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응과 무관심이 서러운 할머니들


▲ © 신문수 기자

해결되지 못하고 묻혀 있는 문제는 더이상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나치는 장소들도 역사와 관련돼 있다. 『대학신문』 사회부에서는 연재기획을 통해 그런 장소의 의미를 돼새기며 현재를 짚어 보고자 한다. 과거의 지나간 사건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오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는 흘러간 역사지만 ‘일본군성노예’(성노예)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매주 수요일 정오, 종로구 운니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어김없이 열리는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시작돼 12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일의 수요집회에는 피해 할머니 13명,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민주노동당, 일반인 20여 명이 참석했다. 수업을 통해 수요집회를 알게 됐다는 김태군군(부곡중[]3년)은 “할머니들이 안쓰럽고,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정부에 화가 난다”고 말한다. 도시샤대 미디어학과에 재학중인 토모오미 모리씨(25)는 “일본 국민들은 성노예의 존재를 알고는 있지만,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성노예 할머니는 128명이다. 정대협 김동희 기획부장은 “처음에는 할머니들이 정부에 등록하는 ‘커밍아웃’을 두려워했다”며 “사람들의 시선 때문일 것”이라 지적한다. 그러나 “이제는 전쟁 피해자로서 반전을 얘기하는 등 능동적이다”라고 말했다.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중인 대표적인 단체로는 입법활동, 연구, 상담, 의료복지 참여 등을 하는 정대협과 성노예 실태 파악, 증언집 발간 등을 하고 있는 한국정신대연구소 등이 있다. 1992년에는 불교계의 모금운동을 통해 할머니들을 위한 거처인 나눔의집이 마련돼 정부의 보조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눔의집 안신권 사무국장은 “전문요양원을 건립해 현재 10명 안팎인 수용인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도 성노예 문제의 빠른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1993년 비엔나 국제노동기구, 1998년 UN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권고했고, 내년에는 160개국이 참가하는 국제 앰네스티 회의에 성노예 문제가 상정될 예정이다. 지난 3월 13일에는 일본, 대만 등 8개국 18개 도시에서 6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해 집회가 진행되는 등 시민 사회의 국제적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하다. 이에 대해 한국정신대연구소 장미라 사무국장은 “당장 국가적 차원의 사과가 어렵다면 한일협정 문서라도 공개해 잘못된 점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상황은 몹시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지난 21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일간 미래발전을 위해 과거사는 문제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0살부터 10년 동안 성노예 생활을 했다는 박옥련 할머니(86)는 “만약 한국이 일본 여성들을 성노예로 끌고 갔다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처럼 대처하겠느냐”며 분노했다. 이날 수요시위에 참가한 이옥선 할머니(85)는 “우리가 지금 피해를 보상받지 못하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정대협 김동희 기획부장은 “할머니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정부의 미온적 대처와 사람들의 무관심”이라 강조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배상이 있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수요시위가 언제쯤 끝을 맺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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