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각자도생’의 시대정신
사회 전체의 건전성은 오히려 악화돼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한국사회
2015년 맞아 새로운 시대정신 모색해야

 

 

“오늘날 『대학신문』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지난 겨울 『대학신문』 109기 수습기자의 부서발령 면접을 진행하기에 앞서 수습기자들에게 답변을 준비해오라고 내준 과제다. 울상을 짓는 기자들 속에 눈치 빠른 한 기자가 스마트폰을 꺼내 시대정신을 검색해본다.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위키백과) 하지만 구글에서도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나올 리 없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우리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던 각 세대는 나름의 시대정신이 있었다. 산업화세대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고, 87년 체제를 이끌어낸 486세대에게는 ‘민주사회로의 이행’이 최고의 목표였다. 대중문화 발전의 밑거름이 됐던 1990년대의 X세대는 ‘온갖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집단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통의 의식을 가진 집단을 세대라고 정의한다면,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한국사회 구성원은 ‘IMF세대’로 불릴 수 있다. IMF세대의 시대정신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됐다. 사회안전망과 복지체계가 채 갖춰지지 못한 사회에서 실업과 도산의 위험에 직면한 구성원은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 기업, 개인이 택한 각자도생의 전략으로 한국사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외환위기를 탈출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일터에서 뒤처진 가장은 재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실업을 경험한 학부모는 아이에게 ‘나만 잘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낙오자가 된다’고 가르쳤다. 도덕, 양심과 같은 가치는 경제적 비용으로 등치됐으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구성원 각자는 생존을 위한 최적의 행동을 했지만 사회 전체의 건전성은 오히려 악화된 것이다. 외환위기 탈출 이후 한국사회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지 못한 채 각자도생의 한국사회는 계속 유지됐다. 구성원이 변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나서서 사회의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를 했어야 했지만, 2008년 들어선 이명박정부는 오히려 ‘실용주의’를 국정철학으로 내세웠다. 개별적 수익 극대화 행위가 최우선으로 장려될수록 사회의 안전장치는 해제됐고, 각자도생의 한국사회는 이제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2014년 각자도생의 한국사회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이윤을 위해 평형수를 빼고 과적을 지시한 선주, 승객을 배에 두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 책임을 면하려 대통령의 눈치만 살핀 해경 등 사고의 책임자는 모두 각자도생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지금까지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사건, 사고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붕괴된 건물, 보복성 방화, 가족을 살해한 가장까지 모두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각자도생 사회의 민낯들이었다.

세월호는 한국사회에 ‘각자도생은 틀렸다’며 ‘세월호 이후의 시대정신을 찾으라’는 준엄한 명령을 내렸다. 앞서 내린 세대의 정의를 따른다면 우리는 ‘세월호세대’라 불릴 수 있으며, 앞선 경험에 비춰 우리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야만 한다. 이에 2015년 초부터 사회 각계에서 세월호 이후의 사회를 계획하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성의 확보와 정치제도 개혁, 노동과 복지 문제, 청년실업과 세대갈등 등을 논의하는 언론과 시민단체는 올해를 세월호세대의 시대정신을 찾기 위한 골든타임으로 여기는 듯하다.

지난 부서발령 면접에선 수습기자들이 생각하는 다양한 시대정신을 들을 수 있었다. 한 기자는 오늘날 『대학신문』의 시대정신으로 ‘사다리’를 제시했다. 물질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대학본부와 학생사회 등 서로 너무 멀어진 대상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연결해줄 수 있는 사다리가 돼 합의와 조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대학신문』 기자들은 2015년에도 시대정신을 잠 깨우기 위해 편집국의 불을 밝히고 있다.

이번에는 2015학년도 신입생으로 입학한 새내기 여러분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새내기 여러분이 생각하는 세월호세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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