법에 의해 기성회회계가 법인회계로 승계되면서 기성회 잔고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타 국공립대의 기성회비 반환소송에선 피고가 기성회와 국가인데 반해, 서울대는 기성회와 국가에 국립대학법인이 추가된 상태다. 법무팀 강진명 변호사는 “현재 기성회는 명목상으로 남아 있을 뿐 잔고가 없다”며 “기성회비를 반환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면 어떻게 이를 강제집행할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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