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

▲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저|이진홍 역|르몽드 디플로마티크|719쪽|1만 9천 8백 원

최근 그리스에서 ‘좌파 중의 좌파’로 불리는 급진 좌파 시리자(Syriza)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 사실을 새삼스레 지적하는 이유는 최소한 전후 한국에서 급진좌파가 정권을 잡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는 좌파가 구체적인 정책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인식까지 존재한다. 애초에 좌파에 대해 정확히 모르거나 알아도 언급하기 조심스러워 하는 사회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은 집권좌파의 역사를 돌아보며 다시금 그들의 등장을 점검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책은 외국 필진 27명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생소한 사회주의의 사례와 좌파 경제이론, 노동조합을 포함한 좌파의 구성원을 담았다. 전반적으로 좌파의 동력, 정체성을 상실하는 실수와 재도약을 꾀하는 과정을 조망하며 책의 뒷부분에서 국내 필진의 글을 통해 한국 좌파가 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좌파의 동력은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개혁

많은 필진은 집권좌파가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개혁이란 기조를 지켜낼 때야 비로소 제대로 발언할 수 있었고 반대로 본래 이념과 동떨어지면 추진력을 잃는다고 설명했다. 파리코뮌부터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까지, 좌파정권의 목소리는 그들의 숫자만큼 다양했지만, 소외계층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재분배한다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연대하곤 했다. 그 결과 좌파정권은 소외계층의 지지를 얻어 집권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의 농민들은 지주들과 직접 대치하는 것을 불사하며 차베스의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도우려 했다. 지난 2001년까지 베네수엘라에서는 대부분의 농민이 자기 소유의 땅을 가질 수 없던 반면 경작되지 않는 빈 땅은 산재해 있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차베스 대통령은 경작되지 않는 토지로부터 세금을 걷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재분배하는 개혁안을 실시했다. 기득권층은 쿠데타까지 일으키며 차베스의 좌파정권에 반발했지만, 농민들은 무력 대응도 마다않고 차베스의 개혁 조치에 힘을 실어줬다.

역으로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 좌파정권은 사회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동력을 잃고 밀려날 수 있다. 좌파정권이 주로 집권해온 이탈리아의 경우, 집권좌파인 민주당이 도리어 이민자를 차별하는 북부동맹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지 못했고 그사이 상당수가 이민자로 구성된 노동자들조차 북부동맹에 표를 던졌다. 이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좌파가 소외계층과 점점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연의 기조가 좌파 자신의 동력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개혁을 체념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느세실 로베르(「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는 통합유럽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진보진영이 정치적 담론을 빼는 “불가피하고 불완전한 타협”에 동의했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유럽식 사회적 모델은 구상조차 불가해졌고 좌파는 통합유럽을 ‘좋은 것’으로 설파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는 유럽좌파의 행보를 “자신들이 택한 결정이 실제로 해당되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일”이며 “도취”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좌파정권이 사회개혁에 대해 미온적으로 행동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소외계층과 유리되어 목소리를 잃을 위험이 크다. 초반에 그들이 “우리 시민들의 이익과 윤리적 원칙을 준수하면서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말로 지지층을 얻을 수도 있겠으나, 당장 실업 문제나 이주 문제 등으로 고통 받는 소외계층 입장에서 본질을 잃은 좌파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좌파정권은 지지층을 잃고 이념적으로 다른 정파에 종속되어 자멸할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다양한 좌파 주체들의 사회개혁 모색

한편 책에서는 좌파정당이 아닌 다른 지점에서 사회개혁을 고민하는 사례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 예로 모나 숄레(「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가 쓴 「기본소득제, 멀지 않은 유토피아」에서는 기본소득을 주장했던 프랑스 학생들의 예가 등장한다. 기본소득제란 모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 통해 소외계층도 생계를 위해 일자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된다. 올리비에 시저(스위스 활동가)는 기본소득을 통해 정치적 혁명이 아닌 각 개인의 단위에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해야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자체를 철폐하자는 주장으로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개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벵자맹 페르낭데즈(언론인)의 글에서는 2011년 인도 마디아프라데시 주의 경우를 들어 노동자조합이 기본소득제를 직접 도입한 실험을 소개했다. 무조건부로 일정한 현금을 지급받은 각 가정에서는 영양 및 건강, 재정 상태가 개선됐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노동조합이 규칙적인 보편소득을 관리할 경우 분배 구조가 개선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물론 인도인의 10%만이 세금을 내는 상황에서 보편적 소득을 실현하긴 어렵겠지만 정부가 빈곤층의 절반을 대상으로 한다면 다시금 시도해볼만 한 실험이었다.

안수찬(「한겨례」 기자)은「마르크스? 케인스? 이젠 폴라니!」에서 폴라니의 말을 인용해 국가나 자본이 아닌, 사회의 통제를 받는 형태의 시장을 주장한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조합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네트워크가 거론됐다. 이는 노동조합이 생활협동조합, 생산자조합과 육아공동체 등 노동자의 삶과 연관된 다른 공동체와 재화를 교환하는 새로운 형태로 시장을 형성한 것이다. 여기에 최대 공익을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사회적 합의로 통제되는 시장도 등장했다.


한국 진보에 ‘진보’를 부탁하면서

세계적인 추세를 볼 때 좌파가 꾸준히 변혁을 시도하며 다양한 주체들이 진보사회를 이룬다면 사회개혁이란 좌파의 꿈을 실현하게 해줄 실마리가 보인다. 하지만 한국 좌파는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을 받쳐줄 지지층이 미약하다. 박동천 교수(전북대 정치외교학과)는 책에 실린 글「우리가 진실로 진보정치를 원한다면」에서 좌파들이 넘어지는 원인으로 좌파끼리 연대하지 못하는 현상을 꼽았다. 한국 좌파는 일제강점기, 전쟁과 독재정권 등의 특수한 역사를 거치며 마르크스주의, 운동권 등 여러 이미지를 떠안게 됐지만, 서로 간의 차이를 포용하지 못하고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이에 대중은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좌파에 대해 불신을 키우게 됐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연대가 좌파를 구하진 못할 것이다. 한국 좌파들이 연대만을 위해 움직이다가 자신의 정체성과 함께 그 지지자들을 잃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봐왔다.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 좌파 주체들의 연대는 하나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보의 본질은 더나은 가능성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진보’혹은 ‘좌파’가 무엇인지와 같은 기본적인 것을 재정립하는 논의도 필요하다. 결국 각 주체가 인지하는 좌파의 정체가 자신의 정체성이자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면서 좌파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더욱 어려워진 지금, 이런 논의는 시급하다 하겠다. 그러나 다른 좌파정당들은 여전히 각자 다른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의 출간은 좌파 자체를 얘기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

투표권을 확대하기 위해 상인부르주아들과 대결했던 19세기 공화주의자들의 최대 무기는 돈과 음식이 아닌 치열한 정책 개발과 이념의 주창이었다. 이 책을 토대로 한국의 좌파가 어떤 고민을 이어갈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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